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셔터 아일랜드] - 스포일러도 망치지 못한 영화의 재미.

쭈니-1 2010. 3. 24. 14:41

 

 

 

감독: 마틴 스콜세지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미셸 윌리암스, 막스 폰 시도우

개봉 : 2010년 3월 18일

관람 : 2010년 3월 23일

등급 : 15세 이상

 

 

그들은 제법 잘 어울린다.

 

2002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이 개봉했을 때 저는 의외의 캐스팅을 보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라면 당연히 로버트 드니로가 먼저 떠올랐던 제게 [갱스 오브 뉴욕]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로 화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 제가 보기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와 어울리는 배우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뿐이었습니다.(그는 이미 [순수의 시대]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겐 [타이타닉]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었기에 막연히 꽃미남 배우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갱스 오브 뉴욕]을 통해 1860년대 초의 뉴욕 뒷골목에서 지저분한 모습으로 뒹구는 캐릭터를 연기했으니 선입견 때문일지 몰라도 참 어울리지않는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사정은 카메론 디아즈도 마찬가지였지만 카메론 디아즈의 경우는 [카지노]의 샤론 스톤의 경우처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깜짝 이벤트성 캐스팅임을 감안한다면 어느정도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당시만해도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캐스팅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만남은 [갱스 오브 뉴욕]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워드 휴즈의 꿈과 좌절을 그린 실화 [에비에이터], [무간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디파티드]까지 무려 세 편의 영화에서 함께 했고, 특히 [디파티드]는 제 79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과 편집상을 석권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만남은 [셔터 아일랜드]까지 이어지는데 어느새 그들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파트너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인하여 영화의 흥행성을 보장받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들을 통해 영원히 갇힐뻔 했던 [타이타닉]의 굴레를 예상보다 훨씬 빨리 벗어던졌으니 이것이야말로 WIN-WIN 전략인 셈입니다. 

 

 

반전영화는 이래서 빨리 봐야한다.

 

[갱스 오브 뉴욕]은 비록 극장에서 보지 못했지만 최근 DVD로 구입했고, [에비에이터]와 [디파티드]는 극장에서 챙겨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저는 [셔터 아일랜드]도 개봉과 동시에 극장에서 보기로 만반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하지만 뱀파이어 영화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구피 때문에 [데이브레이커스]를 먼저 봐야했고,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때문에 [셔터 아일랜드]는 평일 극장에서 볼 기회를 자꾸 놓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 불안감은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를 못 볼까봐 불안한 것이 아니라 최근 영화 중에선 최고의 반전이라는 입소문이 난 이 영화의 반전을 영화를 보기도 전에 미리 알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의식적으로 멀리했고,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글은 일체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셔터 아일랜드]가 개봉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저는 그 반전을 눈치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연히 보게된 어느 네티즌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글의 제목 때문에...

 

반전을 영화의 재미로 내세우는 영화에서 그 반전을 미리 안다는 것은 영화 관람의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결국 저는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정도 감소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극장에서 보게된 [셔터 아일랜드]는 제게 팽팽한 긴장감과 영화적인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초반엔 어렴풋이 반전을 눈치챘기에 처음부터 그 반전에 영화의 상황을 대입하면서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은근히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 음악은 물론이고,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불안한 내면과 으시시한 환상, 무언가 감춘듯 보이는 주변 사람들과 셔터 아일랜드의 압도적인 풍경.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반전을 어느정도 눈치챈 제게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팽팽한 영화적인 재미를 [셔터 아일랜드]는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남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강력한 연출과 연기

 

반전이 백미라고 소문이 자자한 영화에서 영화를 보기도 전에 미리 반전을 눈치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 아일랜드]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강렬한 연출력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명연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안개에 둘러싸인 바다를 헤치고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하는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와 척 아울(마크 러팔로). 그들의 도착한 셔터 아일랜드의 풍경은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영화는 이때부터 거의 쉬지 않고 저를 몰아부칩니다. 무언가 숨기는 것이 분명한 사람들. 그리고 방화범에 의해 아내가 살해당한 테디의 불안한 심리와 기괴한 악몽들은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50년대 상황과 맞물려 제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케이프 피어]에서도 느꼈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공포, 스릴러 영화만 전문적으로 만들어도 그는 엄청난 명성을 얻을 것 같습니다. 그의 스릴러 영화는 언제나 남성적인 강렬한 힘이 느껴지니까요.

 

여기에 또 한명의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입니다. 10년 전만해도 저는 그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간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네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그 잘생긴 얼굴이 과거의 상처와 불안감으로 흔들릴 때마다 저는 그의 감정선에 동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과 살인자를 향한 복수심, 그리고 셔터 아일랜드의 비밀을 벗기겠다는 정의감이 한데 뭉쳐져 그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자기 자신도 모를 위기에 처합니다.

제가 만약 이 영화의 반전을 미리 눈치채지 못했다면 테디가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저 역시 혼란스러워하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깊숙히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흡입력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괴물로 살 것인가? 선량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강렬한 연출력과 그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혼란스러운 연기에 몰입되어 전 [셔터 아일랜드]를 재미있게 관람하였습니다. 

물론 반전을 미리 눈치채고 있었기에 영화의 종반부에 반전이 밝혀지는 충격적인 부분의 재미가 반감되었고, 그러한 반전을 설명하는 부분이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감정은 [백야행]을 볼 때의 아련함과 비슷했는데, 영화의 초반과 중반까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강렬함으로 저를 이끌었던 영화가 후반부에 갑자기 폭력의 시대로 인하여 병들어간 사람들의 모습으로 제가 아련함까지 안겨주니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까지 느껴지더군요.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열린 결말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줍니다. '과연 내 자신이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괴물이 된다면 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괴물인채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선량한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과연 괴물로 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하지만 세계 2차대전의 포화가 끝나고 폭력이 지배했던 그 시절,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아련하게만 느껴집니다.

스릴러 영화에 박한 제 취향으로 본다면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제 호감은 이례적입니다. 반전을 미리 알고 스릴러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김이 빠지는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셔터 아일랜드]를 보니 반전을 알더라도 스릴러 영화로써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반전에 매달리는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이 깨달을 점이기도 하죠. 비록 스포일러한테 반전에 의한 재미를 빼앗겼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결코 스포일러도 막을 수 없는 진정한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지켜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컴비를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