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타이탄] - 그래, 딱 내 스타일이야!

쭈니-1 2010. 4. 7. 13:39

 

 

 

감독 : 루이스 리터리어

주연 : 샘 워싱턴, 리암 리슨, 랄프 파인즈

개봉 : 2010년 4월 1일

관람 : 2010년 4월 6일

등급 : 12세 이상

 

 

오랜만에 구피와 내 취향에 맞는 영화가 나왔다.

 

[타이탄]이 개봉한다는 소식에 저는 개봉 전부터 안달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거대한 판타지 영화의 틀을 띄고 있는 이 영화는 딱 내 스타일의 영화이지만 더불어 구피의 스타일의 영화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판타지 영화를 향한 구피의 사랑을 잘 알고 있기에 이 영화만큼은 꼭 구피와 함께 봐야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구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갈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을만큼 바쁩니다.

주말엔 시어머니 생일상 차리느라 고생했고, 주중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웅이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회사에도 다니고, 집에 오면 아르바이트로 홈페이지 구축일까지 하는 구피를 보면 정말 혼자 1인3역, 아니 1인5역을 거뜬히 해내는 구피가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타이탄]을 향한 제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고, 결국 만사 제쳐두고 어젯밤에 무리해서 극장으로 향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그 비싸다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도 먹고(그것도 눈 돌아갈 정도로 비싼 갈릭스테이크 버거로...) 콜라는 리필하여 극장에서 마시는 센스를 발휘하며 [타이탄]을 봤습니다.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면서 어린이용 어드벤쳐 영화의 틀을 벗지 못했던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타이탄]만큼은 좀 더 성인 취향적이며, 웅장하며, 비장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타이탄]을 딱 제가 바랬던 영화였습니다. 특수효과는 화려했고, 배경은 웅장했으며, 마녀, 크라켄, 메두사는 섬뜩했습니다.

명백히 [타이탄]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보다는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데 판타지 영화를 너무 어린관객용 영화로 포장하여 제작되고 있는 할리우드의 현 상황에서 [반지의 제왕]이 제 인생의 영화일만큼 좋아하는 제게 [타이탄]의 등장은 꽤 반가운 일입니다.

 

 

제우스 VS 하데스... 이번엔 제대로 그려졌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며 가장 마음에 안들었던 점은 캐릭터들이 카리스마는 커녕 너무 우스꽝스러웠다는 점입니다. 신중의 신이라는 제우스는 번개를 잃어버렸다며 동생인 포세이돈에게 와서 징징거리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생의 아들을 도둑으로 몰고, 지옥의 신 하데스는 은근히 공처가처럼 보이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애끓는 부성애를 주체못하는 나약한 신처럼 비춰졌습니다.

하지만 [타이탄]은 아닙니다. 신과의 전쟁을 선포한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를 나타내는 제우스(리암 니슨)는 신중의 신답게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습니다. 제우스를 꼬드겨 인간을 벌하려 하는 하데스(랄프 파인즈) 역시 제우스와 비교해서 결코 카리스마가 뒤쳐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감추며 제우스를 꺽을 기회만 엿보는 그는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이 떨어뜨린 그리스, 로마 신의 권위를 다시 세워줬습니다.

 

제우스와 하데스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한 인물은 역시 리암 리슨과 랄프 파인즈입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은 제우스역에 숀 빈을, 하데스역에 스티브 쿠간을 캐스팅하였습니다.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에서 보로미르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숀 빈은 그렇다쳐도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코믹한 이미지가 깊게 박혀있는 스티브 쿠간을 캐스팅한 것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이 그리스, 로마 신들을 제대로 그리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타이탄]은 묵직한 두 배우 리암 리슨과 랄프 파인즈를 내세웠습니다. 인간을 창조했으나 오만해진 인간으로 인하여 분노를 느낀 제우스. 그는 하데스에게 인간을 벌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여전히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인간을 벌하려 하지도 않았고, 페르세우스(샘 워싱턴)를 남몰래 도와주기도 합니다. 제우스는 명백히 가부장제도에서의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테이큰]등에서 쌓아온 그의 이미지와 잘 부합됩니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부터 절대악 볼드모트로 절정의 악역을 소화하고 있는 랄프 파인즈 역시 비열하면서도 강력한 지옥의 신 하데스를 완벽에 가깝게 연기하는데 같은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감독이 그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느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지 나타내는 단적인 예입니다.

