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1998년 9월 9일
감독 : 케빈 코스트너
주연 : 케빈 코스트너, 월 패튼
케빈 코스트너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자. 80년대를 대표했던 할리우드의 영웅이 [람보]의 실베스타 스텔론과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면 90년대를 대표한 영웅은 단연코 케빈 코스트너이다. 그는 감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철인같은 80년대 영웅상을 과감히 깨버리고 인간미 넘치는 그야말로 아버지같은 이미지로 관객의 곁에 다가왔다. [언터처블]의 마피아를 뒤쫓는 검사역이라던가, [늑대와 춤을]의 인디언에 동화되어가던 군인, 그리고 [J.F.K]에서 존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파고드는 검사, [퍼펙트 월드]에서 완벽한 세상을 찾아 떠나는 탈옥범 등. 그는 맡았던 역할마다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에 보답하듯 아카데미 회원들은 89년 [꿈의 구장], 90년 [늑대와 춤을], 91년 [J.F.K]를 연속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려 주었으며 급기야는 그가 감독, 주연한 [늑대와 춤을]에게 그 해의 모든 영예를 갖다 바치기까지 했다.
무명의 배우에서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성장한 케빈 코스트너의 아성은 그러나 95년 그의 야심찬 대작 [워터 월드]와 함께 무너졌다. 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워터 월드]는 감독이었던 절친한 친구인 케빈 레이놀즈와의 불화 속에 흥행에 대참패를 거두었으며, 그대로 케빈 코스트너는 영원히 사라질뻔 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아직 그의 흥행성을 믿었으며 96년 썸머시즌엔 [틴컵]의 망나니 골프 스타로 나와 재기를 예고했다. 그리고 1997년 12월 그는 자신이 [늑대와 춤을]에 이어 두번째로 감독, 주연한 제작비 1억5천만 달러의 대작 [포스트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과연 [포스트맨]은 케빈 코스트너 최대 실패작 [워터 월드]와 무엇이 다른가?
[워터 월드]는 인간의 자연 훼손으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여 북극의 거대한 빙산이 녹아 물로 뒤덮힌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흙 한줌도 존재하지 않는 이 암울한 미래 사회 속에서 인류는 인공 섬을 만들어 표류하며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유일한 육지인 드라이 랜드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한다. 데니스 호퍼는 해적으로 인공 섬들을 침략하고 케빈 코스트너는 진 트리플혼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예상대로 케빈 코스트너는 데니스 호퍼를 무찌르고 진 트리플혼의 사랑도 쟁취하며 드라이 랜드도 찾게 된다.
[포스트맨]은 핵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사막화 되어버린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정부 상태에서 사람들은 부락을 이루어 생활하게 되고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순결 주의자들에 의해 생활의 위협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도 케빈 코스트너는 떠돌이고 최후의 낙원이라는 세인트 로즈라는 곳을 찾아 방황한다. 그리고 역시 순결 주의자들의 지도자인 베들레헴(윌 패튼)을 무찌르고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도 획득한다.
솔직히 [워터 월드]와 [포스트맨]은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단지 무대가 물이 아닌 사막이라는 것과 [워터 월드]에선 우스꽝스러운 악당과 과목한 영웅이 있었다면 [포스트맨]에서는 과묵한 악당과 말 많은 영웅이 있다는 것 뿐이다. 한마디로 [포스트맨]은 [워터 월드]의 실패에 대한 케빈 코스트너의 오기이다. 그는 마치 실패한 영화를 똑같이 만들어 냄으로써 [워터 월드]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그는 [워터 월드]의 실패는 모두 감독인 케빈 레이놀즈의 탓(그들은 한때 [의적 로빈후드]를 각각 감독, 주연하여 흥행에 성공시킴으로써 두 명의 케빈이 거둔 기적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이라고 항변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포스트맨]에서는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포스트맨]은 제 2의 [늑대와 춤을]이 되지 못하고 제 2의 [워터 월드]가 되고 말았다.(예상했던 일이지만...)
이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포스트맨]은 전형적인 묵시룩적 스토리를 담고 있으면서 관객들에게 애국심에 대해서 호소하고 있다. 우연찮게 우편 배달부가 된 떠돌이(케빈 코스트너)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그들에게 독재자인 베들레햄에게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 자신은 베들레햄에게 대항할 생각도, 애국심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의 목표는 먹을 것을 얻는 것 뿐이다.
영화는 3시간에 걸쳐 진행하는 동안 케빈 코스트너가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꽤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라스트에 가서 단지 사기꾼에 불과했던 케빈 코스트너가 갑자기 영웅이 되고, 베들레햄 장군에게 대항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총을 들고 대항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영웅의 이야기가 되려면 3시간 가지고는 모자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케빈 코스트너는 무리하게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묘사하기 위해 재미있었던 전반부를 무시하고 후반부에는 무리하게 스토리를 끌고 나갔다.
게다가 도대체 1억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는 어디로 갔는지 별다른 특수효과없이 삭막한 모래 바람만 불어대니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기도 하다. 이제 케빈 코스트너는 영웅이 되기엔 쇠약해 보이며, 원시 시대로 후퇴한 미래의 모습은 더이상 재미를 안겨 주기엔 식상하다. 이제 케빈 코스트너도 [포스트맨]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기를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2009년 오늘의 이야기 ***
10년 전만해도 저는 케빈 코스트너를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영화 [포스트맨]을 마지막으로 그는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물론 [워터 월드]의 실패도 영향이 컸지만 [워터 월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영화인 [포스트맨]을 기여코 만들어낸 케빈 코스트너의 아집이 그의 슬럼프에 쐐기를 박은 셈입니다. 요즘도 가끔 그의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대부분 작은 영화에 등장하는 수준입니다. 그러고보니 [스윙 보트] 이후에는 그의 영화를 볼 수조차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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