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 존스턴
주연 : 베니치오 델 토로, 안소니 홉킨스, 에밀리 보론트, 휴고 위빙
개봉 : 2010년 2월 11일
관람 : 2010년 2월 12일
등급 : 18세 이상
설 연휴 전쟁을 앞두고..
이제 몇 시간 후면 설 연휴입니다. 하지만 연휴라고 하기엔 이번 설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 있어서 짧게만 느껴집니다. 그렇지않아도 명절이면 회사에 나가는 것보다 더욱 바쁘고 힘든데 황금같은 토, 일요일마저 까먹어 버리니 굉장히 손해보는 느낌입니다.
짧은 명절 연휴 덕분에 회사에서 하루간의 휴가를 얻은 저는 아침엔 혼자 [울프맨]을 보고, 저녁엔 회사에 갔다 와 기진맥진한 구피와 함께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봤습니다. 원래는 영화를 보면 곧바로 영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이젠 버릇이 되어 버렸지만, 전쟁과 같은 설 연휴를 앞두고 있기에 껄떡지근한 기분을 애써 누르고 [울프맨]과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영화 이야기는 설 연휴가 끝나고 쓸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눕자마자 요란하게 울리는 구피의 핸드폰... 구피는 자다말고 부시시 일어나더니만 회사 일을 해줘야 한다며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못난 남편을 둔 까닭에 힘들어도 회사를 관두지 못하고 이렇게 설 연휴을 앞둔 늦은 시간에도 회사 일을 위해 잠을 설치는 구피의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저 혼자 편하게 잠드는 것도 내키지 않고해서 저도 이렇게 [울프맨]의 영화 이야기를 쓰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이제 몇 시간후면 저희 부부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꾸벅꾸벅 졸며 설날 차례 음식을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암튼 이래저래 올해 설날은 전쟁과 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쟁과 같을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설날. 난 숨고만 싶다.
공포영화? 아니면 판타지영화?
밝고 화려한 영화를 선호하는 제가 하필 전쟁과 같은 설 연휴를 앞두고 선택한 첫 번째 영화가 어두운 호러 장르의 영화인 [울프맨]인 까닭은, 제겐 이 영화가 공포스럽기 보다는 판타지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전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판타지영화와 SF영화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울프맨]은 그 경계가 상당히 모호합니다. 하지만 감독이 [쥬만지], [쥬라기 공원 3]의 조 존스턴이기에 전 [울프맨]을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판타지영화로 분류한 것입니다.
실제로 [울프맨]은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습니다. 물론 무시무시한 늑대인간이 사람들을 무차별 살인을 하지만 그러한 장면들은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사지절단과 밖으로 꺼내지는 인간의 내장들로 인하여 조금 징그럽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깜짝 깜짝 놀라는 장면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러한 장면들 대부분이 '이쯤되면 늑대인간의 튀어 나오겠다.'라고 예상이 되는 장면들이기에 깜짝 놀라기만 할뿐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더군요.
이 영화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할 늑대인간 등장 장면도 무섭다기 보다는 친숙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늑대인간 자체가 우리와 친숙한 개와 같은 종인 늑대가 괴물로 변한 경우이기에 전 무섭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군요. 특히 영화에 깜짝 찬조출연한 골롬(?) 장면은 판타지 영화의 대작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생각나서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난 늑대인간이 별로 무섭지는 않더라.
공포영화로써는 실패작 그렇다면 판타지영화로써는?
분명 제 입장에서 공포영화로써의 [울프맨]은 실패작에 불과합니다. 늑대인간이라는 소재 자체가 별로 무섭지도 않았을 뿐더러, 늑대인간이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도 무섭다기 보다는 징그럽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공포스러운 장면들 역시 뻔히 예상이 되었기에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공포감을 느낄 여지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제겐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하긴 제가 [울프맨]에 공포감을 느끼고 싶어서 본 것은 아니었기에 애초부터 제겐 이 영화가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것이 장점으로 발휘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판타지영화로써의 이 영화는 어떠했냐는 점입니다. 물론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전통 판타지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무대가 현실적인 공간보다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느껴지고, 늑대인간이라는 캐릭터 역시 [해리 포터 시리즈], [뉴 문]에서 중요한 조연 캐릭터로 활용될 정도로 판타지스러운 소재이기에 이 영화에 판타지영화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이 그리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울프맨]은 판타지영화로써도 그다지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스토리 전개가 너무 평범합니다. 판타지영화의 장점은 상상력의 극대화인데 [울프맨]은 그러한 상상력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공포영화의 고전 캐릭터인 늑대인간을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범한 영화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영화의 공간은 판타지스러웠지만 영화는 상상력을 맘껏 펼쳐내지는 못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울프맨]을 본 후 극장을 나서며 제 감정은 참 미묘했습니다. 왜냐하면 [울프맨]에 대해서 이 영화가 과연 재미있었는지, 재미없었는지 도대체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었다고 하기엔 [울프맨]은 무엇하나 뛰어난 것이 없습니다.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상력이 돋보이지도 않으며, 로렌스(베네치오 델 토로)가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특수효과 역시 평범하고, 로렌스와 그웬(에밀리 블런트)의 로맨스도 뜬금없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재미없었다고 단정짓고 싶지도 않습니다. 요즘 영화 속에서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늑대인간이라는 캐릭터의 원천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였으며, 변장하지 않아도 늑대인간처럼 보일 것만 같은 베네치오 델 토로의 독특한 외모와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키는 안소니 홉킨스의 섬뜩한 연기, 그리고 은근히 매력적인 에밀리 브런트와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휴고 위빙의 차가운 연기도 좋았습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러 가는 길에 구피가 제게 묻습니다. '[울프맨]은 재미있었어?' 저는 '글쎄... 재미는 없었는데 흥미롭긴 했었어.'라며 제가 생각해도 재미있었다는 것인지, 없었다는 것은지 당췌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대답으로 얼버무렸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그웬의 나래이션에서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과 짐승의 경계는 어디까지 봐야할까?... 그 나래이션대로 과연 영화에서 '재미있다'와 '재미없다'의 경계는 어디까지 봐야할까요? [울프맨]은 바로 그 경계가 참 모호한 영화였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안소니 홉킨스의 섬뜩함도 좋았고,
에밀리 브론트의 매력도 좋았지만 재미있다고 하기엔 확실한 뭔가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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