 

 

난 이상하게 메두사가 좋더라.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에서 또 한가지 불만이었던 것은 메두사, 히드라, 미노타우루스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매력적인 괴물들을 일회용 마구잡이로 소비해버린 것에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메두사의 최후가 안타까웠습니다.

머리는 끔찍한 뱀으로 되어 있으며,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괴물 메두사. 하지만 메두사가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처음엔 미모가 출중한 여인이었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아테나 신전에서 범했고, 이에 분노한 아테나가 저주를 내려 흉측한 괴물로 변하게 한것입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메두사는 그냥 보통 요녀였습니다. 하지만 [타이탄]의 메두사는 그러한 사연을 간직한 가여운 여인의 모습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르세우스와 함께 메두사의 소굴로 들어온 정령을 돌로 변하려고 해도 정령이 돌로 변하지 않자 의아해하는 메두사의 모습에서 순진한 처녀의 모습이 얼핏 보였던 것입니다. 비록 [타이탄]의 메두사의 비중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보다 낮았지만 그러한 표정 하나만으로도 저는 그녀의 가슴아픈 사연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목은 잘렸지만 다음 생애에서는 남성들의 비틀어진 욕망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길... (^^;)

 

하데스의 살로 만든 최강의 괴물 크라켄도 그 명성에 갈맞게 무시무시했습니다. 자칫 크라켄이 별로 안 무서웠다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좀 김이 빠져버릴뻔 했는데 [타이탄]의 특수효과가 그것을 완벽하게 커버했네요.

그 외에도 사막에서 만난 괴물 전갈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굉장했는데 페르세우스 일행을 향해 달려오던 전갈의 무시무시함은 이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살려줬습니다.

천마 페가수스의 그 당당한 위용도 인상 깊었고, 페르세우스에게 크라켄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주는 마녀 세자매 역시 이 영화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끔찍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제우스에 대한 원한으로 하데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아크리시우스왕의 모습 또한 이 영화의 특수효과가 참 적절하게 잘 쓰여졌다는것을 느끼게 만듭니다.

 

 

제 2의 [반지의 제왕]이 되기 위한 몸부림

  

사실 [타이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 속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당부분 새로 각색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의 페르세우스 모험담을 잘 아시는 분들에겐 마치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했던 저로써도 그 점은 분명 아쉽습니다. 

하지만 [타이탄]은 원작의 이야기를 담지않는 대신 제 2의 [반지의 제왕]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이 제 2의 [해리 포터]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로 인하여 페르세우스는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처럼 미약한 존재에서 영웅으로 거듭나고, 페르세우스를 도와 원정에 오르는 페르세우스 일행의 모습은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를 떠오르기도 합니다. 페르세우스를 돕는 이오는 [반지의 제왕]에서 리브 타일러가 연기했던 아르웬과 외모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페르세우스를 돕는 정령은 [반지의 제왕]의 엔트를, 인간의 왕이었지만 제우스에게 사랑하는 아내의 몸이 더럽혀지고 스스로 그 아내를 죽음으로 내몬 아크리시우스왕은 [반지의 제왕]의 골룸, 혹은 인간의 왕이었지만 절대 반지의 힘에 이끌려 사우론의 부하가 된 나즈굴을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타이탄]의 제 2의 [반지의 제왕]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지의 제왕]이 원작의 거대한 세계관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영화적인 완성도와 재미를 완성했던 것에 반에 [타이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 거대한 이야기를 단지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로써의 활용에만 급급했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해피엔딩을 위해 마지막엔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

결국 분위기만 그럴듯하게 [반지의 제왕]의 흉내를 낸 것인데 사실 전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애초부터 [반지의 제왕]을 능가하는 판타지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린 상태였기에 아동 취향적인 판타지 영화가 아닌 성인 취향적인 판타지 영화가 나온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탄]이 시리즈화 되어 앞으로도 계속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시리즈로 성공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블럭버스터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할리우드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때 기왕이면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같은 풍의 영화가 아닌 [타이탄]같은 풍의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아바타]와는 달리 애초부터 3D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 2D로 만들고 3D로 변형시킨 영화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느낀 것은 애초부터 3D로 기획된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3D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타이탄] 역시 3D로 보고 불평하지 마시고 그냥 2D로 편안하게 즐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