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나인] - 귀도가 [이탈리아]를 완성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쭈니-1 2010. 1. 14. 11:16

 

 

 

감독 : 롭 마샬

주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페넬로페 크루즈, 니콜 키드먼, 마리안 코티아르, 주디 덴치

개봉 : 2009년 12월 31일

관람 : 2010년 1월 13일

등급 : 15세 이상

 

 

올해도 여전히 나의 생일 선물은 영화보기이다.

 

어렸을 때는 생일이 되면 집으로 친구들 초대해서 과자 파티를 했었습니다. 성인이 되니 생일이 되면 친구들과 밤거리를 거닐며 술 파티로 바뀌더군요. 연애할 때는 서로의 생일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며 둘 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나니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결혼 이후의 생일은 가족들과 오붓하게 보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결혼 초창기에는 선물도 사주고 나름대로 이벤트도 해줬지만 이제 결혼 7년차가 되고나니 그런 것도 없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돈이 문제죠. 내 주머니가 구피의 주머니이고, 구피의 주머니가 내 주머니인만큼 돈이 드는 선물보다는 돈이 안드는 마음의 선물을 서로 주고 받게 되었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래도 전 제 생일이면 꼭 빠뜨리지 않고 챙겨서 받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보기입니다. 구피가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라고 물으면 전 어김없이 '영화 보여줘.'를 외치죠. 이번 제 생일 때도 그랬습니다. 아예 구피가 먼저 회사 끝나면 맘껏 영화 보고 오라며 자유의 시간을 주더군요.

생일 선물로 보는 소중한 영화이기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용서는 없다]를 볼 계획이었는데 목동 CGV 상영시간을 체크하다보니 [나인]으로 마음이 바뀌더군요. 그러나 막상 [나인]을 보고나니 [용서는 없다]가 또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인]과 [용서는 없다]를 연달아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진짜 구피의 선물은 따로 있었답니다. 평일에 그것고 퇴근 후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다는 것은 저녁 식사를 굶어야 가능합니다. 그날도 당연히 저녁식사를 굶고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 후 집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구피가 그 늦은 시간에 맛있는 국수를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영화도 보고, 새벽에 구피가 끓여준 국수도 먹고 제 36번째 생일은 정말 행복했답니다.

  

 쭈니야! 생일 축하해. 너도 이제 30대 후반이구나. -_-;

 

 

창작의 고통... 난 이해되었다.

 

[나인]은 이탈리아의 천재 감독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홉 번째 작품을 준비하며 창작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내용을 담은 뮤지컬 영화입니다. 니콜 키드먼, 페넬로페 크루즈, 케이트 허드슨, 마리안 코티아르 등 전 세계의 내놓으라하는 유명 여배우들이 총 출동하였지만 미국에 이어 국내에서도 흥행에 참패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저는 영화의 초반 귀도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에 상당히 공감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20여년 동안 영화를 보면 빠뜨리지 않고 감상평을 적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영화를 본 제 느낌 그대로 노트에 적었던 것이 나중엔 영화 평론가들 흉내내느라 어려운 단어들 섞어가며 그럴 듯하게 감상평을 적기도 했고, 홈페이지를 통해 제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소개된 이후부터는 잘 쓰려고 제 나름대로 공부도 하며 노력했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화를 보기가 두려워지더군요. 영화를 보면 감상평을 써야하는데 잘 쓸 자신이 없으니 아예 영화를 안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도 감상평을 쓰겠다며 멍하니 컴퓨터 책상에 앉아 몇 시간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보고나서 감상평을 쓰데 거의 3~4시간이 걸렸으니 참 환장할 노릇이었죠.

물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의 창작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제가 느낀 창작의 고통은 미비하지만 영화의 시나리오를 단 한줄도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귀도의 모습은 영화를 보고나서 감상평을 단 한줄도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제 모습과 겹쳐서 꽤 많이 공감되었답니다.

