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변영주
주연 : 김윤진, 이종원, 계성용
개봉 : 2002년 11월 8일
1991년 9월 21일...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던 최진실의 이미지 변신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당시 개봉극장이었던 국도 극장에선 최진실의 사인회가 열리는등 활발한 마케팅이 진행 중이었죠. 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엔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최진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렵게 현장 예매까지해서 영화를 보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최진실에게 사인을 받기위해 몰려든 그 수많은 팬들에게 가려져 저는 결국 최진실 얼굴 보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최진실 얼굴 보기를 포기하고 한적했던 화장실쪽에 멍하니 서있는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최진실이 저를 향해 뛰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덩치큰 사내들이 제 앞을 막아서고 최진실은 황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더군요. 결국 그날 저는 최진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남들은 보지 못한 화장실이 급해 민망해하는 최진실의 그 일그러진 얼굴을... ^^;
2002년 11월 8일... [쉬리], [단적비연수]로 여전사로써의 이미지가 짙었던 김윤진의 이미지 변신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밀애]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서울 극장에선 이 영화의 홍보를 위해 11월 9일 [밀애]의 출연 배우 및 감독이 무대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밀애]라는 영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김윤진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어렵게 인터넷 예매까지해서 영화를 보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김윤진은 과로로 병원에 입원해서 무대인사에 못왔다는 실망스러운 이야기만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김윤진을 제외한 주연 배우인 이종원과 조연 배우인 계성용 그리고 변영주 감독은 무대 인사에 참가하였지만 김윤진이 보고싶었던 제겐 실망감이 컸었죠. 그리고 이번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그러고보니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최진실을 보겠다고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예매했던 그때가... 김윤진의 무대 인사를 기다리다가 문득 11년전의 그때가 떠오르더군요.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최진실이 화장실로 뛰어가는 모습이 그토록 신기하기만했던 그때... 그런데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전 왜 예쁜 여배우를 가까이서 보겠다는 유치한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건지... ^^;
[밀애]...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낮은 목소리]라는 단편 영화로 수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던 여성감독 변영주의 장편 데뷰작이라는 영화 매니아로써의 관심과 [쉬리], [단적비연수]등에 출연했던 김윤진이 화끈하게 벗었다는 지극히 원초적인 관심. 하지만 이 영화는 제게 모든 면에서 실망스러웠던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우선 영화 개봉전부터 그토록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윤진과 이종원의 섹스씬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영화처럼 얼굴이 잘 알려진 여배우가 노출이 심한 배드씬을 찍는 영화의 경우 그 영화의 의도가 어떠하든 일반 관객에게 원초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누가 얼마나 벗었대더라'라는 식의 매스컴 보도 역시 이러한 일반 관객들의 원초적인 호기심에 단단히 한 몫을 하죠.
제 경우 [밀애]라는 영화가 어떠한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김윤진이 벗었대더라'는 식의 매스컴 보도를 먼저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벗었다면 얼마나 벗었을까?'라는 원초적인 호기심이 먼저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최소한 [해피엔드]의 전도연만큼은 벗었겠지'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밀애]라는 영화를 쳐다보게 된거죠.
하지만 이 영화, 절대 야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제 기준에서 본다면...
김윤진과 이종원의 4번에 걸친 섹스씬은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제겐 지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남편의 불륜때문에 상처를 입은 미흔(김윤진)과 그러한 미흔에게 '우리 게임할까요?'라는 대담한 제의를 해오는 인규(이종원)... 모텔에서, 병원에서, 한낮의 숲속에서 그렇게 그들의 섹스는 오고가지만, 매스컴에서 그토록 떠들어대던 김윤진의 노출은 기대와는 딴판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무심히 제 입에서 나온 한마디... '뭐야! 유두도 안나오잖아?' ^^;
이렇게 이 영화에 대한 원초적인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변영주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뷰작으로써의 제 관심은??? 이것 역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영화는 모두들 알고 있다시피 전경린의 베스트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그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백지 상태에서 [밀애]를 볼 수 있었죠. 하지만 [밀애]는 그러한 제게 당혹감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처음 남편인 효경(계성용)의 어린 연인이 미흔의 단란한 가정에 들어와 미흔을 충격속에 몰아넣는 장면... 전 이 장면이 마치 앞으로 있을 미흔의 불륜을 정당화시키는 설정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미흔의 정신적인 공황을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자세로 보기 시작했더니 이 영화에서 감정이입을 해야하는 미흔이라는 캐릭터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인규와의 섹스도 사랑보다는 불륜으로 비춰졌습니다.
