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러블리 본즈] - 진정한 슬픔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쭈니-1 2010. 3. 1. 13:34

 

 

 

감독 : 피터 잭슨

주연 : 시얼샤 로넌, 마크 월버그, 레이첼 와이즈, 스탠리 투치, 수잔 서랜든

개봉 : 2010년 2월 25일

관람 : 2010년 2월 27일

등급 : 15세 이상

 

 

피터 잭슨의 실패작?

 

제 인생의 최고의 영화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3부작이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 12월에 개봉한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2001년 12월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로부터 시작한 [반지의 제왕 3부작]은 2002년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을 거쳐 2003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3년 동안 저는 기다림의 묘미를 맘껏 만끽하였고, 당연히 제 인생의 최고의 영화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이 되었답니다.

그 후 피터 잭슨 감독은 [킹콩]을 통해 [반지의 제왕] 3부작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렸고, 2009년엔 무명인 네일 블룸캠프 감독의 신개념 SF영화, [디스트릭트 9]의 제작을 맡으며 그의 눈썰미가 여전함을 과시했습니다. [디스트릭트 9]의 성공은 그가 [킹콩]이후 무려 4년 만에 감독을 맡은 [러블리 본즈]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러블리 본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을 맡음으로써 그 기대감을 더욱 부풀려 놓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서 극장에 공개한 [러블리 본즈]의 흥행 성적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단 3개의 스크린에서 제한적으로 공개된 성적은 감안하지 않더라도 2,500여개의 극장에서 확대 개봉하였어도 [러블리 본즈]는 1천7백만 달러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3위에 머물렀으며, 개봉 12주가 지난 현재도 고작 4천3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을 뿐입니다. 이 영화의 알려진 제작비가 6천5백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실망스러운 흥행 성적임에 분명합니다.

국내 극장 개봉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아직 개봉 1주차에 불과하기에 이 영화의 흥행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의형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에 흥행 성적이 밀리고 있으며, 관객들의 평가도 [반지의 제왕] 3부작, [킹콩]때와는 다르게 냉정한 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의 실패작일까요? 흥행 성적과 관객들의 뜨끈미지근한 평가를 본다면 분명 실패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겐 이 영화를 피터 잭슨의 실패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2시간 15분 동안 황홀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14살에 살해된 소녀...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러블리 본즈]의 내용은 영화의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그대로 14살에 살해된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사진 작가가 꿈인 밝고 활발한 성격의 수지(시얼샤 로넌)는 평소 짝사랑하던 남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은 생애 최고의 날 이웃집 아저씨(스탠리 투치)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녀의 죽음은 단란하던 수지의 가족들을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몰아 넣었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수지 역시 천국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녀의 가족과 살인자의 곁을 맴돌게 됩니다.

[러블리 본즈]에 대한 첫 느낌은 뭐랄까요... 암튼 이상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살해된 소녀와 잔인한 살인범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언뜻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떠올리겠지만 그건 확실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 이승을 떠도는 소녀의 영혼이라면 호러 영화를 떠올릴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확실히 아닙니다. 이렇듯 이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에서 쉽게 떠오를 수 있는 장르에서 [러블리 본즈]는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장르는? 제가 보기엔 판타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전형적인 판타지 영화와는 많이 벗어나 있지만 현세와 천국의 사이에서 수지가 머물고 있는 세상에 대한 묘사는 아름다운 판타지의 세상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화면을 보고 있으면 참 묘한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섬뜩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 영화의 화면은 아름답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은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영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사고로 인하여 죽음을 당한 한 남자(로빈 윌리암스)가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하다가 자살한 아내가 지옥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름다운 천국의 삶을 포기하고 아내를 찾기 위해서 지옥으로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영화에서 천국은 아름다운 원색의 세계로 그렸고, 지옥은 그레이 톤의 어두운 세상으로 그렸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던 남자에게 지옥은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러블리 본즈] 역시 그러했는데 천국보다 아름다운 지옥처럼, 수지가 머물고 있던 사후의 세계는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뒤틀린 욕망을 숨긴 살인마가 숨어살고 있는 미국의 중산층 마을보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진정한 슬픔은 아릅답다.

