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성
주연 : 성룡, 왕리홍, 유승준
개봉 : 2010년 3월 11일
관람 : 2010년 3월 12일
등급 : 12세 이상
성룡의 영화에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80년대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 그렇겠지만 저 역시 성룡의 열렬 팬이었습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웃겼고, 재미있었습니다. 게다가 명절 때면 어김없이 개봉하는 그의 영화들 때문인지 몰라도 성룡은 남의 나라의 배우가 아닌 마치 우리나라의 배우처럼 친근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성룡의 영화는 예전만큼 국내 관객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당연하게 성룡의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던 시절도 지났고, 성룡의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은 것도 까막득한 옛날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관객의 취향이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룡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성룡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지난 2004년 [뉴 폴리스 스토리] 부터였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성룡 영화의 재미가 조금씩 반감되었기는 했지만 전 그것이 할리우드에 진출한 성룡의 과도기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뉴 폴리스 스토리]로 뼈저리게 느낀 것이죠.
[폴리스 스토리]는 [취권], [용형호제], [A 계획] 등과 함께 성룡의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저 역시 [용형호제] 다음으로 좋아하는 성룡의 영화가 바로 [폴리스 스토리]였고요. 그렇기에 [폴리스 스토리 4]이후 거의 10년 만에 [뉴 폴리스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시리즈를 이어나간 영화를 저는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의 성룡은 이미 예전의 쾌활한 성룡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낙천적인 표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던 성룡은 온데간데 없었고, 잔인한 범죄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주름진 성룡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 성룡이 변했구나.'라는 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성룡의 영화는 그답지 않게 심각하거나, 예전처럼 쾌활해 보이려 노력해도 별로 쾌활하지 못한 영화들이 전부였습니다. 그 기간에 개봉한 성룡의 영화중에서 제가 만족했던 영화는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뿐이었고, 결국 저는 [포비든 킹덤 :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이후 성룡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를 영화의 세계로 안내해준 또 한 명의 스타를 저는 스스로 잃은 셈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성룡의 영화를 기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는 성룡의 영화를 결코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포비든 킹덤 :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이후 개봉한 [신주쿠 사건]은 애써 외면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개봉한 [대병소장]은 외면하려 해도 자꾸만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제가 [대병소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 영화가 코믹액션 장르에 어울리는 영화라는 점 때문입니다. 중국의 혼란기인 전국시대에 양나라의 쫄병이 우연히 위나라의 왕자이자 장군을 사로 잡으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이 영화는 성룡의 코믹액션이 영화 가득 넘쳐나는 예고편으로 절 사로잡았습니다.
그러한 성룡의 코믹액션은 제가 그토록 열광하던 성룡의 초기 영화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소룡의 시원시원한 액션과는 달리 맞고 얻어 터지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성룡의 액션은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우와~'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오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대병소장]에 그것을 바라며 극장에 입장하였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병소장]은 그러한 제 바람을 어느정도 만족시켜준 영화입니다.
영화의 초반 양나라와 위나라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죽은척 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양나라의 병사(성룡)의 모습은 성룡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사실 성룡은 영웅 캐릭터보다는 조금은 뺀질거리는 소시민 캐릭터가 더 잘 어울렸었죠.
양나라의 병사가 용맹하고 무술도 뛰어난 위나라의 장군(왕리홍)을 포로로 사로잡고, 그를 이끌고 포상금을 타기 위해 양나라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성룡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성룡의 액션은 예전 그의 영화에서 보여줬던 그 날렵함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성룡이 직접 무술감독을 맡았기에 주변의 소품들을 이용해서 아기자기하게 벌어지는 코믹액션들과 서로 티격태격하던 양나라의 병사와 위나라의 장군의 파트너쉽은 성룡의 전성기 시절 영화를 보는 듯한 낯익은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병소장]은 제게 충분히 만족감을 안겨준 영화인 셈입니다.
기똥찬 소인배로 맞춤 옷을 차려입은 성룡.
