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8년 영화노트

캐링턴(Carrington) ★★★★

쭈니-1 2009. 12. 17. 22:25

  

 

날짜 : 1998년 9월 12일

감독 : 크리스토퍼 햄튼

주연 : 엠마 톰슨, 조나단 프라이스

 

동성 연애자를 그린 퀴어 시네마라는 장르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으나 유교적 사상이 깊은 보수주의적인 우리나라 관객에겐 매우 심기가 불편한 장르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퀴어 시네마가 국내에 개봉되기만 하면 조용히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출세작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가 그러했고, 카톨릭 신부의 동성애를 그려 논란을 일으켰던 안토니아 버드 감독의 [프리스트]도 그러 했으며, 감각적 퀴어 시네마인 스티븐 엘리옷 감독의 [프리실라] 역시 그러했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왕가위 감독의 퀴어 시네마인 [춘광사설]마저 그의 다른 영화와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의 데뷔작인 [캐링턴]이 국내 관객에게 주목받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48회 깐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흥행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채 조용히 잊혀져 갔다.

마이클 홀로이드의 유명한 리튼 스트래치 전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캐링턴]은 1915년 작가인 리튼 스트래치(조나단 프리어스)와 젊은 화가인 도라 캐링턴(엠마 톰슨)이 만나면서부터 1932년 리튼 스트래치가 암으로 죽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20세기 초의 유럽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퀴어 시네마이면서도 동성애 장면을 최대한 자제하고 호모인 스트래치와 여 화가인 캐링턴의 비정상적인 17년 간의 사랑에 주목한다.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은 리튼 스트래치의 전기를 영화화하며 오히려 캐링턴에게 관심을 더 가진다. 뛰어난 화가였으며, 자유연애주의자였고, 리튼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총으로 자살을 선택했던 도라 캐링턴은 랄프 파트리지와 결혼하고 그의 친구인 재랄드 브레넌과 정사를 벌인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오직 리튼 스트래치뿐이었다.

크리스토퍼 햄튼 감독은 리튼 스트래치의 동성애 장면과 도라 캐링턴이 수 많은 남자들과 벌인 정사씬을 간접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캐링턴]이 에로티즘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명했다. 그는 육체적인 관계에 의한 사랑이 아닌 정신적인 플라토닉한 그들의 사랑에 주목한 것이다.

곱슬 곱슬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려 깊고 통찰력 있는 지식인 리튼 스트래치를 연기한 조나단 프라이스와 고전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국배우인 엠마 톰슨의 컴비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관객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퀴어 시네마라는 이 영화의 장르와는 별개이다.(솔직히 대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리튼 스트래치가 호모인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지경이다.) 대부분 실내와 정원에서 전개되는 영화의 소심함과 내러티브의 간접적인 묘사가 관객을 지루하게 한 것이다.

 

2009년 오늘의 이야기

 

이 글에서 언급한 왕가위 감독의 [춘광사설]은 우리에겐 [해피 투게더]로 더욱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춘광사설]이라는 중국어 제목을 언급한 것을 보니 애초에 우리나라에선 [춘광사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나보네요.

암튼 10년 전에도 퀴어 영화가 낯설었는데 아직도 그러네요. 아무래도 퀴어 영화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