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0년 영화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미안하지만 이번엔 불평좀 해야겠다.

쭈니-1 2010. 3. 5. 12:42

 

 

 

감독 : 팀 버튼

주연 : 미아 와시코우스카,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앤 헤더웨이

더빙 : 마이클 쉰, 알란 릭맨, 스티븐 프라이

개봉 : 2010년 3월 4일

관람 : 2010년 3월 4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내게 최고의 감독은 팀 버튼이다. 하지만...

 

지난 [러블리 본즈]에서 밝혔지만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3부작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최고의 감독은 피터 잭슨이 아닙니다. 물론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직 제게 최고는 팀 버튼입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제가 영화에 처음 빠져들었던 1989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배트맨]이라는 기괴한 액션 블럭버스터에 매료되었고, 이후 그의 영화는 모두 챙겨보았습니다. [비틀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최근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까지... 그의 초기작을 제외하고는 그가 감독한 모

든 영화를 봤으며, 그것도 왠만하면 극장에서 보려고 늘 노력을 했었습니다.

제가 팀 버튼 감독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중 가장 지루하기로 소문난 [에드우드]마저도 저는 감동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며 봤습니다. 물론 100% 전부 재미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딱 한 편 [혹성탈출]은 정말 실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열두 편중 단 한 편만 실망했으니 성공률이 무려 91.7%나 됩니다.

 

그러했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향한 제 기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3월 4일, 하필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가 지끈거려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겨우 머리가 아픈 것만으로는 저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만남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3D로 보기로 결심을 했었습니다. 안경을 쓰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안경잡이가, 그것도 머리까지 아픈 상황에서 안경 위에 3D안경을 덧붙여 쓴다는 것은 굉장한 고역입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아바타]를 통해 3D영화의 진정한 재미를 알고 있었으며, 팀 버튼의 영화를 최상의 조건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굳이 3D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게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비록 [혹성탈출]만큼은 아니었지만 팀 버튼 감독의 영화중 제 개인적으로 가장 미지근하다고 평가하는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비교해서도 실망스러운 영화적 재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불평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큼은 불평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에 불평을 해야 하는 제 마음도 쓰립니다.  

 

 

도대체 왜 3D로 만든 거냐?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예매하는데 무려 1시간이나 고민을 해야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바로 2D로 볼 것인가? 3D로 볼 것인가? 때문입니다. 그렇지않아도 두통으로 지끈거리는데 안경 위에 3D안경을 쓸 것을 생각만해도 머리가 더 아파오는 상황이었기에 저는 왠만하면 2D로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1시간 동안 고민을 한 끝에 내린 제 결정은 3D로 관람하는 것이었습니다. 팀 버튼의 그로테스크한 세상을 생생한 입체감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제 결정은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뭐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아바타]를 보는 동안 저는 '우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하였습니다. 제가 마치 영화의 안에 들어가 직접 모험을 하는 것만 같은 생생한 입체감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닙니다.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가 나무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에서 아주 잠깐 3D의 생생함을 느꼈지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원색의 색상들 역시도 3D에서 별다른 화려함을 과시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3D로 인하여 선명해야할 색상들이 약간 뭉그러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기대했던 앨리스와 제버워크의 대결은 오히려 이 영화가 3D로써의 장점이 전혀 없음을 여실히 증명하고맙니다.

 

[아바타]의 엄청난 성공은 3D영화를 그저 단순한 이벤트성 상품으로 인식했던 영화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이제 영화의 미래는 3D에 달려있다는 듯이 여러 영화들이 앞을 다퉈 3D영화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윤제균 감독의 SF영화 [제 7광구]를 필두로 여러 편의 영화들이 3D로 제작될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아바타]처럼 치밀한 기획과 기술력 없이 섣부르게 3D에 도전할 경우 그 영화는 장점보다는 오히려 단점을 고스란히 보이게됩니다. 3D영화의 관람료는 1만3천원입니다. 2D영화의 관람료인 8천원(주말엔 9천원)인 것과 비교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이 비싼 편입니다. 그렇기에 3D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2D영화를 관람할 때보다 더 높은 기대감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이미 [아바타]가 3D영화에 대한 눈 높이를 한껏 올려놓았으니 [아바타] 이후의 3D영화들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3D영화로써의 장점이 전혀 안보이고, 오히려 단점만 보인다면 2D영화로 봤을 때보다 그 배신감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제작될 우리나라의 3D영화들도 그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관객의 눈 높이는 이미 이벤트성 3D영화를 뛰어넘어 있다는 사실을...

