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리그]의 그 도리언 그레이?
2003년 여름에 개봉된 수많은 할리우드 블럭버스터 중에서 [젠틀맨 리그]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숀 코네리가 주연을 맡았던 그 영화는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았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팬텀이라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슈퍼 히어로들이 한 팀을 이루어 막아낸다는 참 단순한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팀을 이룬 슈퍼 히어로들은 뱀파이어, 스파이, 투명인간, 지킬박사와 하이드, 네모 선장 등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캐릭터였는데 그 중 제가 잘 모르는 슈퍼 히어로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불사의 몸을 지닌 도리언 그레이였습니다.
도리언 그레이... 영화화되다.
사실 [젠틀맨 리그]라는 영화 자체는 특수효과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각각의 개성이 강해서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초상화를 찢지 않는 한 불사의 몸을 가진 도리언 그레이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바로 그 도리언 그레이의 사연이 담은 영화가 있길래 주저하지 않고 보게 되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벤 반스)는 할아버지의 거액의 유산을 물러 받은 순진한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냉소적인 헨리 워튼(콜린 퍼스)과 어울리며 쾌락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이 저지른 영혼의 죄악을 자신의 초상화가 대신 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더욱 쾌락에 집착하게 됩니다.
기독교적인 계몽영화?
그가 쾌락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의 초상화는 점점 흉측해집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한채 쾌락을 즐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는 깨닫습니다. 쾌락이 곧 행복은 아니었음을...
어찌보면 이 영화는 기독교적인 계몽 영화같기도 합니다. 죄악을 저지르면 그 죄악의 댓가를 치루지 않냐고 순진한 표정으로 묻던 도리언은 자신이 걱정하던 죄악을 초상화가 대신 치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담배, 술, 섹스 그리고 살인까지 맘껏 죄악을 저지르지만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는 그 죄악의 댓가를 받게 됩니다. 도리언을 쾌락의 생활로 이끌었던 헨리 역시 그 죄악의 댓가를 받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고나면 왠지 너무 착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고풍적인 분위기, 차분한 연출.
좀 착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영화의 진행이 상당히 흥미로웠고,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벤 반스의 선과 악의 두가지 얼굴을 가진 도리언 그레이의 연기도 꽤나 좋았습니다. 순진했던 도리언을 쾌락의 생활에 빠뜨리지만 그 댓가로 사랑하는 딸을 잃어야했던 헨리를 연기한 콜린 퍼스의 능글맞은 연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영국의 풍경은 고풍적이었고, 유명한 원작을 차분하게 연출한 올리버 파커 감독의 연출도 괜찮았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혹시 내가 저지른 죄악이 지금 나의 모습을 흉측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스러웠는데... 만약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얼마나 흉측해져 있을까요? 제 내면에 있을 초상화가 궁금해지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