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해럴드 즈워트
주연 : 제이든 스미스, 성룡
개봉 : 2010년 6월 10일
관람 : 2010년 6월 15일
등급 : 12세 관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제가 어렸을 적에 저희 집은 이사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주인집에서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하면 찍소리 못하고 전세금을 올려주거나, 이사를 해야 했거든요. 법적으로 전세 계약이 2년 이라고 하지만 제가 어릴 땐 1년 단위로 전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가 다가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전세금을 구하러 다니시거나 싼 전세집을 알아 보시러 다니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초등학교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친구를 사귈만하면 집이 이사를 가고 저도 전학을 가야하기 때문에 친구를 사귈 틈이 제겐 없었죠. 그래서 일까요? 어린 시절 저는 이사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했습니다. 어떤 날은 이사 가는 날 반항심에 집에 안들어가고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놀고 들어갔다가 어머니한테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한 후, 시간이 남아 [베스트 키드]를 봤습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전적으로 성룡 때문입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의 분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성룡의 영화에 열광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최근 본 [대병소장]을 재미있게 본 터라 [베스트 키드]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제 눈에 들어 온 것은 성룡이 아닌 아역 배우 제이든 스미스였습니다. 유명 영화 배우인 윌 스미스의 아들로써 [행복을 찾아서]에서 깜찍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베스트 키드]에서 제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었습니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드레(제이든 스미스)는 쿵푸를 배우며 스스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헤쳐 나가려 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학간 학교에서도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고, 저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맞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 [베스트 키드]를 보며 드레의 용기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영화를 감상하였습니다.
결코 굽히지 않았던 그 녀석의 용기
영화의 첫 시작은 아버지를 일찍 여윈 드레가 어머니를 따라 중국의 상하이로 이사를 가는 장면입니다. 정든 집과 친구들을 떠나야 했던 드레의 그 착찹한 표정은 빈번히 이사를 가야 했던 제 어린시절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하지만 드레의 상하이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귀여운 중국인 소녀 메이링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만 그로 인하여 쿵푸 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드레의 표정은 비굴하면서도 비참했습니다. 결국 그는 어머니 앞에서 울음을 터트립니다. '난 여기가 싫다'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제 마음까지 찡했던 것은 제가 드레와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닙니다. 드레의 그러한 행동은 13살 남자아이에겐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고, 그러한 드레를 연기한 제이든 스미스의 놀라운 연기력은 당장이라도 스크린 속으로 달려가 그를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드레는 마치 제게 '남의 도움은 필요없어요.'라고 말하는 듯이 돌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쿵푸 소년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죠.
드레의 복수 후 펼쳐지는 추격씬에서 저 역시 드레와 함께 뛰었습니다. 잡히면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죽기 살기로 드레는 달렸고, 저 역시 마음 속으로 달렸습니다.
그 동안의 굴욕과 비굴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 그의 복수로 인하여 그는 자신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괴롭힘을 당하며 그에 당당하게 맞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상대가 자신보다 힘이 더 쎌 경우 더욱 용기를 낼 수가 없습니다. 비록 드레는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 아닌 소심한 복수였지만 도망다니거나 피하지 않고 괴롭힘에 맞서기 위해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영화는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드레는 건물 관리인인 미스터 한(성룡)에게 쿵푸를 배우게 되고 쿵푸 대회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야합니다. 드레가 미스터 한에게 쿵푸를 배우게 된 것도, 쿵푸 대회 출전이라는 뜻밖의 기회를 얻은 것도 전부 그의 용기 덕분인 셈이죠.
성룡의 연기는 역시 베스트이다.
아! 제가 너무 제이든 스미스와 그가 연기한 캐릭터인 드레의 이야기만 했군요. 하지만 [베스트 키드]는 분명 제이든 스미스의 영화이며, 드레를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성룡의 연기와 그가 연기한 미스터 한이라는 캐릭터의 존재가 제이든 스미스와 드레에 비해서 형편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성룡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이 조연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언제나 주인공에 익숙한 그였기에 조연으로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선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냅니다.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드레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데 자신의 역량을 쏟아 붓습니다.
그렇기에 미스터 한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상처는 상당히 짧게 스치듯이 지나갑니다. 아니 오히려 미스터 한의 과거 상처마저도 드레를 돋보이기 위한 장치로 처리됩니다.
상하이로 이사와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어머니한테 '난 여기가 싫어요.'라고 징징거리던 드레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냄으로써 미스터 한에게 쿵푸를 배울 기회를 얻어 내면서 점차 성장을 하더니 급기야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아파하는 자신의 스승 미스터 한을 감싸안을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것입니다.
어쩌면 성룡의 열렬한 팬이라면 이 영화의 그러한 점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룡의 그 낙천적인 표정도 볼 수 없고, 코믹 액션은 더더욱 없습니다. 단지 드레의 성장과 함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연약한 어른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의 연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진지했고, 조연 연기자의 최대 덕목인 주인공을 돋보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써도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결과를 알면서도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힘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쿵푸대회입니다. 사실 전 이러한 대회를 소재로한 스포츠, 액션 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과가 뻔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악당은 주인공을 이기기 위해서 음모를 꾸밀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이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혹은 결과를 뻔히 아는 스포츠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는 것처럼 대회를 소재로한 영화들은 제겐 조금 싱겁게 느껴집니다.
사실 [베스트 키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을 싸움꾼으로 단련시키는 드래곤 체육관의 관장(우영광)은 역시나 음모를 꾸미고 이로 인하여 드레는 큰 위기를 맞이하지만 주인공답게 그 위기를 이겨냅니다.
이쯤되면 '뭐야, 싱겁게...'라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오히려 제 심장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고, 드레의 모습에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쿵푸 대회에 출전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작은 체구에 호리호리한 몸집, 그리고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로 범덕이 된 얼굴, 드레의 승리는 과장되었지만 드레의 모습은 과장이 되지 않았기에 저는 이 뻔한 대회 결과에 감동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이든 스미스라는 어린 배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엔 이 귀엽고, 당돌한 어린 연기자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찼습니다. 더이상 그는 윌 스미스의 귀여운 아들이 아닌 할리우드의 차세대 배우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것입니다. 저는 한 명의 전도유망한 배우의 시작을 극장에서 지켜 보았고, [베스트 키드]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낯 뜨거운 멜로는 물론 고난도 액션까지 척척 해내는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는
내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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