 

모자장수는 더 미쳤어야 했다.

 

만약 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실망한 것이 고작 3D 하나뿐이라면 전 차라리 2D로 한 번 더 관람하여 기여코 이 영화에 만족감을 되찾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서 실망감을 느낀다는 것은 제게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3D 외에도 실망스러운 점이 더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바로 팀 버튼 감독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이 연기한 모자장수였습니다.

모자장수는 포스터에 나와 있는 그대로 정말 미친 캐릭터야 합니다. 비정상적이면서 유쾌하고, 정신이 없어야 마땅할 이 캐릭터는 영화에선 오히려 차분하기만 합니다. 물론 붉은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의 독재정치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친 모자장수가 아닌 혁명가로써의 모자장수는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보다보면 상황에 맞지 않게 유쾌한 캐릭터가 종종 보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배트맨]의 조커(잭 니콜슨)입니다. 고담시의 절대악이며 안면손상으로 인하여 늘 웃는 인상을 할 수 밖에 없는 기괴한 악당 조커는 최악의 순간에서도 항상 농담과 웃음으로 자기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외계인의 침략으로 인하여 인류가 멸망할 순간에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았던 [화성침공]도 그렇고,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히지만 열정만은 최고의 감독인 오손 웰즈에 결코 뒤지지 않았던 에드 우드를 묘사한 [에드우드]에서도 그랬습니다.

마땅히 모자장수도 그랬어야 했습니다. 붉은여왕의 독재정치로 인하여 이상한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 치닫고 있었어도 그만은 유머를 지키며 앨리스를 맞이했어야 했습니다. 불안과 혼란의 표정으로 붉은여왕의 폭거를 기억해내고, 붉은여왕의 모자를 만들며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그 나약한 모자장수가 아니라 말입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서 항상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던 조니 뎁이었기에 그의 실망스러운 모습만으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도 난 이 영화가 80점이다.

 

이상한 나라를 붉은여왕에게서 구하는 앨리스의 모험담은 팀 버튼의 영화답지 않게 평면적입니다. 어차피 원작이 있는 영화이기에 팀 버튼 감독의 상상력만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긴 했지만 그래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라스트인 앨리스와 제버워크의 대결 역시도 예언서에 나온 그대로 진행되어 긴장감이 부족했으며(3D의 생생함이라도 살아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도 못한...)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는 언어유희들은 번역의 한계에 부딪혀 어리둥절함만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최악의 영화인 것은 아닙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의 성적이 제게 평균 90점 이상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80점 정도는 매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모자장수가 해내지 못한 유쾌한 미치광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고양이 체셔(스티븐 프라이)가 매력적이었고, 이상한 나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당 붉은여왕 역시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절 유쾌하게 만들었습니다. 붉은여왕과 비교되는 하얀여왕(앤 헤더웨이)은 외모의 독특함에서 붉은여왕에게 뒤쳐졌지만 독특한 손동작으로 개성을 한껏 살려냈습니다. 원색의 화려한 색감과 이상한 나라를 형성화한 독특한 영상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입니다.

 

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대도가 90점인데 만족도가 80점이면 그 영화에 대한 실망도는 10점입니다. 결국 그 영화는 절 실망시킨 영화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기대도가 60점인데 만족도가 70점이면 그 영화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안겨준 영화가 됩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를 비교해본다면 앞의 영화가 만족도 80점으로 뒤의 영화인 만족도 70점 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인 셈이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그러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제 기대도는 무려 100점입니다. 팀 버튼의 영화는 최소한 제게 90~100점 사이의 만족도를 안겨줬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소재 자체가 팀 버튼의 기괴한 영화관과 잘 맞아 떨어질 것으로 보여서 이 영화에 대한 제 기대도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만족도는 80점입니다. 제가 기대한 것에 무려 20점이나 부족한 영화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서는 꽤 높은 만족도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항상 공부 잘하던 학생이 잠시 부진한 것을 바라봐야하는 선생님의 안타까움처럼... 팀 버튼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이번엔 불평좀 해보았습니다.

 

 팀 버튼 감독은 이 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실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