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크 미첼
더빙 :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안토니오 반데라스
개봉 : 2010년 7월 1일
관람 : 2010년 7월 4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드디어 꿈은 이루어졌다.
2001년 [슈렉]이 개봉했을 때 저는 제 인생의 최악의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랑했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 받은 것이죠.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왜 헤어져야 하는지 이유라도 안다면 덜 억울했을 텐데, 당시 저는 지금까지 크게 싸운 적도 없는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아프고 슬펐습니다.(지금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때 전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영화를 봤고, 그 중 한 편이 [슈렉]이었습니다. [슈렉]은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을 과감히 비틀어 버린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은 잘생기고 용감한 왕자가 아닌 못생기고 지저분한 괴물이었고, 공주 역시 예쁘고 착한 공주가 아닌 못생기고 엽기적인 추녀였습니다. 디즈니의 걸작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반댓말과도 같았던 [슈렉]의 동화 뒤집기는 당시 제겐 청량제와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슈렉 2]가 개봉했던 2004년은 제겐 굉장히 행복했던 해였습니다. 피오나 공주처럼 생긴 구피를 만나(결코 못생겼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결혼에 성공한 저는 2004년 여름엔 아직 첫 돌이 채 되지 않은 웅이의 재롱을 보며 아버지로써의 책임감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슈렉 2]를 보며 저는 웅이가 크면 꼭 [슈렉]을 함께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한 소원은 2007년 [슈렉 3]가 개봉했을 때에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극장에 가는 것에 적응하지 못했던 웅이는 극장에 가면 답답하다는 이유로 극장에 안가려 했고, 결국 저는 웅이와 [슈렉]을 극장에서 같이 보기라는 아주 작은 소원을 다음으로 미루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슈렉 포에버]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슈렉]의 마지막 시리즈라고 하네요. 결국 이 영화를 놓치면 앞으로 영영 [슈렉]을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본다는 제 작은 소원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주말마다 밖에 안나가고 방에만 가뒀더니 웅이는 함께 영화 보러 가자는 말에 흔쾌히 승낙을 하더군요. 결국 2004년 처음 웅이와 함께 [슈렉]을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제 소원은 2010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슈렉은 점점 변하고 있었다.
웅이의 작은 손을 꼬옥 잡고 극장으로 향하는 길. 저는 웅이에게 2001년 제가 처음 보았던 [슈렉]의 그 통쾌함을 맛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웅이는 아직 동화책 속에 빠져 살 나이이지만 동화책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슈렉 포에버]는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스토리를 전개 시키더군요. 동화 뒤집기는 더이상 없었고, 오히려 [슈렉]답지 않은 동화적인 마무리로 끝내 버려 절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착한 결말에 웅이는 좋아했지만 애초부터 [슈렉]의 동화 뒤집기에 열광했던 저로써는 아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러한 [슈렉]의 변심은 [슈렉 3]에서 부터였습니다. 개구리왕 해롤드의 죽음으로 겁나 먼 왕국의 왕위 계승을 하게 될 위기에 처한 슈렉이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아더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슈렉 3]는 동화 뒤집기도, 그렇다고 유쾌한 패러디도 없었습니다. 단지 자유로운 삶을 위해 왕위 계승를 거절하며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아버지가 되었다는 더 커다란 위기에 빠진 슈렉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내 버렸습니다.([슈렉 3]의 제 영화 이야기 제목은 '모든 것이 변했다'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 그것만큼 남자의 일생에서 커다란 변화가 또 있을까요? 자유분방한 괴물로써의 인생을 즐기고 싶었던 슈렉. 그래서 겁나 먼 왕국의 왕위 계승을 아더에게 넘기기 위해 그렇게도 발버둥쳤던 슈렉은 결국 피오나의 임신으로 자신이 두려워 했던 자유로움을 옭아매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슈렉 포에버]은 바로 그러한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슈렉은 단란한 가정의 평화로운 가장이지만 그의 속마음은 자유롭게 생활을 했던 피오나를 만나기전의 그 때를 그리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반복되는 시간들, 자신의 위주가 아닌 가족의 위주로 자신을 맞춰어야 하는 나날들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슈렉처럼 과거를 그리워 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늦게까지 기분좋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구피에게 잔소리들을 때, 보고 싶은 영화가 넘쳐나는데 웅이와 놀아주기 위해 극장에 가지 못할 때, 가끔 저는 총각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동화 뒤집기로 시작했던 [슈렉]은 이렇게 [슈렉 포에버]에 와서는 현실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위한 슈렉은 없었다.
동화의 세계를 비트는 것으로 시작했던 [슈렉]이 [슈렉 포에버]에서 현실의 세계에 들어와 버렸으니 저로써는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 기대는 [슈렉]이 동화의 세계를 비틀었듯이 [슈렉 포에버]가 현실의 세계 비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슈렉 포에버]는 그러지 않습니다. 악당 럼펠의 꾐에 속아 피오나를 구하기 전의 하루를 보내게된 슈렉은 결국 자신의 가족이 최고라는 아주 평범하면서 착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과연 그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요? 정말... 정말...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결국은 가족이 최고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슈렉]이 그따위 뻔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수 많은 디즈니 영화들이 그러한 메세지를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주입시켜 주고 있으며, 다른 가족 영화들 역시도 주구장창 주장하는 주제가 '가족 최고, 사랑 최고'아니었던가요? 결국 [슈렉]마저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슈렉 포에버]는 제겐 상당히 당혹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슈렉이 피오나 공주를 만나기 전의 세상은 분명 흥미로웠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영화가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비틀기 정신과 패러디 정신이 사라진 것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비틀기와 패러디 정신이 사라진 슈렉은 더이상 제가 알고 있던 슈렉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슈렉 포에버]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막을 내린다는 선언은 타당해 보입니다. 애초에 슈렉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괴물이었지만, 지금의 슈렉은 가정에 얽매인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버렸으니 제가 알고 있는 슈렉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고, 따라서 슈렉의 모험은 더이상 이야기거리가 안되는 것입니다.
장화신은 고양이의 그 커다란 눈을 보며 너무나도 재미있게 웃던 웅이. 웅이는 이 영화가 재미있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어쩌면 저로써는 그것으로 족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슈렉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을 책임질 가장이고 제가 재미있게 볼 영화보다 웅이가 재미있게 볼 영화가 더욱 중요하니... [슈렉 포에버]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것만으로도 제 할일을 다한 셈입니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즐겼던 [슈렉]이 난 즐기지 못하고 어린 웅이만 즐길 수 있는 이 상황에서도 만족해야 하는 이 상황. 이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표상이 아닐까요?
나를 위한 슈렉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내 어린 아들을 위한 슈렉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난 [슈렉 포에버]를 환영해야 할까? 아님 아쉬워 해야할까?
아직도 난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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