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야구치 시노부
주연 : 니시다 나오미, 리주 고
[산전수전]을 기억하는가?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어드벤처 영화라며 떠들썩하게 광고를 하며 개봉했던 구임서 감독, 김규리 주연의 [산전수전]을 기억하시나요? 흥행에서 참패를 당한 탓에 이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암튼 그 [산전수전]은 바로 1996년작인 일본 영화 [비밀의 화원]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제가 [비밀의 화원]을 비디오로 빌린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솔직히 [산전수전]은 상당히 재미없었지만 일본의 원작은 어떤지 궁금증도 밀려오고, [산전수전]의 원작이라면 최소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정말 모든 것이 [산전수전]과 똑같다.
[비밀의 화원]은 놀라울 정도로 [산전수전]과 똑같았습니다. 물론 [산전수전]이 [비밀의 화원]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똑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테지만 대부분의 리메이크들이 원작이 기본적인 아이템만 가져오고 세세한 부분은 약각의 각색이 들어가는 것이 보통인데 [산전수전]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복사해버렸더군요.
그래서 [비밀의 화원]도 재미없었습니다. [산전수전]처럼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희극적이고, 연기는 오버로 일관합니다. 사건은 틀에 박은 듯이 뻔합니다. 게다가 거의 10여년전 영화이어서인지 모든 것이 왜그리 촌스럽던지... 주인공인 사키코(니시다 나오미) 가 숲속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장면의 경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이 사람이 아닌 인형이라는 것이 확연히 구별될 정도입니다. 아무리 10여년전 영화라지만 어떻게 이렇게 눈에 띄게 유치할 수 있는건지...
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산전수전]과 다르다.
이렇게 영화의 외형은 [비밀의 화원]과 [산전수전]이 똑같아 보였지만 좀더 깊숙히 들어가면 이 두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산전수전]은 이 영화의 그 당시 광고대로 여성 어드벤처 영화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아현(김규리)의 5억원을 향한 모험담에 맞춰져 있습니다. 관객에게 그 모험담을 보며 부담없이 즐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비밀의 화원]은 아닙니다. 처음엔 [비밀의 화원]도 사키코의 5억엔에 대한 황당한 모험에 포커스를 맞추는듯 하지만 좀 더 깊숙히 들어가면 '너의 인생은 목표는 뭐니?'라며 관객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은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매사에 삶의 의욕이 없던 사키코가 5억엔이라는 삶의 목표가 생긴 후 그 목표를 향해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그냥 웃고 넘기기엔 뭔가 시사하는 바가 커보입니다. 사키코에게 '왜 그리 치열하게 사느냐'라고 질문하는 에도가와(리주 고)의 질문처럼 이 영화는 질문합니다. '당신에게도 이렇게 삶의 의욕을 느낄만한 목표가 있는지!'
내 삶의 목표는 바로 행복이다.
그렇담 내 삶의 목표는 뭘까? 이 영화를 본후 느닷없이 이런 생각이 들어습니다. 난 무엇을 위해 직장을 다느며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5억엔이라는 인생의 목표가 생기기전 사키코처럼... 혹은 편해서 미래의 전망이 전혀 없는 지질학 대학조교일을 하는 에도가와처럼... 어쩌면 내 삶도 그렇게 무기력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닙니다. 내겐 분명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복입니다. 비록 회사에 나가는 하루의 절반이 불행하지만 그 절반의 불행 덕분에 나머지 절반의 하루는 행복한 것을... 내일도 저는 그 절반의 행복을 위해 지긋지긋한 회사에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퇴근후 기다리는 행복때문에 불행이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뭔 소리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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