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기덕
주연 : 오다기리 죠, 이나영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무려 6년만에 보다.
[나쁜 남자]를 본 후 저는 다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의 데뷔작인 [악어]와 [파란 대문]에 이어 [나쁜 남자]는 세 번째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이며 이 세 번의 영화 관람으로 제가 깨달은 것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세계는 저와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김기덕 감독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거의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가 만드는 영화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그는 이제 세계적인 감독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영화를 결코 보지 않았습니다. 장동건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해안선]도, 김기덕 감독이 변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이승연의 스크린 복귀작인 [빈 집]도 저는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비몽]만큼은 외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여배우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나영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남자는 꿈을 꾸고, 여자는 그 꿈을 행동을 옮긴다는 특이한 소재로 저와 김기덕 감독과 6년 간의 간극을 메꾸는 역할을 했습니다.
꿈 꾸는 남자, 행동하는 여자
[비몽]은 제가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꿈 꾸는 남자와 남자의 꿈을 행동하는 여자의 특이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떠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진(오다기리 죠)은 밤 마다 떠난 여인을 찾아 헤매는 꿈을 꿉니다. 그러다 한 가지 특별한 비밀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꾸는 꿈을 란(이나영)이라는 여자가 몽유 상태에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 하지만 란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꿈으로 인하여 란이 곤경에 처하자 진은 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고 란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진은 잠을 자면 안되고, 진이 잠이 든다면 란은 어떻게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채 서로 잠이 들지 않기 위해 도와 주며 서롱 대한 감정을 조금씩 싹 틔워 나갑니다.
[비몽]은 러브 스토리라는 김기덕 감독의 소개가 무색할 정도로 무섭습니다. 몽유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행동에 취하는 난의 모습은 마치 귀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나영은 충분히 무섭게(?) 생겼습니다.
'꿈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어떤 최면술사의 충고도 이 영화의 괴기스러운 분위기에 한 몫합니다. 진이 어떤 꿈을 꾸던, 란은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진이 꾸는 꿈이 아무리 잔인하다고 하더라도... 헤어진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안긴 상황에서 진은 한계가 없는 꿈처럼 서로의 파멸을 이끄는 꿈을 꾸고 란은 행동에 옮깁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이 영화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비몽]은 분명 특이한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비록 이나영은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몽유 상태에서 돌아다는 것이 전부였고,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진은 왜 한국 배우가 아닌 일본 배우여야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안되는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비몽]이 특이하다는 사실에는 그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영화를 완전히 잘 이해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많은 분들의 영화보다 더욱 멋진 해석들이 분분하지만 그렇게 유식하게 영화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저로써는 그저 진과 란의 비극적인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제게 [비몽]은 제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를 오랜만에 상기시켜준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제가 봤던 그의 이전 영화들에 비한다면 그 세기는 약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는 제게 불편했습니다.
내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
[비몽]이 제게 불편했던 것은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들은(최소한 제가 본 그의 영화들은) 남자에 의해 여자가 변합니다. [악어]에서 한강에서 투신 자살하려다가 악어(조재현)에게 구해진 현정(우윤경)은 악어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악어의 학대와 폭력을 불만없이 받아 들이고 마지막엔 악어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그러한 악어와 현정의 관계는 제가 [악어]를 재미없게 본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여대생과 창녀의 우정을 그린 [파란 대문]은 조금 예외적이었지만 창녀인 진아(이지은)와의 우정을 위해 그녀를 대신해서 자신이 몸을 파는 혜미(이혜은)의 결정이 제겐 불편했고, 불편한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던 [나쁜 남자]에서는 3류 깡패 한기(조재현)에 의해 서서히 길들여져가는 선화(서원)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반론은 있습니다. 겉보기엔 남자의 폭력에 여자들이 길들여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러한 여자로 인하여 나쁜 남자들이 변해가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로써는 폭력에 성에 굴복해가는 여성 캐릭터가 짜증납니다.
[비몽]에서 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진의 꿈에 의해 행동합니다. 그녀의 행동에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영화를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겉보기엔 란은 김기덕 감독의 다른 영화들의 여성 캐릭터와 하나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편합니다. 제가 비록 패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남자에 의해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여자를 본다는 것은 답답하고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싫습니다.
떠난 여자를 잊지 못하는 꿈 꾸는 남자 진
도대체 한국 배우가 아닌 오다기리 죠를 캐스팅해야 했던 이유가 이해안된다.
진의 꿈 대로 행동하는 여자 란
이나영의 독특한 매력은 김기덕 감독 특유의 수동적인 여성상에 가려졌다.
잠을 안자기 위해 노력하는 진과 란. 밀려 오는 졸음을 물리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세상에 없다.
진과 란의 비극은 어쩌면 이미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특별 출연 장미희. 난 왜 이 장면이 웃겼을까? 아마 장미희가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이미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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