 

하지만 수지의 세계가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뜨거운 눈물이 제 볼을 타고 흐르게끔 만들 정도로 슬프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지를 잃은 잭(마크 월버그)과 애비게일(레이첼 와이즈)의 슬픔은 한 아이의 아버지인 제게도 마음 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눈물을 끄집어 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그들은 서서히 무너져갑니다. 수지의 살인범을 찾겠다는 잭의 집요함과 수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치려 하는 애비게일의 선택은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들에겐 그러한 방법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무언가에 집착을 하거나, 도망을 가거나. 그러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왠만하면 극장에서 울지 않는 저로써도 흐르는 눈문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잭의 슬픔을 표현한 장면 중에서 잭이 자신의 취미였던 모형 배가 들어있는 유리병들을 부수는 장면은 아름다움에 취해 눈물을 더욱 참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수지와 취미를 나누며, 자신이 소중하게 만들었던 유리병 속의 모형배를 사랑하는 수지에게 물러 주고 싶었던 잭은 수지를 잃은 상실감에 그 유리병을 부숴버립니다.

그러한 장면은 수지가 머물고 있는 세계에서 배들이 난파당하는 장면과 겹치는데 아름다운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의 슬픔이 공존하는 묘한 슬픔을 안겨줬습니다.

가끔 저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눈물은 노골적으로 눈물을 부추기는 장면보다는 눈물을 애써 참아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눈물을 흘리곤합니다. 그리고 [러블리 본즈]에서는 슬픔을 스크린에 그려낸 피터 잭슨의 아름다움이 제 눈물샘을 자극한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에서 묻어난 슬픔... 그렇기에 제 눈물은 그냥 억지로 짜낸 형식적인 눈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몇 가지 부족했던 것들.

 

이렇듯 [러블리 본즈]는 최근에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아름다우며 슬펐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이 영화에 완벽하게 만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잭과 애비게일이 수지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너무 많은 생략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서 수지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도망을 친 애비게일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생략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애비게일은 느닷없이 가족을 떠났다가 느닷없이 돌아온 무책임한 엄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수지의 살인범으로 이웃집의 하비를 의심하기 시작한 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집요함은 너무 축약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애비게일이 돌아옴과 동시에 그 모든 집요함이 갑자기 풀려버리는 후반부는 맥이 풀리기까지 했습니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예상 외의 활약을 펼치는 인물은 수지의 동생인 린지인데... 린지가 하비의 집에 숨어들어가는 장면은 정말 제 숨이 멎어버릴 정도로 긴장하게 만들더군요. 

 

애비게일이 돌아옴으로써 잭의 집요함이 마법처럼 풀리고 그로 인하여 하비의 최후를 하늘의 뜻에 맡긴 라스트 씬 역시도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었습니다. 전 사실 시원스러운 복수를 기대했거든요. 하긴 이 영화가 복수에 대한 영화가 아닌 상처의 치유와 용서에 대한 영화임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잔인한 살인범을 용서하기엔 제 내공이 부족했나봅니다.(아님 피터 잭슨의 내공이 부족했거나...)

[러블리 본즈]는 제게 100점 만점의 영화에서 90점 정도는 획득할 수작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러한 제 평가는 다른 분들의 평가와 많이 다르겠지만 이 영화의 환상적인 장면과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피터 잭슨의 역량은 충분히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수지의 가족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너무 뜬금없게 그려진 약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처럼 3시간이 넘는 영화로 만들 수 없었다면 그러한 이 영화의 약점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영화들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 평가가 너무 너그럽나요? 이해해주시길... 제게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선물해준 피터 잭슨 감독에 대한 예우라고나 할까요. ^^

 

  피터 잭슨 감독님... 당신의 영화는 언제나 제게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