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3년 영화이야기

[컨텐더] - 또 한명의 영웅이 탄생하셨군.

쭈니-1 2009. 12. 8. 15:47

 



감독 : 로드 루리
주연 : 조안 알렌, 게리 올드만, 제프 브리지스, 크리스찬 슬레이터
개봉 : 2003년 1월 17일

남자들이 모이면 의례 축구 이야기나 군대 이야기, 아니면 정치 이야기를 한다던데 전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군대는 방위를 나왔기에 별로 할 이야기도 없고,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먼산만 바라보며 언제 끝나나 한숨만 쉽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골치아픈 정치 영화는 끔찍히도 싫어합니다. 가장 최근에 본 정치 영화가 아마도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이었을 겁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을 좋아하기에 그의 역작이라는 [닉슨]을 비디오로 보긴 봤지만 도대체 내용이 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큰 맘을 먹고 두 주먹을 질끈 쥐며 한번 더 봤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두번째 봤을때도 역시 그 긴 러닝타임동안 졸음과의 한판 승부 때문에 영화의 내용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었죠.
그렇기에 [컨텐더] 역시 전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는 제게 미국의 정치 영화는 너무나도 따분함하고 복잡해서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영화 장르였던 겁니다. 하지만 '최악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선전 문구와 함께 너무나도 화려한 배역진 때문에 전 결국 이 영화를 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한동안 지구촌을 뒤흔들었던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 기사를 소설보다도 더 재밌게 읽었던 저로써는 '최악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선전 문구는 [컨텐더]를 '지루한 정치 영화'라는 인상보다는 '흥미진진한 섹스 스캔들 영화'라는 인상을 안겨 주었으며, 주로 악역을 맡으며 카리스마가 가득 넘치는 연기를 펼치는 게리 올드만의 연기를 본다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컨텐더]는 역시나 지루한 미국의 정치 영화였습니다. 기대했던 '섹스 스캔들'은 단지 영화의 주인공인 레이니 핸슨(조안 알렌)을 새로운 미국적인 영웅으로 부상시키기위한 속임수였습니다. 전 따분한 이 영화속의 청문회를 억지로 지켜보며 졸음을 참아야 했고, 마지막엔 잭슨 에반스(제프 브리지스) 미대통령과 레이니 핸슨의 영웅 등극에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이라며 자조섞인 푸념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핸슨을 궁지에 몰아 넣는 셀리 러니언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연기는 제 기대를 만족시켜 줬지만...  


 



