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윤기
주연 : 하정우, 전도연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냈길래...
처음 [멋진하루]라는 영화를 들었을 때엔 조지 클루니, 미셸 파이퍼 주연의 [어느 멋진 날]과 비슷한 분위기의 유쾌한 로맨틱코미디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주연이 하정우와 전도연이 맡았다는 소식에 가볍지만은 않은 꽤 멋진 로맨틱코미디가 될것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이윤기라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멋진하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윤기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여자, 정혜]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분명 가슴 깊이 울림이 있는 영화였지만 유쾌하거나, 환상적인 영화를 선호하는 제게 [여자, 정혜]의 답답함은 다시는 선택하고 싶지 않은 괴로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멋진하루]는 제 관심 밖으로 조금씩 밀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멋진하루]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일부 영화광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상황이 종료될만한데 이상하게 제 호기심은 멈추질 않습니다. 도대체 하정우와 전도연은 어떤 하루를 보냈길래 영화의 제목이 [멋진하루]인 것일까?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본다면 그들의 하루는 결코 멋질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시작은 최악의 하루였다.
그런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집 벽지 바꾸는 것이 취미인 구피가 안방의 벽지를 바꾸는 동안 저는 구피를 도와주지 않고 방문을 닫아두고 혼자 [멋진하루]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참 이상한 매력을 가진 영화였습니다. 하긴 [여자, 정혜]도 답답함이라는 매력을 지닌 영화였으니 어쩌면 이윤기 감독은 이상한 매력을 지닌 영화를 만드는데에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멋진하루]의 이상한 매력은 제목과는 상반된 영화 속 두 캐릭터의 상황에서 비롯됩니다. 희수(전도연)는 헤어진지 1년이 된 옛 애인에게 다짜고짜 1년 전에 꿔간 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며, 병운(하정우)은 다짜고짜 찾아 온 희수에게 단 하루만에 거금 3백5십만 원을 만들어 줘야합니다. 돈을 받아야 하는 희수도, 돈을 줘야 하는 병운도 결코 멋진 하루가 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루는 점점 멋지게 바뀝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최악의 하루가 멋진 하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윤기 감독의 연출력은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최악을 최고로 바꾸는 긍정의 힘
그렇다면 최악이어야 함이 마땅한 그들의 하루를 멋진 하루로 바꾼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긍정의 힘입니다.
처음 병운은 참 한심해 보였습니다. 여자에게 돈을 꿔서 갚지도 않는 주제에 경마장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그는 우리 사회 통념상으로는 전형적인 인생의 패배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웃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주제에 희수에게 '걱정마. 잘 해결될 거야.'라며 큰소리칩니다. 처음 그런 병운의 모습은 하정우의 이전 영화인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과 겹쳐 더더욱 한심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병운이 지닌 사연들이 드러나고, 그런 사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꿈을 꾸고, 여전히 밝게 웃는 그의 모습이 점점 멋잇어보였습니다. 그런 병운의 긍정의 힘은 희수에게도 전염됩니다.
사실 희수는 병운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약혼자가 실직하자 매몰차게 그를 잊고 돌아선 그녀. 취직은 되지 않고, 자존심 때문에 80만원짜리 비정규직은 하기 싫었던 그는 화풀이 대상으로 병운을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병운과 하루를 보낸 희수는 웃습니다. 그 하루동안 그는 긍정의 힘에 전염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요즘 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씁니다. 경제가 어렵고, 회사가 어렵지만 저는 여전히 일할 직장이 있고, 든든한 구피가 있으며, 무럭무럭 잘 크고 있는 웅이가 있기에 긍정의 힘은 아직도 절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엔 능글맞은 병운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병운에게 돈을 받기 위해 경마장을 찾은 희수. 그녀는 지쳐 보였다.
병운과 희수의 하루. 이제 그 하루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워버린 배우 전도연. 그녀의 변신은 이 영화에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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