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임스 맨골드
주연 : 톰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
개봉 : 2010년 6월 24일
관람 : 2010년 6월 30일
등급 : 15세 이상
가끔 내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껴진다.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전 무엇하나 뛰어난 것이 없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앗! 모두들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어떻게 아셨죠? 그건 국가기밀사항인데... ^^;
암튼 어릴 때부터 그랬었답니다. 공부는 남들과 비교해서 언제나 중간 정도였고, 남들보다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싸움도 못했고, 그렇다고 특출난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되면 언제나 그 집단에 잘 융화되며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분간이 안되는 뭐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내 자신이 특별하다면?' 이라는 상상을 많이 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척척 다 아는 천재에, 운동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007 제임스 본드같은 영웅을 꿈꾸기도 하고,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라던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간, 저 시간 맘대로 여행하는 능력 등 그런 특별한 능력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방자전]에서도 밝혔지만) 언제나 조연일 수 밖에 없었던 저로써는 이러한 상상만이 내 자신을 주인공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와, 역시 난 대단해.'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때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갔던 일이라던가(결국 예선 탈락했습니다.) 12년 전 발렌타인 데이 때 학교 후배에게 프로포즈 받았던 일(결국 1달 정도 사귀다 헤어졌습니다.) 등. 사실은 사소하지만, 평범해도 너무나 평범한 저이기에 이런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난 특별해.'라는 착각을 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내가 특별하다는 착각을 할만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바로 다음 우수 블로그에 뽑힌 것입니다. 남들은 '우수 블로그? 그게 뭐가 대단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집과 직장을 오고가는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블로그는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며 이 공간이 우수 블로그가 되었다는 것은 제겐 오랜만에 내 자신이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건인 셈입니다.
구피에게 '영화 부문 우수 블로그가 되었으니 앞으로 영화 많이 봐야해. 내 영화 이야기를 기다리는 팬들이 얼마나 많다구.'라고 버럭버럭 우기며 아주 특별한 남자와 아주 평범한 여자의 액션 로맨스 [나잇 & 데이]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를 보니 로이 밀러(톰 크루즈)는 내 상상 속의 특별한 영웅과 많이 닮았고, 준 헤이븐스(카메론 디아즈)는 평범한 일상 속의 저와 많이 닮았더군요.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제게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그녀, 특별한 그 남자를 만나다.
앞서 언급했지만 준 헤이븐스는 아주 평범한 여자입니다. 동생의 결혼식 참가를 위해 비행기에 탄 그녀는 우연히 아주 특별한 남자 로이 밀러를 만납니다. 그는 잘 생겼고, 매너있으며, 유머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찌든 그녀에겐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특별한 인연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로이 밀러는 특별함 만큼이나 위험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그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하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떠한가요? 자신이 액션 히어로가 되는 상상을 해분 적이 있나요? 전 어릴 적에 그런 상상을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과연 유쾌하기만 할까요? 언제나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악랄한 악당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 액션 히어로의 인생은 위험하기만 할 것입니다.
준이 처한 상황이 그러합니다. 그녀도 평소엔 아주 특별한 모험을 원했겠지만 그러한 모험이 현실이 되자 도망가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보다 그와 함께 하는 위험한 모험이 자신의 가슴을 더욱 흥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아주 특별한 남자와의 아주 특별한 모험의 위험을 스스로 즐기게 되는 그 순간 그녀는 더이상 평범한 일상에 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입니다.
이 영화는 평범하 여자가 위험천만한 남자를 만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평범한 여자와 위험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이며, 첩보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이 영화가 준 헤이븐스가 평범한 일상에서 아주 특별한 모험에 중독되면서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성장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위험천만하고,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이 다반사인 아주 특별한 첩보원의 세계에 적응을 하며 결국 로이를 능가하는 뛰어난 액션 히어로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닌가요? 평범한 여자의 아주 특별한 변신. 우리는 대부분 아주 평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도 아주 특별해 질 수 있습니다. 준 헤이븐스처럼 말이죠.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으니까요.
액션 영화에서의 생략의 미학... 이걸 해낸 것은 이 영화 뿐이다.
[나잇 & 데이]는 준 헤이븐스의 아주 특별한 모험으로 인하여 점점 변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의 스토리를 완성해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의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있는 액션은?