이 영화는 레이니 핸슨이 잭슨 에반스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지목되면서 시작합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라는 영광 속에서 핸슨은 기뻐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추악한 섹스 스캔들과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청문회의 위원들 뿐입니다. 그녀는 과연 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것인지...
이 영화는 이렇게 핸슨이 최악의 섹스 스캔들을 이겨내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영화는 정치인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역량과 개인적인 도덕성중 어떠한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관객에게 물으며 로드 루리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표상을 그려나갑니다.  
주요 내용이 이러하다보니 이 영화는 영화의 대부분을 따분한 청문회 장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청문회의 TV 중계도 절대 보지 않는 제게 이 영화속의 청문회씬은 그야말로 따분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행히도 청문회의 회장인 셀리 러니언을 연기한 배우가 정치 영화를 싫어하는 제게 이 영화을 볼 결심을 하게끔 만든 게리 올드만이라서 그의 그 비열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연기를 감상하는 것으로 그 따분함을 견뎌냈지만... 암튼 이 영화을 보고 견디는 것은 제겐 꽤 큰 고역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 영화가 정치 영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섹스 스캔들'이라는 선전문구에만 매달려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영화 사이트에서보니까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조안 알렌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이 영화의 출연을 처음엔 망설였다고 그러더군요. 그 이유는 올해 45세가 되는 그녀에게 이 영화의 노출신이 너무나도 부담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자신과 동갑인 르네 루소가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라는 영화에서 파격적인 노출을 한 것을 보고 자신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 영화의 출연을 결심했다는 겁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 저는 그러한 조안 알렌의 프로다운 용기에 감탄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도 했었고요.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노출신이 나온다는 건지... 조안 알렌의 프로다운 노출신은 커녕 청문회의 따분한 말장난만 난무하더구만... ^^;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이 영화에 실망한 것은 이 영화가 진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듯하다가 마지막엔 미국의 영웅주의 영화로 전환을 했다는 겁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미국 영화에서 '미국 만세'를 부르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이냐고... 전 이 영화가 '미국 만세'를 부르는 것에 실망한 것이 아니고 진지한 질문을 던져놓고 그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은채 '미국 만세'로 전환한 것에 실망한 겁니다.
로드 루리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던진 질문은 '정치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정치적인 역량과 개인적인 도덕성중에 어떠한 것이냐?'라는 겁니다. 솔직히 그것은 정말로 미묘한 문제입니다. 물론 이 두가지를 전부 갖춘 정치인이라면 금상첨화이지만 정치인도 사람인데 완벽할 수는 없겠죠.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핸슨은 바로 그러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녀는 정치적인 역량은 충분한 듯 보이지만 청문회를 통해 대학 시절 섹스 파티 파문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도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청문회는 그녀를 창녀로 몰고 가기도 하고, 친구의 남편을 빼앗은 불륜녀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논쟁에서 입을 다문채 자신의 정치적인 역량만을 강조합니다.
물론 주인공이 핸슨이다보니 관객 역시 핸슨의 편에 서게 됩니다. 그녀는 '제가 남자였다면 제 섹스 파트너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었겠죠?'라며 미국 정치계의 남녀 차별에 용감하게 대항합니다. 그녀를 몰아부치는 러니언은 여성 차별주의자로 그려지고, 핸슨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는 해더웨이는 자신의 자작극을 통하여 정치적인 역량을 키워나가려는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힙니다. 솔직히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임기중에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클린턴 대통령도 굉장히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문제는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다시 영화의 초반으로 가보면... 에반스 대통령이 핸슨을 부통령으로 내정하고 백악관에서 핸슨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기위해 핸슨의 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이 장면은 핸슨이 처음으로 관객앞에 나서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장면에서 핸슨은 남편과의 섹스중이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고 그녀의 남편이 전화를 받으려하자 그녀는 전화를 받지말고 마저 하던 일이나 끝내자고 칭얼거립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며 전화를 받는 남편... 이 장면에서 저는 그 남편이 부통령으로 임명된 핸슨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곧바로 옷을 벗고 전화따위는 받지 말라고 칭얼대던 그 철없어 보이는 아내에게로 넘겨지고 그녀가 바로 부통령으로 임명될 핸슨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로드 루리 감독이 무슨 이유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핸슨의 첫등장을 그렇게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 제가 느낀 핸슨은 섹스에 대해서 자유분방하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게 핸슨의 첫인상이 그러했다는 겁니다. 그렇기때문에 핸슨이 대학시절 섹스 파티로 인하여 스캔들에 휘말릴때도 저는 그녀라면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그녀의 그런 도덕성에 대해서 물고 늘어질때도 기꺼이 그녀의 편에 섰었습니다. 그리곤 몇십년전 철없었을때의 행동으로 그녀를 몰아부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중에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켰지만 결국 용서를 받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납니다. 핸슨은 그런 섹스 파티에 잠시 간적은 있지만 동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녀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지 않았을까요? 섹스 파티때 찍힌 사진을 통해 아주 간단히 증명할 수도 있었을텐데... 결국 핸슨은 정치적 역량으로나 개인적인 도덕성으로나 완벽한 정치인이었고, 국민들은 새로운 여성 부통령의 탄생에 환호를 보냅니다.
영화가 이렇게 끝이 나버리자 황당하더군요. 로드 루리 감독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녀의 개인적인 도덕성을 감싸안고 기꺼이 그녀의 편이 되어 주려했던 저는 마치 그녀에게 속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정치적인 역량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도덕성마저도 완벽한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상영시간내내 개인적인 도덕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관객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해서 미국을 빛낼 또 한명의 완벽한 영웅이 탄생한 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뻔했던 장상씨가 생각나더군요. 그녀는 결국 이런 도덕적인 문제를 거론한 청문회에서 결국 주저앉고 말았지만, 그녀가 이러한 청문회를 이겨내고 총리가 되었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정치인을 완벽한 영웅으로 그리는 정치 드라마 한편쯤은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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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의꿈
정말 그러네. 왜 처음부터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지 않았을까?
영화 초반에 나오는 대학시절 섹스파티에서 좀 야리꾸리한 정사신의 주인공이 핸슨인 것 처럼 나오던데...
아직 다 못봤는데 별루 보고싶지 않네....힝...
 2003/01/17   
쭈니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때문에 밝히지 않았다던데...
그게 말이 되냐고???
암튼 순 억지야. 이건...
 2003/01/17   
아랑
청와대에서 핸슨에게 ...
미국에도 청와대가 있나요?
 2003/01/17   
쭈니 앗! 미국은 청와대라고 부르지 않나요?
그럼 뭐라 부르죠???
제가 워낙 정치엔 무관심해서... ^^;
 200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