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 - 해리 포터와 황금 나침반의 사이에서...

쭈니-1 2010. 2. 15. 17:38

 

 

 

감독 : 크리스 콜럼버스

주연 : 로간 레만, 알렉산드라 다다리오, 브랜든 T. 잭슨, 피어슨 브로스난

개봉 : 2010년 2월 11일

관람 : 2010년 2월 12일

등급 : 12세 이상

 

 

우리 눈썹이 휘날리며 뛰어서 겨우 이 영화를 봤다.

 

설 연휴를 앞둔 금요일. 전 좋은(?) 회사를 다니기에 금요일은 회사 전체가 휴일이었고, 구피는 나쁜(?) 회사를 다니기에 금요일에도 7시까지 야근을 하고 퇴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지난 금요일, 구피와 저는 희비가 엇갈렸지만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기 위해 목동 메가박스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은 같았습니다.

 

구피는 회사 업무가 7시가 되어서야 끝났기 때문이고(원래는 더 늦게 야근을 해야했지만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기 위해 무리해서 탈출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빠 놀아줘.'를 외치는 웅이와 조금이라도 더 놀아주려다가 7시 10분이 되어서야 극장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극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왜그리도 막히는지... 버스 두 정거장을 가는데 정확하게 20분이 걸리더군요. 걸으면 10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거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가겠다고 버스를 탄 것이 완전히 실수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지하철에서 내려 정말 눈썹이 휘날리게 뛰면서 구피에게 전화했더니 구피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습니다. 구피도 버스가 막히는 바람에 늦게 도착하여 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겨우겨우 영화가 시작하기 1분 전에 극장에 도착하여 숨을 헐떡거리며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봤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재미있었냐고요? 흠.. 솔직히 말한다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봤을 때하고 비슷했습니다. 이 영화, 너무 어린 아이 취향적이더군요.

 

그래도 난 해리 포터보다 훨씬 나이가 많단말야.

 

 

제 2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되고 싶은 이 영화의 야망!!!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을 보기 전에 저는 이 영화의 감독과 제목으로 인하여 이 영화가 제 2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잇다는 사실을 눈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을 연출하여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인기 판타지 시리즈로써의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이며, 영화의 제목도 주인공의 이름과 그 뒤에 영화의 부재를 넣은 방식으로 제목에서부터 이 두 영화가 서로 많이 닮았다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한 제 의심은 영화를 보고 난 후 더욱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영화 그 자체만으로는 그냥 넘기기엔 조금 심각할 정도로 [해리 포터 시리즈]와의 유사점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우선 퍼시 잭슨(로간 레만)이라는 주인공 캐릭터 자체가 그렇습니다. 퍼시 잭슨은 원래 올림푸스의 3대 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의 아들이지만 인간인 어머니에게 태어난 탓에 인간 세상에서 역겨운 의붓 아버지와 함께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뛰어난 마법사 집안의 아버지와 보통 인간의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해리 포터와  출생이 비슷하며, 이유는 다르지만 인간 세상에서 이모 가족의 구박을 받으며 보낸 어린 시절도 비슷합니다.

 

무엇보다도 모험을 떠나는 퍼시 잭슨과 친구들의 구성원이 해리 포터와 그의 친구들과 비슷한데 퍼시 잭슨의 수호신이자 친구인 그로버(브랜든 T. 잭슨)는 론을, 아테나의 딸인 아나베스(알렉산드라 다다리오)는 헤르미온느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조금 더 억지를 부리자면 켄타우루스인 케이런(피어슨 브로스난)은 덤블도어와 비슷한 면이 보였고요.

 

우리를 초딩들과 비교하다니... 우린 그래도 고딩이라고...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보물 창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따라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이 그래도 [해리 포터 시리즈]와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현대의 미국에 접목시킨 스토리 라인과 각약각색의 괴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이 그것을 잘 이용했다면 기본적인 구성이 비슷하더라도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은 그 자체적인 독특함을 인정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훌륭한 보물창고를 획득했지만 그 보물들을 잘 활용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다짜고짜 포세이돈에게 '니 아들이 번개도둑이다.'라고 몰아부치는 제우스(숀 빈)의 모습은 어이없었습니다. 번개를 도둑맞는 장면이 통째로 생략되었기에 최고의 신이라는 제우스가 어쩌다가 그 중요한 번개를 도둑맞았는지, 그리고 어찌하여 퍼시 잭슨을 의심하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설명이 안된채 이야기가 진행되니 스토리가 뜬금 없게만 느껴집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인데... 메두사(우마 서먼)는 물론이고, 히드라, 미노타우루스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매력적인 괴수 들은 이 영화에선 1회용으로 마구잡이로 소비된채 버려집니다. 특히 저는 메두사를 그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한 것이 너무 실망스럽더군요.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던 캐릭터였는데 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매력적인 영웅과 신, 괴수가 넘쳐나는 상상력의 보물창고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퍼시 잭슨 시리즈]가 이렇게 밖에 이 보물 창고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보입니다. 게다가 악당 캐릭터의 부재로 인하여 영화는 한 없이 가벼워졌고, 진짜 번개도둑의 정체가 영화의 초반부터 너무 쉽게 드러나 스토리의 의외성 역시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미인 박명이라더니... 어쩌다가 메두사의 운명이 이렇게 기구해졌단 말인가?

 

 

이렇게 하다간 시리즈화는 물건너 간 것이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전 세계적인 흥행으로 한때 할리우드는판타지 영화들을 마구잡이로 생산해 냈습니다. 하지만 이미 관객들의 눈 높이는 높아질대로 높아졌습니다. 단지 판타지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제 2의 반지의 제왕, 제 2의 해리 포터의 자리에 무혈입성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추부터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 좋은 예가 [황금 나침반]입니다. 판타지 영화가 새로 개봉할 때마다 저는 자꾸만 [황금 나침반]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분명 제 2의 반지의 제왕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는데 [황금 나침반]은 그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넣지도 못한채 1편 만으로 쓸쓸히 잊혀지고 있습니다. 판타지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상상의 세계를 담고 있기에 특수효과에 의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영화의 흥행력을 1편에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황금 나침반]처럼 2편은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이 영화의 흥행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매력적인 보물 창고를 가지고 이렇게 빈약한 스토리 구조만으로 영화를 채운다면 제 2의 해리 포터가 아닌 제 2의 황금 나침반이 될 것이 뻔해 보입니다. 어린 관객들을 타킷으로한 가볍고 심플한 스토리 라인도 좋지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으로써의 존재적 고민, 주인공을 능가하는 파워풀한 절대악의 존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당위성 등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는 [황금 나침반]과 같은 슬픈 운명을 지닌 판타지영화가 나오지를 안기를 간절히 바라는 판타지영화의 팬으로써 퍼시 잭슨이 좀 더 분발하여 2편에서는 어린 관객 뿐만 아니라 좀 더 성인관객들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가 나오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캐릭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