솔직히 말한다면 많은 분들이 이 영화와 비교하시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보다 액션은 덜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꽝꽝 터지고, 빵빵 쏴대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와는 달리 [나잇 & 데이]는 강약 조절을 해가며 로맨스가 끼어들 공간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액션은 좀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데... 빗발치는 총알 세례 중에서 몸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 수 많은 악당들을 쓰러 뜨리는 로이 밀러의 신기에 가까운 액션은 사실 이 영화의 긴장감을 많이 무너뜨립니다. 아무리 액션 영화라고는 하지만 말이 안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후반부 무기상의 저택에서 총 싸움 도중 느닷없이 키스하는 씬은 정말...
하지만 이 영화를 액션 영화보다 액션 히어로가 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환상을 그린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이렇게 긴장감이 떨어지는 액션도 이해가 됩니다. 액션 히어로를 꿈꾸는 우리들 모두 총알이 자신을 피해가길 바라잖아요? [나잇 & 데이]는 그러한 환상을 고스란히 영화에 옮긴 셈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영화는 툭 하면 중요한 순간을 생략하는 과감한 면도 지니고 있습니다. 로이 밀러가 비행기 추락 이후 준 헤이븐스를 어떻게 집까지 옮겼는지, 유럽의 무기상에게 생포되었는데 어떻게 탈출했는지, 어찌보면 액션 영화에선 상당히 중요한 장면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아무런 고민없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병원에서의 탈출 장면의 생략은 '어떻게 저 장면을 생략할 수가 있지?'라고 영화를 보는 절 놀라게 했습니다. 액션 영화라면 꽤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 저이지만 액션 영화의 재미를 드러낼 수 있는 장면들을 생략하며 또 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는 진정 처음이었습니다.
[나잇 & 데이]가 이렇게 과감한 생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 액션의 시원함이 아닌 액션 히어로가 되고 싶은 관객의 환상을 총족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외형상 액션 영화임이 분명하지만 액션이 부족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족한 액션을 관객을 위한 판타지로 충족시켜 주고 있으니 다른 무엇보다도 그러한 사실만으로 이 영화는 아주 이상한(특별한) 액션영화인 셈입니다.
내가 로이 밀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진 않겠다.
'이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보다 훨씬 재미있다며?'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왠만하면 평일에 영화보러 가는 것을 꺼리는 구피가 제게 항의하듯이 따집니다. 뭐 구피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액션은 분명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보다 부족했으니까요.
그리고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안젤리나 졸리와 귀여움이 철철 넘치는 카메론 디아즈의 대결에서도 액션 영화의 측면만 놓고 본다면 안젤리나 졸리의 승리입니다.
세계 최고의 매력남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의 대결에서도 역시 브래드 피트의 완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배우들의 매력과 액션의 강도에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완승입니다. 하지만 [나잇 & 데이]는 그것만으로 섣부르게 판단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액션은 부족하지만 특별한 판타지가 있고, 특별한 로맨스가 있고, 특별하게 변하는 평범녀의 성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특별함을 상상하냐고요? 물론입니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노땅이지만 전 아직도 특별한 내 자신을 상상하고, 사소한 것에 '그래, 난 특별해.'라고 착각하며 혼자 즐거워합니다.
물론 이젠 어린 아이 때처럼 액션 히어로를 상상하지는 않습니다. 액션 히어로의 일상이 평범한 삶보다 훨씬 고단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특별해지고 싶지만 고단한 것은 싫은 노땅의 게으름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계속 특별해 지고 싶습니다. 제가 쓰는 이 지루한 영화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음으로써 특별해지고 싶고, 제가 운영하는 이 블로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친목의 공간이자, 놀이터가 됨으로써 특별해지고 싶습니다. 아주 평범한 특별함이지만 지금 제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준 헤이븐스가 겪었던 것처럼 특별한 액션 히어로가 되기엔 전 너무 늙었고, 포기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의 보물들이 너무 많기에...
그리고 제 글에 달아주시는 여러분 하나 하나의 댓글들이 '그래, 난 정말 특별해.'라고 절 착각하게 만드는 특효약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저이기에 전 특별함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답니다.
아주 특별한 액션 히어로를 꿈꾸지는 않겠다.
단지 아주 특별한 그래서 행복한 블로거를 꿈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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