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그린 존] - 거짓으로 시작된 전쟁의 비극

쭈니-1 2010. 4. 1. 23:03

 

 

 

감독 : 폴 그린그라스

주연 : 맷 데이먼, 그렉 키니어, 브렌단 글리슨

개봉 : 2010년 3월 25일

관람 : 2010년 3월 29일

등급 : 15세 이상

 

 

기다림의 결실을 자축하며...

  

지난 2009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사정이 안좋아져서 직원들의 연봉을 삭감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20%나 삭감되었는데, 그렇지않아도 박봉인데다가 삭감까지 받고나니 도저히 생활이 안될 정도로 돈에 쪼들리게 되더군요. 그래도 회사부터 살라고 보자는 생각으로 1년을 꾸욱 참고 견뎠습니다.

그렇게 힘겨운 2009년이 지나고 2010년이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 연봉 계약일이 다가왔고, 기대만큼 회사의 매출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회사를 위해 희생해준 직원들을 위해서 사장님께서 대폭의 연봉 인상을 해주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 제 박봉으로 힘들어 했던 구피에게 가장 먼저 알렸고 구피도 저만큼 기뻐해주더군요. 결국 우리는 1년 동안의 기다림의 결실을 자축하기로 했습니다. 그 비싸다는 버거킹에서 외식도 하고(결국 버거킹은 가지 못하고 집에서 장모님이 만들어주신 아구찜 먹었습니다.) 영화도 한 편보기로 약속한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린 존]을 예매하였습니다.

 

구피는 [솔로몬 케인]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케인]은 우리가 기대했던 할리우드의 블럭버스터 판타지가 아니라고 얘기해줬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더군요.

하지만 전 [그린 존]이 보고 싶었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뛰어난 액션 감각을 보여줬던 폴 그린그라스 감독과 맷 데이먼의 만남인 만큼 화끈한 액션이 기대되었으며, 제작비가 1억이 투입된 영화인 만큼 이라크 전의 진상을 화끈한 스케일로 그려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솔로몬 케인]은 시간대가 맞지 않아 제가 원했던대로 [그린 존]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본 영화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린 존]은 제가 기대했던 액션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재미있게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역시 영화는 기분 좋을 때 봐야되나 봅니다.

 

 

거짓으로 시작된 전쟁

 

2003년 세계평화라는 명목아래 미국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은 이라크가 숨겨 놓았다는 대량살상무기에 온 관심을 집중시켰고, 예상외로 쉽게 미국의 승리로 끝난 이라크전은 이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 없애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TV를 통해 이라크전 소식을 접했던 당시의 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미국을 응원했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욕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찾기 시작한 미국은 시간이 지나도 그들이 공언한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고, 결국 대량살상무기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린 존]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대량살상무기 제거 명령을 받고 이라크로 급파된 로이 밀러(맷 데이먼)는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정보에 따라 대량살상무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밀러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그런 그에게 CIA의 마틴 브라운(브렌단 글리슨)이 함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실상을 파헤치자고 제안합니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아주 전형적인 감춰진 진실을 향해 달려나가는 주인공의 모험담을 그린 스릴러 영화로 변모합니다.

하지만 [그린 존]을 그냥 평범한 스릴러 영화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가 실제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3년 TV를 보며 악의 축인 이라크를 욕하며 정의의 수호신 미국을 응원했던 저는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거대한 거짓말을 한 미국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분개해야 했습니다. 전 세계를 테러의 악몽으로 몰아넣은 미국의 거대한 거짓말을 [그린 존]은 블럭버스터의 외형으로 낱낱이 까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진지한 긴장감, 그리고 안타까운 허무감

 

솔직히 [그린 존]은 오락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이미 미국의 거짓말에서 비롯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진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기에 밀러가 파헤치는 진실 게임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싫어하는 전쟁영화의 외피를 두른데다가 액션씬에서는 흔들리는 화면으로 제 시선을 어지럽게 만들어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던 제게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그린 존]은 오락영화로써의 기대를 버린다면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결코 과장되지 않은 이 영화의 긴장감은 진지하게 제게 이라크전에 대한 진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1억 달러라는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흥행에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진행되는 이 영화의 긴장감은 그렇기에 상당히 새로웠습니다.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이라크를 안정시키기 위해 브라운과 밀러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후반부에 와서는 안타까운 허무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라크의 일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맡기라는 프레디의 절규는 지금 현재 테러로 병들어 가고 있는 중동의 현실을 비추어볼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미국의 중동의 석유 이권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버렸더라면,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는 자만심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미국이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에 있다면 어이없는 거짓말만 퍼트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자연스럽게 이라크 국민의 손에 의해 처단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욕심이, 미국의 자만이, 미국의 거짓이 결국 전 세계를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게 하는 끔찍한 현실을 만든 셈이죠.

[그린 존]은 분명 화끈한 액션을 즐기기 위한 관객에겐 상당히 불친절하고 지루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미국에서의 흥행 참패가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이 영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들이 권력의 거짓에 얼마나 쉽게 포장될 수 있는지 섬뜩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린 존]은 결코 과장되지 않게 그러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맷 데이먼은 보는 것만으르도 괜히 믿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