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스플라이스] - 천재, 둔재가 되어 버리다.

쭈니-1 2010. 7. 2. 14:53

 

 

 

감독 : 빈센조 나탈리

주연 : 애드리안 브로디, 사라 폴리

개봉 : 2010년 7월 1일

관람 : 2010년 7월 1일

등급 : 18세 이상

 

 

천재 감독의 영화?

 

매주 목요일은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목요일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진답니다. 하지만 막상 목요일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일이기 때문이죠. 전 주로 주말에(토요일 조조, 혹은 일요일 밤) 영화를 보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한발작 늦게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나잇 & 데이]를 결국 개봉 후 일주일이나 지난 후에 겨우 본 저로써는 이번주만큼은 방금 개봉한 따끈따끈한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나잇 & 데이]를 늦은 밤에 보고 온 탓에 피곤한 구피를 꼬드겨 이번엔 [스플라이스]를 보러 갔습니다.

SF 영화라면 저보다 더 좋아하는 구피는 예전부터 [스플라이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 점을 이용한 저는 [스플라이스]의 감독이 바로 천재 감독이라고 불리우든 빈센조 나탈리라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그 순간 구피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군요. 목요일 영화 보기 작전의 성공은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구피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렇게 재미없었어?'라고 물으니 스토리 전개는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질 못할 정도로 한심했고, 소재는 좋았지만 그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이 역겨웠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전 그 정도로 [스플라이스]가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웠던 것은 구피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1997년 [큐브]로 데뷔하며 전 세계 영화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습니다. 이유도 알지 못한채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두려움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이 획기적인 데뷔작은 그에게 천재 감독이라는 칭호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그의 행보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큐브]이후의 첫 연출작이라 기대를 많이 모았던 [싸이퍼]는 제게 실망만 안겨줬었습니다. ([싸이퍼]의 제 영화 이야기 제목은 '빈센조 나탈리 감독에게 천재 감독이라는 칭호는 아직 빠르다.' 였습니다.) 이후 국내 미개봉작인 [낫씽], [휑]등을 연출했고, [사랑해, 파리]에서 한 부분을 연출했던 그는 [스플라이스]로 다시금 자신의 주특기로 우리 곁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는 [큐브]의 천재 감독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지의 생명체와의 사투?

 

[스플라이스]는 어느 천재 과학자 커플이 동물과 인간의 DNA를 합성하여 미지의 생명체를 창조해내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SF스릴러 장르의 영화입니다.

사실 미지의 생명체에 의한 공포는 여러 SF영화에서 수도 없이 다루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에이리언 시리즈]입니다. 드넓은 우주를 공간으로 하여 우주 그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를 무시무시한 괴물 생명체를 등장시킨 [에이리언]은 이후 SF공포영화의 바이블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스플라이스]도? 일단 [스플라이스]는 드렌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등장시킨 것을 제외하고는 [에이리언]과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드렌은 영화 중반부까지 인간을 거의 위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스플라이스]는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설정은 드렌과 드렌을 창조한 엘사(사라 폴리)의 관계입니다. 엘사는 클라이브(애드리안 브로디)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아기를 갖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영화의 중반 엘사와 그녀의 어머니의 관계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창고같았던 엘사의 어린 시절 방으로 유추해 보건데 약간의 정신병이 있는 어머니로 인하여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엘사는 아기 갖는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엘사는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생명체 드렌을 통해 엄마로써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귀여운 유아 시절에서부터 사춘기 시절 방황기가 있는 드렌의 모습을 보며 엘사는 어느사이 엄마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드렌을 돌보는 엘사의 모습은 다른 한 편으로는 섬뜩하기도 합니다. 드렌이 자신이 공격하자 드렌을 묶어놓고 드렌 꼬리의 독침을 뽑아내는 장면은 그녀가 증오했던 어머니의 광기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창의력은 거기까지...

 

솔직히 여기까지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미지의 생명체를 소재로 한 영화중에서 이러한 진행 방식을 가진 영화를 저는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창의력은 거기까지에서 멈춥니다. 영화는 중반 이후 영화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보다 빠른 성장을 보이던 드렌은 동물적 본능인 번식기를 맞이하게 되고 주위의 유일한 수컷(?)인 클라이브에게 구애를 하기 시작합니다.

분명 이 영화의 전개상으로는 그러한 설정에 무리가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의 전개는 바로 여기에서 멈춰버린다는 점입니다. 아니 드렌의 번식 욕구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좀 무리다.' 싶은 장면이 연달아 등장하는데 그러한 장면들은 구피에게 '엮겹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고, 저 역시 실소가 저절로 튀어 나왔습니다.

 

왜일까요? 왜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드렌의 번식 욕구에서 모든 전개를 멈춰버리고 거기에만 집착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것이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드렌의 번식 욕구를 통해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공포를 자신만의 색깔로 독특하게 꾸며내고 싶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러한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선택은 흥행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독특하게 진행되던 영화를 오히려 진부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미지의 생명체가 가진 번식 욕구를 그린 영화는 이미 로저 도날드슨 감독의 [스피시스]에서 충분히 사용해 먹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무리한 집착은 영화의 후반을 SF공포영화의 지루한 전개로까지 이끌어 내는데 영화의 초반 [에이리언]과 차별화되는 이 영화의 독창성에 놀아워했던 저는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뻔한 3류 SF공포영화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재, 둔재가 되어 버리다.

 

이 영화에서 엘사와 클라이브는 전도유망한 천재 과학자 커플로 나옵니다. 실제 영화의 초반 그들은 영화 속의 천재들이 가끔 그러하듯 오만과 자신감, 그리고 똘끼있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들은 오히려 '저들이 천재가 맞아?'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듭니다. 이미 성변이를 일으킨 이전 실험체의 실패를 겪었으면서 드렌의 변화에 무뎠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미 눈치채고 있는데 천재라고 하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연구에 도덕성에 대한 고민은 애초에 배제하고 연구에 대한 성과에 눈이 먼 모습을 보이던 엘사는 그야말로 천재도, 둔재도 아닌 바보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문제는 영화 속 캐릭터인 엘사와 클라이브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감독인 빈센조 나탈리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초반 그가 보여준 독창성은 [큐브]의 천재 감독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는 '도대체 왜 저런 전개를 해야 하는거지?'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듭니다. 이미 [스피시스]라는 잘 만든 SF공포영화가 있는데도 굳이 드렌의 번식 욕구에 집착을 하고 그 결과 영화는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만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빈센조 나탈리 감독에게 천재도, 둔재도 아닌 바보 같은 감독이라는 위험한 발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그가 자신의 천재성을 잊지 않고 다음 영화에선 [큐브]를 뛰어 넘는, 그래서 제게 '역시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천재였어.'라는 평을 듣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천재였던 그가 둔재가 되었다면 언젠가는 둔재였던 그가 다시 천재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난 그때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