 

 그와 내가 느끼는 창작의 고통의 크기는 다르지만 그래도 난 귀도가 이해된다.

 

 

화려한 볼거리에 압도되다.

 

창작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귀도의 모습에 공감이 되자 영화의 초반 [나인]에 대한 제 몰입도는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블럭버스터 뮤지컬답게 거대하고 화려한 뮤지컬 장면은 제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처음엔 낯설게만 느껴졌던 음악도 어느 순간부터 제 귀에 착착 감기기 시작했고,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인 화려한 캐스팅은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줬습니다.

특히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섹시하더군요. 스트레스로 인하여 거의 넉다운 일보직전에 몰린 귀도를 섹시함으로 달래던 그녀의 모습은 영화를 보던 저도 화끈 달아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영화의 후반에 등장하는 니콜 키드먼은 정말 여신다웠습니다. 도도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페넬로페 크루즈와 완벽하게 대비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한 톰 크루즈가 조금 부럽기도... ^^;

주디 덴치와 소피아 로렌의 노련미가 묻어나는 무대와 귀도의 어린 시절 회상씬에 나와 가장 인상깊은 무대를 보여줬던 스테이시 퍼거슨의 강렬함도 좋았습니다. 청순미를 갖춘 마리안 코티아르의 무대 역시 루이사의 외로움이 물씬 풍겨나서 가슴이 찡했답니다. 단지 제가 좋아하는 케이트 허드슨의 무대가 너무 짧은 것이 이 영화의 뮤지컬 장면에서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네요.

이 수 많은 여배우들 틈에서 굳건히 중심을 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역시 백점 만점의 백점이었는데 [라스트 모히칸]에서 보여줬던 그 야성적인 매력은 온데간데 없이 깊이 패인 주름살로 릴리(주디 덴치)에게 어리광부리며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던 모습은 그의 새로운 매력을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습니다.

 

화려한 뮤지컬 장면은 최소한 본전 생각은 안나게 만든다.

 

 

화려한 무대에 비해 주제의식은 소박하다.

 

하지만 이 모든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나인]에 대한 제 만족도는 기대도에 비한다면 조금 떨어지는 수준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너무 과도하게 기대한 측면도 있지만 데뷔작인 [시카고]로 2003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휩쓴 롭 마샬 감독의 영화이기에 [나인]에 대한 기대도가 당연히 높을 수 밖에 없죠.

[나인]에 대한 만족도가 생각보다 낮았던 이유는 이 영화의 화려함과는 달리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는 너무 소박하고 노골적이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초기작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최근 연출작의 실패로 위기에 몰린 귀도가 여러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허울 뿐인 자기 자신의 겉 모습과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솔직히 조금 낯뜨거웠습니다.

[나인]에서 귀도가 무조건 최고의 대작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대본도 없이 최고의 세트와 의상, 그리고 여배우들을 준비해 놓고 끙끙 앓았던 영화의 제목은 [이탈리아]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전 만약 귀도에 의해서 [이탈리아]가 만들어졌다면 바로 [나인]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인]은 뮤지컬 영화로는 기록적인 엄청난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 그리고 눈부신 의상과 무대는 만들어져 있지만 가장 중요한 영화의 줄거리와 주제가 빈곤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탈리아]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죠.

그러고보니 귀도와 롭 마샬 역시 닮은 점이 있군요. 초기작의 성공으로 천재 감독에 등극한 귀도와 데뷔작인 [시카고]로 아카데미를 거머쥔 롭 마샬. 하지만 귀도가 감독으로써의 위기를 맞이하였듯이 롭 마샬 역시 [시카고]에서 [게이샤의 추억] 그리고 [나인]에 이르기까지 하락세가 뚜렷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귀도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재기하기는 것처럼 롭 마샬 감독도 영화의 화려함에 매몰되지 말고 진심이 담긴 영화로 다시 [시카고]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섹시함 등 화려한 볼거리는 많은 영화이지만...

내가 진정 원한 것은 진심이 담긴 감독의 연출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