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모건 프리먼, 맷 데이먼
개봉 : 2010년 3월 4일
관람 : 2010년 3월 9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비록 아카데미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허트 로커]의 완승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3D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던 [아바타]가 [허트 로커]와 주요 부문을 양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카데미는 철저하게 [아바타]를 외면했고, 대신 [허트 로커]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제 아카데미도 막을 내린 상황에서 제가 해야할 것은 아카데미 수상작들을 챙겨 보는 일입니다. 주요 6개 부문을 휩쓴 [허트 로커]와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블라인드 사이드], 여우조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한 [프레셔스]는 아직 국내 개봉 전이기에 볼 수 없었지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크레이지 하트]는 지난 주에 개봉했기에 당연히 전 [크레이지 하트]를 보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크레이지 하트]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아카데미 특수도 없다던데 과연 [크레이지 하트]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을 계기로 개봉관을 확대할 수 있을까요?
암튼 평일에 [크레이지 하트]를 본다는 것은 평범한 직딩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다고 주말에 보자니 가족들의 원망의 눈초리가 무섭고해서 [크레이지 하트]는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서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크레이지 하트] 대신 제가 선택한 영화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는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모건 프리먼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맷 데이먼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입니다. 게다가 작년 [그랜 토리노]로 정말 깜짝 놀랄만한 감동을 제게 안겨줬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이니 아무리 꿩 대신 닭이라고 할지라도 제겐 가슴 설레는 기대작임에 분명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계속 되어야 한다.
80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결코 지치지 않고 꾸준히 신작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그랜 토리노]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써는 은퇴를 하고 앞으로는 연출에 좀 더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혈기왕성한 노령의 배우이자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재들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안락사에 대한 논란을 야기시켰던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비롯하여 2차 세계대전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본 [아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 경찰의 권력이 남용될 때 벌어지는 힘 없는 한 여성의 비극을 다룬 [체인질링], 그리고 미국내 소수 인종의 차별에 대한 영화 [그랜 토리노]까지...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점점 키워갔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랜 토리노]와 맞닿아 있고, 스포츠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도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는 지금까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의 무대를 미국이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옮기면서 그의 관심이 미국 내 문제들이 아닌 지구촌 문제들로 확장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이 노장 감독의 현명함과 사려 깊은 시선이 지금 우리 지구촌엔 너무 간절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랫동안 장수하며 좀 더 많은 영화들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스포츠가 가진 무한한 힘.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는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세계 럭비 월드컵에서 남아공의 럭비팀이 강력한 우승 후보들을 물리치고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으로 나누어진 남아공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백인 청년들이 잘 가꾸어진 럭비 경기장에서 연습을 하는 장면과 흑인 어린이들이 거친 돌 밭에서 축구를 하는 장면이 교차되고 그 사이로 감옥에서 출소된 넬슨 만델라의 차가 지나가는 장면입니다.흑인과 백인 그들의 서로 다른 환경 만큼이나 서로 다가갈 수 없는 사이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이 오프닝 장면은 이후 럭비 월드컵을 통해 이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스포츠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이루었을 때 보여준 온 국민의 단합된 응원과 열광도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힘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바로 그러한 스포츠의 힘을 정치에 이용했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그러한 스포츠의 힘을 이용하여 영화적인 재미를 완성하려합니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럭비팀의 기적과도 같은 우승으로 그 뜻을 이룬 것과는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스포츠가 가진 무한한 힘과 실화의 감동을 영화 속에 효과적으로 스며들게 하는데 실패한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결말이 뻔히 정해진 경기를 보는 것처럼 마지막 감동이 뻔히 정해진 김빠진 진행을 이 영화는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넬슨 만델라가 필요하다.
스포츠 영화로써의 감동이 기대했던 것만큼 이루어지지 못한 이 영화는 그래도 결코 실패작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화합의 정신을 보여준 넬슨 만델라의 위대한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인 정권의 탄압으로 30년간 감옥에 투옥되었던 넬슨 만델라. 그는 남아공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국민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흑인과 백인이 함께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자기 자신부터 백인을 용서하고 끌어안습니다.
영화를 보며 넬슨 만델라의 위대한 용서가 정말 감동 깊게 다가왔습니다. 과연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남과 북으로 갈리고, 남에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벽으로 나누고, 거기에 또 동과 서라는 지역 갈등이라는 케케묵은 벽으로 나누어 갇힌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가 그랬던 것처럼 위대한 용서와 진정한 화합으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요?
비록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는 스포츠 영화로써는 '조금 실망인데...'라는 푸념이 나올만 하고, 잘 가꾸어진 감동의 길을 아무런 제약 없이 담담하게 걸어가는 스토리 라인은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그래도 넬슨 만델라의 위대한 용서만으로도 충분히 비싼 극장비를 지불하고 관람할 값어치가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화가 심심해질만 하면 넬슨 만델라가 암살될지도 모른다는 식의 긴장감을 위트있게 섞어 넣으며 흥미를 자아내려고 하지만 솔직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는 분명 영화적인 재미는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위대한 용서를 할 줄아는 대통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현명함과 넬슨 만델라의 위대한 용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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