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지우
주연 : 박해일, 김혜수, 김남길
드라마는 일주일에 두 편만...
어느덧 구피도 30대 후반입니다.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그러하듯이 구피도 요즘들어서 부쩍 멍하니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러한 현상은 주말에 더욱 심한데... 저녁 8시부터 시작된 드라마 감상은 거의 11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리곤 합니다.
저희 집에는 컴퓨터도, TV도 한 대씩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피가 TV 드라마에 푹 빠지는 날엔 저는 어쩔수 없이 작은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각자 개인 플레이를 하며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이 못마땅했던 저는 구피와 협상에 돌입하였습니다.
구피가 이 드라마만은 절대 놓칠 수 없다고 선언한 월화 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와 주말 드라마 [가문의 영광](구피는 [꽃보다 남자]에서는 김현중, [가문의 영광]에서는 박시후 때문에 꼭 봐야한다고 우깁니다.)은 보고, 나머지 드라마는 안 보기로... 전 그렇게해서 남은 시간에 구피와 오손도손 영화를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던보이]를 보려던 절 뒤로 하고 구피는 컴퓨터를 하겠다며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더군요. 예전엔 TV는 구피, 컴퓨터는 제 차지였는데, 이젠 컴퓨터는 구피, TV는 제 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결혼 6년차... 함께 여가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역시 어렵습니다.
기대가 컸었다.
구피는 [모던보이]를 보느니 컴퓨터를 하겠다며 이 영화를 외면했지만 저는 [모던보이]가 개봉하기 전부터 기대작이었습니다. 일단 시대극이라서 좋았고, 김혜수, 박해일 등 배우들도 신뢰가 되었습니다. 비록 [사랑니]로 실망을 안겨 줬지만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의 영화라는 것도 플러스 요소였고,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여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재현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점도 제 기대감을 부채질하였습니다. 하지만...
작년 구정 연휴에 개봉하기로 했던 영화가 계속 연기되더니 급기야 극장가의 비수기라고 할 수 있는 10월에 개봉하여 흥행에 실패한채 쓸쓸히 간판이 내려지는 모습을 보며 저는 '영화가 그토록 엉망이었나?'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구심을 결국 풀은 것입니다.
귀여운 바람둥이 박해일, 섹시한 팜므파탈 김혜수
일단 전 [모던보이]기 그렇게 엉망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 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혹은 잘 만든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지우 감독은 박해일과 김혜수를 캐스팅해놓고 그들의 이전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이용합니다. 그렇기에 박해일은 [연애의 목적]의 귀여운 바람둥이가 되어 스크린을 종횡무진하고, 김혜수는 [타짜]의 섹시한 팜므파탈이 되어 박해일을 유혹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이 영화가 박해일과 김혜수의 이전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러한 이미지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지는 못합니다. 독립운동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해명(박해일)은 첫 눈에 반한 난실(김혜수)에게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갇다바치는 지고지순한 낭만의 화신이 되고, 해명에게 도시락 폭탄을 들려서 출근시킬 정도로 냉혹한 독립운동가 난실은 어느새 해명의 사랑에 눈물흘리는 가녀린 여성이 됩니다.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만한 사랑을 한 것일까?
사정이 이러하니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명과 난실의 사랑입니다. 해명이 즐겁고 편하게 살자라는 평생의 좌우명을 배신하고 목숨까지 걸면서 난실을 사랑하는 것을 정지우 감독은 관객에게 이해를 시켜야 하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은 열혈여성 난실이 '살고 싶다'라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해명의 사랑에 감복받았다는 것 역시 관객에게 이해를 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해명과 난실의 사랑이 그렇게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더라는 겁니다. 장난끼 가득한 박해일의 연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강한 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김혜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랑니]에서도 인영(김정은)의 사랑을 관객에게 이해시키지 못한 정지우 감독의 연출력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해명과 난실이 목숨을 걸만큼 사랑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영화의 모든 노력이 제게 와닿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정지우 감독은 좀 더 곁가지를 쳐버리고 해명과 난실의 사랑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모던보이 해명으로써의 박해일은 어울린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목숨거는 낭만의 화신이 되기엔 그의 연기는 너무 장난끼가 가득했다.
김혜수는 섹시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 때문에 눈물흘리기엔 너무 강인해 보인다.
해명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선총독부 검사를 연기한 김남길.
티저포스터에선 이한이라고 나오던데 그 사이 개명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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