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평행이론] - '평행이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만 버렸다면...

쭈니-1 2010. 2. 22. 01:04

 

 

 

감독 : 권호영

주연 : 지진희, 이종혁, 윤세아, 박병은, 하정우

개봉 : 2010년 2월 18일

관람 : 2010년 2월 21일

등급 : 15세 이상

 

  

2010년 한국영화의 대세는 스릴러... 그러나...

 

2010년 새해 아침이 밝은지도 어느덧 한달하고 20일이 지나갔습니다. 2009년 연말부터 불어닥친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아바타]가 2010년 새해 극장가를 평정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블럭버스터 [전우치]도 선전하며 한국영화의 체면치레를 하였습니다. [아바타]의 국내 박스오피스 1위 행진을 멈춘 것도 우리 영화인 [의형제]였으며, [하모니] 역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2010년 가장 눈에 띄는 한국영화는 [전우치]도, [의형제]도, [하모니]도 아닌 바로 한국형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 12월에 개봉했던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와 [시크릿] 그리고 2010년에 개봉한 [용서는 없다]와 [평행이론], 조만간 개봉 예정인 [무법자], [반가운 살인], [베스트셀러], [이끼]까지... 올해는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이 풍년을 이룰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세븐 데이즈], [추격자]의 흥행 성공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만 있다면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도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스릴러 영화의 장점을 한국영화계가 뒤늦게 발견한 것이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탄탄한 시나리오가 있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꼭 필요함을 절대 잊어선 안됩니다. 그러나 요즘의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을 보면 그러한 전제 조건을 새까맣게 잊은 듯이 보입니다.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기에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붐이 반갑기도 하고 [세븐 데이즈], [추격자]를 재미있게 봤기에 최근 개봉하는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도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인데 이들 영화들이 내세우는 것은 한결같이 충격적인 결말과 난무하는 반전이었습니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가 없이 충격적인 결말과 반전만 난무한다면 그 영화는 분명 성공한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평행이론... 스릴러 영화의 소재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2월 18일 개봉하여 [의형제], [하모니]와 더불어 좋은 흥행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평행이론]은 어떨까요? 안타깝지만 [평행이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평행이론'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사람이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라는 다소 황당한 '평행이론'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관객의 흥미를 자아냅니다.

 

최연소 부장판사로 임명되며 출세 가도를 달리던 김석현(지진희)에게 어느날 아내인 배윤경(윤세아)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는 30년 전, 자신과 똑같이 최연소 부장판사로 임명된 한상준 판사가 '평행이론'대로 자신과 똑같은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현재의 사건을 막기 위해서 과거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평행이론]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소재에 있습니다. 과거 사건의 단서가 현재 사건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함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객에게 과거의 사건에 집착하게 만듬으로써 현재 사건에 대한 진실의 접근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그렇기에 석현이 '평행이론'에 매달려 과거의 사건을 파헤칠수록 저는 현재의 사건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의 혼돈은 스릴러 영화를 보며 진범을 잡겠다고 덤벼드는 관객을 향한 훌륭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평행이론]은 스릴러 영화의 미덕인 관객과의 두뇌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셈입니다.

 

너무 쉬운 첫 번째 반전... 하지만 두 번째 반전은?(스포일러 주의)

 

'평행이론'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혼합해 놓고 관객들을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평행이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유리한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평면적인 캐릭터의 배치 때문입니다. 권호영 감독은 석현만 제외하고는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들이 진범이라 믿고 있는 장수영(하정우)을 미끼로 사용합니다. 하정우는 [추격자]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권호영 감독이 원하는 미끼가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지만 솔직히 그러한 감독의 의도에 속아 넘어갈 순진한 관객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대비해서 석현과는 라이벌이자, 윤경에게 끈적끈적한 시선을 보내던 이강성(이종혁)을 두 번째 미끼로 사용합니다. 이번엔 30년 전 과거의 사건이 당시 담당 검사였던 법원장(박근형)이 진범이었음을 은근히 암시하며 관객들에게 강성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그러한 권호영 감독의 함정은 꽤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라면 마르고 닮도록 본 관객에겐 당연히 통하지 못합니다.

 

전 처음부터 윤경의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눈치챘습니다. 스릴러 영화 팬인 남편을 따라 간간히 스릴러 영화를 본 구피 역시 저와 마찬가지도 눈치챈 것을 보면 이 영화의 첫 번째 반전은 그다지 매끄럽게 숨겨지지 못한 듯이 보입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간단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필요하게 많이 나오면서 별로 비중이 없는 척 그려진 캐릭터만 찾으면 되는 겁니다. 감독이 너무 의도적으로 숨기려 하면 할수록 그러한 캐릭터는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반전은 맞추지 못했습니다. 윤경을 살해한 진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수영의 역할 역시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미끼 역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끝맺음까지 맡았더군요. 제가 비교적 첫 번째 반전을 쉽게 맞춘 것에 반에 그렇게 두 번째 반전을  통째로 놓친 이유는 '평행이론'이 스릴러 영화로써의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이렇게 맹신적으로 '평행이론'을 믿고 따를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극적이 될 필요가 있을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2010년은 스릴러 영화의 풍년입니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들이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이들 영화들은 점점 자극적이 되어 갑니다. 그러한 자극성은 수 많은 스릴러 영화들 틈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흥행에 성공하기 위한 몸부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극적인 행위에 희생당하는 것은 영화 속의 어린 아역 캐릭터들입니다.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는 아역 캐릭터들에게 성적 학대에 존속 살해를 강요했고, [시크릿]은 주인공의 어린 딸을 죽임으로써 시작합니다. [용서는 없다]는 조금 더 심한 편인데 아예 아무 잘못없는 주인공의 딸을 난도질하고 훼손함으로써 충격적인 반전을 완성해 놓았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평행이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평행이론'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의 활용에 멈추지 않고 석현의 귀여운 딸에게 계속 가학적인 상황을 만들고 희생시킵니다. 마치 '이래도 충격받지 않을래? 이 귀여운 아이가 이렇게 당하는데도? 빨리 충격을 받으란 말야!!!'라고 권호영 감독이 제게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스릴러 영화도 분명 오락 영화입니다. 관객이 즐기기 위해서 보는 영화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관객들이 스릴러 영화들을 즐기고 마지막 반전 역시도 즐겨야 합니다. [추격자]처럼 충격적인 장면들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박수를 받는 영화도 분명 존재하지만 모든 스릴러 영화들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제가 한 아이의 아버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용서는 없다]의 억지스러운 반전이 유독 기분 나쁘게 느껴졌으며, [평행이론] 역시도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너무 충격적인 반전을 위해서 앞으로 달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충격적인 장면들로 인하여 영화를 즐기는데 방해를 받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오락 영화로써의 기능을 충실히 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별로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반전은 너무 아마추어처럼 숨겨 놓아서 싫었고, 두 번째 반전은 약간 억지스러웠으며, '평행이론'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어린 아역 캐릭터는 오락영화로써의 기능을 방해하기만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최근 본 한국형 스릴러 영화에서 제게 만족감을 준 영화가 거의 없군요. 제가 눈이 높은 걸까요? 아님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이 수준 미달인 것일까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이 영화의 초강력 미끼들... 과연 이 미끼 속에 범인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