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지 않아 온 몸이 근질거렸다.
회사 일도 바쁘고 해서 한 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블로그에 영화 리뷰를 올릴 수도 없고,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없으니 왠지 블로그가 자꾸만 썰렁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큰 맘 먹고 영화 한 편 봐야겠다고 고른 영화가 바로 [8인 : 최후의 결사단]입니다.
그래도 꽤 중국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했지만 2010년 들어서는 중국영화와 계속 인연이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도 그렇고, [공자 : 춘추전국시대]도 극장에서 놓쳤었죠. 하지만 막상 [8인 : 최후의 결사단]을 보고난 느낌은... 앞으로도 계속 중국영화를 외면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랄까... 뭐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드네요.
소시민들의 영웅 등극기... 초반엔 좋았다.
이 영화는 청 제국 말기를 배경으로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으로 혁명을 주도하던 손문이 다른 혁명가들과의 회동을 위해 돌아오고, 손문을 암살하려는 청나라의 암살단과 손문을 지키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손문이 혁명가들과 회담을 하는 동안 스스로 암살자들의 미끼가 되어야만 했던 이들의 사연을 착실하게 그려나가는 영화의 초반은 꽤 느낌이 좋았답니다. 격동의 시대에 희생당한 그들의 각기 다른 사연들은 영화를 보는 제게 앞으로 다가올 감동을 기대하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과도한 비장미... 그들은 왜 죽음에 몰려야 했을까?
하지만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면 들수록 영화는 너무 과도한 비장미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시대의 영웅이라는 순문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이 영화의 주인공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왜 그토록 비장미 넘치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요?
스스로 미끼가 되어 암살자들에게 죽음을 당한 이들의 사연을 보다보니 그들 중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해야하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캐릭터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된 극단 단원,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신이 지켜야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채 아까운 개죽음을 당하는 인력거꾼(사정봉), 아버지로써 인정을 받기 위해 갑자기 나쁜 놈에서 착한 놈으로 돌변하는 도박꾼(견자단), 이유도 모르는채 가담한 두부장수와 삶의 의미를 잃은 걸인(여명), 그리고 젊은 혈기로 가짜 손문이 되는 대부호의 아들까지... 손문을 지켜야한다는 명분으로 만났지만 그들 중에서 왜 손문을 지켜야하는지 손문 때문에 왜 자신들이 목숨을 내걸어야하는지 아는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단지 혁명가(양가휘)의 달콤한 세치 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유도 모르는 채 죽은 그들을 이 영화는 비장미로 아름답게 치장해 놓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들의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역사는 손문만 기억할 뿐이다.
이 영화가 사실을 기초로 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하나의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그들의 이름과 태어난 연도와 죽은 연도가 자막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의 사실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손문이라는 중국을 혁명으로 이끈 인물은 역사에서 화려하게 조명을 받았지만 그들은 비장미 가득 넘치는 영화 한 편이 전부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 영화,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혁명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 영화의 논리는 그동안 수 많은 독재자들이 국민들을 선동하며 했던 이야기입니다. 국가를 위해 국민들의 억울한 희생을 강요했던 그들 말입니다. 이 영화 속의 손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아하게 홍콩에 입국하여 안전하게 혁명가들과 회동을 하는 동안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손문을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영화 속의 손문은 말하겠죠. 그들의 희생 덕분에 혁명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전 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명의 국민도 지킬줄 모르는 위인이 과연 중국 전체를 구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여러 소시민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 혁명은 과연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요?
그들의 희생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남은 자들은 비장미로 가득 포장한채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찬양할지 모르지만 죽은 이들은 그저 개죽음을 당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엔 희생해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소수의 희생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영화를 보고나니 그냥 기분이 나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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