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킬러 인사이드 미] - 아! 나도 영화보며 피곤함을 느낄 수가 있구나.

쭈니-1 2010. 7. 14. 14:36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주연 : 케이시 애플렉, 제시카 알바, 케이트 허드슨

개봉 : 2010년 7월 8일

관람 : 2010년 7월 13일

등급 : 18세 이상

 

 

나의 피로회복제는 영화보기이다.

 

구피가 항상 제게 너무 신기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만 보면 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다가도 영화를 보고나면 낫고, 영화를 볼 때면 배고픔도 잊고, 영화를 볼 때면 피곤함도 사라집니다. 제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사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싶다는 제 욕망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을 먹고 싶다는 욕망보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니 배고픔을 잊게 되는 것이고, 아무리 피곤해도 쉬고 싶다는 욕망보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니 피곤함도 잊게 되는 것이죠.

제 기억으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잔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고등학교때 보았던 [트라이엄프]가 바로 그 영화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직도 전쟁영화를 싫어합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한 전쟁영화는 되도록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에 극장에서 '졸립다'라는 욕망이 아주 강하게 드는, 드문 영화를 만났습니다. 바로 [킬러 인사이드 미]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피곤하긴 했습니다. 예전엔 버스 안에서 느긋하게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고, DMB를 보며 했던 출퇴근이 요즘은 난생 처음 운전을 하며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신경이 곤두서서 있어 예전보다 피곤함을 쉽게 느끼고 있으며,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는 새로 회사에 출근하던 신입사원이 내일부터 못 나오겠다고 전화를 하는 바람에 엄청 짜증도 나있었습니다.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며 이 피곤함을 단번에 날리겠다는 생각에 한 밤중에 극장으로 향한 것이죠.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피곤하다. 쉬고 싶다'였습니다. 영화의 중간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아주 잠시 졸기도 했고,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이제 집에가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최근 제가 본 영화중 이렇게 절 피곤하게 만든 영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어떠한 부분이 그렇게 절 피곤하게 만든 것일까요?

 

 

제이시 애플렉... 난 네가 싫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루 포드(제이시 애플렉)입니다. 텍사스주의 소도시에서 부보안관으로 근무중인 루는 의사가문의 명망있는 집안 출신에다가 우아한 약혼녀까지 두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마을의 고급 매춘부 조이스(제시카 알바)를 마을에서 추방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며 모든 것이 바뀝니다. 조이스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든 루는 그녀와의 자극적인 섹스를 즐기며 자신의 내면 깊숙히 숨어 있던 악마의 본성이 튀어 나오고 맙니다.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루의 매력입니다. 루는 약혼녀 에이미(케이트 허드슨)와 조이스의 일방적인 사랑을 동시에 받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모두 그를 믿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내면에 악마의 본능이 숨겨진 캐릭터이기에 선함과 매력적임 외에도 악마적인 카리스마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게 말이 쉽지, 이런 복합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할 정도로 [킬러 인사이드 미]에서 루는 정말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이 중요한 캐릭터를 신예급 연기자 제이시 애플렉에게 덥썩 맡겨 버립니다. 제이시 애플렉은 할리우드의 스타급 배우 벤 애플렉의 친동생으로 얼핏 보면 형의 강인하면서 부드러운 모습을 동시에 지닌 배우입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1995년 [투 다이 포]로 영화계에 데뷔한 벌써 15년차 배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나래이션에 나오는 목소리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목에 가래가 찬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외모를 아무리 봐도 두 여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기엔 좀 찌질해 보이며, 살인을 저지를 땐 악마적인 카리스마보다는 비열한 웃음만 보여줍니다.

그러한 그의 무매력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더하는데...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슬픈 표정을 지어야 했던 후반부 장면에서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흘리며 '내가 범인이요.'를 자백하는 모습마저 보여줍니다. 이러한 제이시 애플렉의 무매력은 영화의 재미를 크게 반감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맙니다.

 

 

매력적인 그녀들을 이렇게 망가뜨려 놓고...

 

루가 이렇게 매력적이지 못한 가운데 오히려 루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조이스와 에이미는 매력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특히 제가 이 영화를 기대하게된 절대적인 원인을 제공한 제시카 알바의 매력은 정말 영화의 초반엔 피곤함을 싹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마을에서 떠나달라는 루에게 귀싸대기를 날려버리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카리스마까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녀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었습니다. 루의 악마같은 본성이 살아나며 조이스는 형편없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조이스를 보며 [킬러 인사이드 미]에 대한 제 기대도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제시카 알바가 더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이었던 캐릭터가 초반부터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루는 짜증이 날 정도로 매력이 없습니다. 조이스는 매력적이지만 영화의 중반부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기댈 캐릭터는 이제 에이미 밖에 안 남은 셈입니다.

사실 에이미는 조이스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평범한 캐릭터입니다. 단지 루의 약혼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드는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도 에이미에 대한 캐릭터 설명을 최대한 생략해 버렸는데 그 결과 에이미는 그저 루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간직한 답답한 약혼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매력은 루보다 뛰어 났습니다. 비록 그녀가 왜 루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에이미는 케이트 허드슨의 통통한 매력과 더불어 영화의 중반부터 이 영화를 볼 의미를 조금이나마 제게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그녀의 매력도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는 형편없이 망가지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 남자의 복수극? 아님 비툴어진 욕망? 도대체 뭔데?

 

제가 주인공인 루 대신 조이스와 에이미의 매력을 더 높이 산 것은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는 요근래 본 수 많은 영화중 가장 짜증나는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도대체 루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영화를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자신의 누명을 대신 뒤집어 써준 형이 출소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극이라면 굳이 이딴 식으로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님 어린 시절 당했던 변태적인 성적 학대의 기억으로 인하여 루가 그러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좀 더 루의 과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루의 과거 장면은 고작 1, 2분 정도 과거 회상 장면으로 짧게 스치듯 지나갑니다.

복수라 하기엔 무모하고, 성적 욕망이라고 하기엔 이해가 안되는 루의 살인 행각은 이 영화를 스릴러도, 그렇다고 사회성 짙은 드라마도 아닌 어정쩡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 지는 장면도 헛 웃음만 나오는데 사실 그렇게 허술하게 일처리를 해놓고 그 오랜 시간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이상하죠.

마지막 반전이라고 꺼내든 것도 예상 가능함과 동시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렇게 당해놓고 끝까지 헌신적인 사랑을 어필하는 모습이라니...  

저는 왠만하면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켜 영화를 감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부각시킬 영화의 장점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고작 제시카 알바의 매력 정도인데... 초반에 잠시 보여준 그녀의 매력만으로 1시간 40분에 달하는 이 영화의 짜증남을 참아낸다는 것은 제겐 애초부터 무리였습니다.

이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블랙 달리아]도 재미있게 봤고,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영화인 [쥬드]도 재미있게 본 저로써는 [킬러 인사이드 미]는 그저 내게 영화가 피로 회복제가 아닌 피로 유발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유명 영화제 상영작? 난 그딴거 모른다.

내게 그 어떤 즐거움도 주지 못한 영화라면 내게는 졸작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