[대병소장]에서 양나라의 병사는 입버릇처럼 '기똥차다'라는 말을 달고 삼니다. 툭하면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이라며 아버지의 가르침을 삶의 철학으로 담고 사는 그에게 자신만이라도 살아남아 가문을 잇는 것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위나라의 장군에겐 소인배로 보일 따름입니다. 전국시대라면 중국이라는 커다란 땅덩어리를 두고 전국의 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수 많은 영웅들이 할거했으며, 영웅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전쟁터의 소모품이 되어 영웅들을 위해 소모되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개인의 안위를 생각하는 양나라의 병사가 그에겐 시대에 맞지 않는 소인배로 보였을 것입니다.
[대병소장]은 바로 그러한 영웅들의 시대에 살아야만 했던 소인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비록 양나라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며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결코 영웅들의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는 없는 생존본능을 타고난 소인배였습니다.
하지만 전국시대는 그러한 소인배가 맘 편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없었던 시기였기에 그 기똥찬 소인배는 비극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비극이 바로 오랜만에 성룡의 예전 스타일인 유쾌함을 찾은 이 영화를 즐겁게 보던 제게 마지막에 가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밝혔듯이 성룡의 전성기 시절 그의 영화는 언제나 유쾌했고, 낙천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2시간 동안 함박웃음을 짓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대병소장]은 마냥 함박웃음을 지을 수 없게 만듭니다. 마치 성룡은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나?'라고 묻는 것처럼 함박웃음을 짓던 제게 마지막 비극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전 그러한 비극에 실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충분히 성룡의 유쾌한 액션을 감상했으며, 이 영화의 비극은 그러한 유쾌함과 맞물려 아련한 아픔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아련함은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의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더 강력했습니다.(그러고보니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도 [용형호제]를 떠오르는 유쾌한 재미를 안겨주다가 갑자기 금지된 사랑에 빠진 이들의 아련함으로 막을 내렸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좋습니다.
유승준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건 유승준의 영화가 아닌 성룡의 영화란 말이다.
하지만 [대병소장] 역시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하기는 힘든 영화입니다. 그것은 영화의 재미와는 별도로 이 영화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유승준 논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유승준... 그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던 댄스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서 팬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미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으며, 결국 그의 변심은 그의 팬들은 물론 우라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운 털이 박히고 말았습니다.
전 유승준 논란에 대해서 더이상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습니다. 사실 군대에 가기 싫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가 되며(과연 그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또 반대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으로써 돈과 빽이 있다는 이유로 그 의무를 피해가는 사람들에 대한 얄미운 심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병소장]에서 유승준의 출연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건 유승준의 영화가 아닌 성룡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성룡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언제나 유별났습니다. 그와 동아수출공사([대병소장]의 수입업체도 동아수출공사입니다.) 사장과의 특별한 인연은 유명하죠. 자신의 무명시절 도움을 준 동아수출공사 사장을 위해서 스타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영화는 무조건 동아수출공사에 우리나라 판권을 넘기는 그의 의리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 외에도 그는 자신의 영화에 한국 배우들을 심심치않게 출연시키는데 [엑시덴탈 스파이]에선 김민,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에서는 김희선과 최민수가 출연했었습니다.
[대병소장]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이번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유승준이 출연한 것이 문제이지만 성룡이 그러한 국내 사정을 잘 알지 몰랐을테고, 알았다고해도 그러한 문제가 한 젊은 엔터테이너의 인생을 망칠 중요한 사건인지 외국인인 그로써는 잘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병소장]을 보기 위해서 상영 극장을 찾다보니 많은 극장들이 이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뿐더러 상영한다고 해도 좌석수가 작은 상영관에서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 유승준 논란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테지만 정말 오랜만에 성룡다움으로 돌아온, 그리고 마지막 아련한 비극마저도 매력적으로 만들어버린 [대병소장]이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병소장]을 통해 아직 성룡에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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