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용서는 없다] - 반전을 만들어 놓고 영화를 짜맞춘 듯한 (스포일러 주의)

쭈니-1 2010. 1. 14. 14:59

 

 

 

감독 : 김형준

주연 :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

개봉 : 2010년 1월 7일

관람 : 2010년 1월 13일

등급 : 18세 이상

 

 

식욕이 싹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상무님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빨리 퇴근한 시간은 6시 30분, 부랴부랴 극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20분, [나인]이 시작한 시간은 7시30분, [나인]이 끝난 시간은 9시30분, [용서는 없다]가 시작한 시간은 9시40분... 한마디로 저는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기 위해서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침 잠이 많아서 아침 식사는 하지 못하고, 점심 식사는 회사 식당에서 간단하게 처리하기에 저는 저녁 식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으니 제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며 난리가 났었죠.

게다가 [나인]과 [용서는 없다]를 보기 전에 극장에서 보여준 영화 예고편이 하필 [식객 : 김치전쟁]입니다. 그렇지않아도 배가 고픈데 먹음직한 음식이 극장화면에 가득 채워지니 제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더군요. [나인]을 볼 때는 제 앞좌석에 앉은 연인들이 버거킹 감자튀김을 영화를 보며 먹어서 절 아주 미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체면 불구하고 케찹이라고 조금 달라고 하고 싶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한 굶주린 제 배는 10시가 되면서 잠잠해졌습니다. 바로 [용서는 없다] 덕분(?)이죠. 영화의 초반 사지가 절단된 여성 시체와 그러한 시체를 부검하는 장면이 얼마나 생생하게 나오던지... 영화 속에서 서영(한혜진)이 부검 장면을 보며 구토를 했듯이 저 역시 사람의 시체에서 분리되는 시뻘건 살과 내장을 보며 식욕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벼운 구토 증상이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 올랐습니다.

 

아저씨 때문에 내 왕성한 식욕이 사라졌어요. 책임지세요.

 

 

잘 만든 스릴러? 

 

제가 저녁 식사까지 굶어가며 [용서는 없다]를 보려 했던 이유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2009년 마지막 스릴러인 [시크릿]은 아쉽게 놓쳤지만 2010년 첫 번째 스릴러인 [용서는 없다]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덕분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영화를 향한 상반된 반응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고의 반전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억지 반전이라며 불쾌해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이런 경우 저는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죠.

그러면 과연 제가 직접 확인한 [용서는 없다]는 어떤 영화일까요? 제게 [용서는 없다]는 중반까지 꽤 잘만든 스릴러였지만 후반의 반전 부분에서 실망한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용서는 없다]의 반전을 미리 눈치챈 것은 아닙니다. 저도 전혀 눈치 못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형준 감독을 칭찬할 만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 반전이 치밀했는지 따져 본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좋았던 점부터 이야기해보죠. 김형준 감독은 스릴러 영화가 영화와 관객 간의 두뇌 싸움이라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이 보입니다. 그는 관객을 속이기 위해서 이중 삼중으로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성호(류승범)에게 납치당한 민호(설경구)의 딸의 존재입니다. 민호는 성호에게 딸을 납치당합니다. 성호의 조건은 3일 안에 자신을 빼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호의 딸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죠. 여기에서 이 영화의 첫 번째 함정이 있습니다.  

 

딸의 목숨을 건 민호와 성호의 협상. 하지만 그건 관객을 위한 함정이다. 

 

 

[추격자]가 되고 싶었던 [세븐 데이즈]!!!

 

주인공의 딸이 납치되었다라는 설정의 스릴러 영화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제 경우 [세븐 데이즈]입니다. 실제로 [세븐 데이즈]와 [용서는 없다]는 비슷한 점이 꽤 많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납치된 아이는 무사히 돌아오기 마련이죠. 왜냐하면 아무리 반전에 환장한 관객이라고해도 아무 죄없는 인물이 무책임하게 희생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는 없다]에서도 민호의 딸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성호에게 죽임을 당한 모든 캐릭터들은 모두 죄를 지었지만(민호마저도) 민호의 딸만큼은 전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기에 당연히 이 영화의 촛점은 민호가 딸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에 쏠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형준 감독은 [용서는 없다]를 [세븐 데이즈]가 아닌 [추격자]로 만들었습니다. [추격자]가 걸작 스릴러로 각광을 받은 이유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했지만 미진(서영희)의 의외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도 큰 몫을 해냈습니다. 저는 미진의 처참한 죽음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만큼 아무 죄없는 불쌍한 미진의 죽음은 [추격자]를 최고의 스릴러로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용서는 없다]가 노린 것은 바로 그러한 충격과 더불어 민호의 딸이 살아있다는 가정하에서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숨기는 것이죠.

