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론 클레멘츠, 존 머스커
더빙 : 아니카 노니 로즈, 블루노 캠포스
개봉 : 2010년 1월 21일
관람 : 2010년 1월 30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내가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챙겨보는 이유.
제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영화라면 공포영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장르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아닙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은 만큼 저는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와 집에서 봐야할 영화를 엄격하게 구분해 놓습니다.
그 중에서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와 SF 장르의 영화들과 블럭버스터급 액션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입니다. 판타지와 SF의 경우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그린 영화들이 많기에 컴컴한 극장에서 봐야 영화 속, 환상의 세계에 몰입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환한 집에서 보면 몰입도가 상당히 떨어지기에 되도록이면 극장에서 챙겨보는 편이고, 블럭버스터급 액션영화 역시 극장의 대형 화면과 빵빵한 사운드로 보는 것이 훨씬 영화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굳이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챙겨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느꼈던 감동과 재미에 대한 추억 때문일 수도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장악한 3D 애니메이션의 놀라운 기술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잊어버리기 싫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수성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지켜내려는 몸부림도 어느 정도 있을 것입니다.
애니메션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순수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에 찌들대로 찌든 30대 후반의 직장인에게 순수함이 남아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느껴지는 그 순수함에 대한 착각은 제게 쾌감같은 것은 안겨주기도 합니다.
놀라지 마라. 우리 어른들에게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단다.
성인 혼자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은...
토요일 아침, 구피와 웅이가 하루 일정으로 시골집에 내려가는 덕분(?)에 아침 일찍부터 자유의 몸이 된 저는 당연히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구피와 웅이가 시골집에 간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기에 며칠 전부터 극장의 영화 시간표를 보며 열심히 계획을 세웠지만 안타깝게도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없었습니다. 제 기준에 의하면 코미디 장르인 [주유소 습격사건 2]와 드라마 장르인 [식객 : 김치전쟁] 그리고 최루성 드라마인 [하모니]는 극장에서 보는 것 보다는 가족들과 오봇하게 집에서 보는 것이 나은 영화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황금같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서 내키지는 않지만 아무 영화나 두 편 정도 골라서 관람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띈 것이 바로 [공주와 개구리]였습니다. 디즈니가 오랜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가 우리나라에선 흥행에 죽을 쑤고 있지만 용케도 개봉 2주차에 저희 동네 멀티플렉스 두 곳중 한 곳에서 살아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더빙 버전이더군요. 만약 웅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러 간다면 웅이를 위해 더빙을 봐야하지만 저 혼자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오리지널인 자막 버전을 더욱 선호하기에 [공주와 개구리] 더빙 버전은 아무래도 고민이 되더군요. 게다가 아무래 토요일 아침 8시 50분 영화라고 해도 극장안은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 분명하기에 영화에 집중하기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성인인 제가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즐기려면 그러한 불편함 정도는 감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발 아무리 더빙 버전이라도 노래만큼은 자막으로 해줬으면... 디즈니의 그 감미롭고 흥겨운 노래가 우리나라 가사로 어슬프게 더빙되니 그 재미가 반감되더군요. 생각해 보세요. 그 유명한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를 우리나라 성우가 '깊은 바다 밑~♪'이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어색할지...
더빙은 정말 싫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이 꾹 참고 봐주마.
[슈렉]과 비슷하다고? 글쎄...
디즈니가 오랜만에 셀 애니메이션을 내놓았다고 했을 때 처음엔 환호했지만 나중엔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공주와 개구리]의 줄거리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개구리 왕자'라는 동화를 모티브로 했지만 개구리와 공주가 키스를 하는 순간 개구리가 왕자가 되는 대신 공주가 개구리가 된다는 설정은 동화 뒤집기로 드림웍스의 그 유명한 [슈렉]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픽사의 [토이 스토리]가 디즈니 셀 애니메이션의 몰락을 예고한 영화라면 [슈렉]은 디즈니 셀 애니메이션의 몰락을 확정시킨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디즈니가 그러한 [슈렉]의 기본 설정을 따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디즈니가 픽사를 어설프게 따라한 3D 애니메이션 [볼트]와 비슷한, 달지도 쓰지도 않은 어정쩡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알기에 저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슈렉]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근간이 되는 동화를 뒤집었다면 [공주와 개구리]는 그러한 [슈렉]을 뒤집었습니다. [슈렉]이 겉보기엔 평범한 동화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공주와 개구리]는 겉보기엔 [슈렉]과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지만 마지막엔 [슈렉]과 전혀 다른 끝맺음을 선사함으로써 '아직 동화의 세계는 유효하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렇기에 [공주와 개구리]는 전형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흥겨운 노래와 춤, 조연 캐릭터들에 의한 웃음과 진실한 사랑, 그리고 디즈니의 영원한 테마인 해피엔딩과 노골적인 교훈까지... 한때는 그렇게 뻔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공주와 개구리]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상하지 못한 [슈렉]을 향한 멋진 펀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속이 시원하더군요.(그렇다고 제가 [슈렉]을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슈렉보다 훨씬 귀엽다고...
디즈니여! 영원하라.
'개구리 왕자'를 살짝 비틈으로써 [슈렉]의 뒤를 어설프게 쫓아가는 듯이 보였던 [공주와 개구리]는 결국엔 전형적인 디즈니식 해피엔딩을 통해 오히려 [슈렉]을 살짝 비트는 영리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의 이러한 영리하고 유쾌한 반격을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공주와 개구리]를 다 보고 영화 한 편을 더 보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어차피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도 없었기에...) 이 영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감독은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더군요. 그들은 [인어공주]와 [알라딘]을 공동 연출함으로써 디즈니 셀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보물성]의 대 실패로 디즈니의 몰락을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두 감독 모두 [보물성]이후 무려 7년 만의 신작입니다.
하지만 제가 눈여겨 본 것은 그들이 아닙니다. 바로 총제작을 맡은 존 라세티입니다. 그는 [토이 스토리 1, 2]와 [벅스 라이프], [카]를 연출했던 픽사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픽사가 디즈니와 흡수합병되며 존 라세티는 연출보다는 제작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월 -E], [업]이 그가 총제작을 맡았던 영화이며, 디즈니의 부활의 선봉에 섰던 [볼트]와 [공주와 개구리]도 그가 총제작을 맡았습니다.
존 라세티 감독이 [공주와 개구리]의 총제작을 맡은 것은 참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토이 스토리]의 대 성공으로 셀 애니메이션의 몰락을 초래했던 그가 셀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외치며 [공주와 개구리]를 총제작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하지만 저로써는 반갑습니다. 3D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판타스틱 M. 폭스]같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그리고 셀 애니메이션까지 애니메이션의 종류가 다양해 진다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으로 동심의 순수함을 간접 체험하는 저로써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전 외칩니다. 제발... 디즈니여! 영원하라.
선과 악의 단순한 구분과...
조연 캐릭터의 유머 한마당... 그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항상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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