이 영화의 두 번째 함정은 민호와 성호의 관계입니다. 반전을 위한 영화를 볼 때 관객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첫 번째 반전에 너무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반전은 미끼일 경우가 많습니다. [용서는 없다]에서의 경우는 민호와 성호의 관계가 그 미끼에 해당됩니다. 그러한 미끼는 잘 포장되어 있지만 관객이 쉽게 눈치챌 수 있도록 마련해 놓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반전을 맞춘 관객들이 '내가 이겼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쉴 때 두 번째 반전을 꺼내들며 뒷통수를 치는 것이죠. [용서는 없다]가 그러합니다.

 

휴~~ 도대체 뭔 반전을 이렇게 꽁꽁 숨겨뒀대요? 

 

 

민호는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갔을까?

 

김형준 감독은 분명 마지막 반전을 잘 숨겨놓았습니다. 게다가 그 마지막 반전은 분명 충격적이었습니다. 희생 당한 민호의 딸은 아무런 죄가 없는 선량한 아이였기에 안타까움과 충격은 분명 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전을 꽁꽁 숨겨두기 위해서 [용서는 없다]는 허술한 전개를 보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과연 제가 민호였다면 성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요? 아니 받아들였다고 해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증거를 조작해 나갈까요? 아니요. 그건 바보나 할 짓입니다. 성호가 제안한 것은 3일 안에 자신을 경찰서에서 꺼내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간단한 일을 증거조작이라는 어려운 일로 해결해야 하는 거죠?

자! 생각을 해보세요. 거동이 불편한 성호 혼자 범죄를 저지르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공범이 있습니다. 영화 내내 공범을 의심하지 않는 경찰들도 한심하지만, 그러한 공범을 미끼로 민호는(민호는 이미 공항에서 공범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경찰에게 제안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일단 성호를 풀어줘 납치당한 딸 아이도 되찾고, 성호의 뒤를 은밀하게 쫓아 공범도 잡자고... 성호를 잠시 경찰서에서 풀어주는 것은 그러한 대의명분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당연히 민호는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습니다.

 

미안하다. 내가 멍청해서 그랬다.

 

 

내가 성호라면 그런 무모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사실 사람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죠. 그런 면에서 성호의 계획은 정말 무모합니다. 민호가 증거를 조작할 것이라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그런 계획을 세우다니... 민호가 증거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민호를 향한 성호의 복수는 성호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 뻔한데 말이죠.

이쯤에서 또 한 편의 생각나는 영화가 있죠. 바로 [올드보이]입니다. 과연 우진(유지태)은 대수(최민식)가 미도(강혜정)를 사랑하게 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대수가 미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진의 복수는 결코 완성되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최면술입니다. 우진은 대수와 미도가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그 둘에게 오랜 기간동안 최면을 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호는 그저 민호가 증거를 조작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영화 속의 민호는 돌팔이라서 절단된 시체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도 눈치 못챘고, 경찰과 협조하여 일단 성호를 풀어주는 쉬운 작전조차 생각하지 못해 성호의 마지막 복수가 완성되지만 이건 반전을 위한 감독의 억지 짜맞추기에 불과합니다.

제가 보기에 [용서는 없다]는 마지막 반전을 미리 만들어 놓고 거기에 이야기를 짜맞춘 듯이 보입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반전은 분명 중요한 요소이지만 영화의 전부는 아니기에 이런 식의 반전을 위한 스릴러 영화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용서는 없다]는 충격적인 반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나서 '잘 만든 스릴러 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용서는 없다]의 캐릭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