'도대체 왜 미흔은 효경과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일까?' 이것이 제가 미흔을 이해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단지 제가 추측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업주부로 살았던 미흔에게 있어서 효경과의 결혼 생활은 그녀 인생의 전부였기에 그 전부를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이 그녀를 이 박제된 생활속으로 몰아넣은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역시 전 미흔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효경에게 말했듯이 이제 미흔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인규라는 낯선 사내와 섹스를 즐기고 있습니다. 인규가 섹스를 단지 게임으로 인식하고 미흔과의 사랑을 그 스스로 차단했다고는 하지만 미흔의 입장에서 인규와의 관계가 사랑이었다면 미흔은 분명 효경에게 이혼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흔은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미흔에게 있어서 인규와의 섹스는 사랑이 아닌 단지 게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낯선 남자와의 섹스 게임... 남편인 효경에게서 받은 그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왜 홀로서기가 아닌 섹스로 풀어야만 했는지... 전 도무지 미흔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흔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자 인규라는 캐릭터 역시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시골의 의사이며 삶이 무료한 인규... 어느날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삶이 무료해 보이는 미흔에게 게임을 제의합니다. 사랑을 해서는 안되는 섹스 게임을...
이때까지만해도 인규는 그냥 바람둥이 시골 의사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의 무료한 생활을 낯선 여자와의 게임과도 같은 섹스를 통해 활력소를 찾는 그런 단순한 바람둥이...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영화는 인규의 캐릭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에 얽힌 그의 아픈 과거를 통해... 하지만 단지 인규의 몇마디 말만으로 영화 초반의 그 단순한 바람둥이에 불과했던 인규가 아픈 과거를 지닌 복잡한 캐릭터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인규라는 캐릭터 묘사를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이렇게 인규라는 캐릭터가 단지 단순한 바람둥이라고 느껴지자 마지막 장면에서 미흔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장면에 이르르면 너무 느닷없이 느껴지더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규도 미흔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왜 지금까지 그녀의 사랑을 애써 무시하고 그 스스로 시골 의사라는 박제된 생활속에 머물고 싶어 했는지...도대체 인규에게 있어서 미흔이라는 존재는 뒤늦게 만난 사랑인건지, 아니면 수많은 게임 상대자중 하나였는지... 도무지 인규라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겠더군요.
물론 이렇게 미흔과 인규라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한데에는 이 캐릭터를 연기한 김윤진과 이종원에게도 그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전 김윤진의 연기변신에 꽤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제가 보기엔 이 영화속의 김윤진은 미흔이라는 여성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허울뿐인 가정을 지키기위해 남편의 불륜을 눈감아주며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미흔의 모습이 김윤진에게는 느껴지지 않았으며, 인규와 만나 섹스를 나누며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 삶의 환희를 느끼는 미흔의 모습도 김윤진에게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인규와의 관계를 효경에게 들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려워하는 미흔의 모습 역시 김윤진에게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미흔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가 남자인 탓에 미흔이라는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으며, 그에따라 김윤진의 연기 역시 이해가 되지 않은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흔이라는 캐릭터와 김윤진의 연기가 자꾸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이종원의 연기 역시 그러합니다. 솔직히 전 이종원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도 연기를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흘렀으며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해 이 영화는 작품의 무게라던가 연출을 맡은 감독의 신임도가 남다르기때문에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뭔가 다른 이종원의 모습을 보여주겠지하며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속 인규로 변한 이종원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이종원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왠지 그의 연기가 너무 굳어 있다는 느낌... 그의 연기를 볼때마다 그렇게 느꼈었는데 [밀애]에서도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규는 죽고 홀로 남은 미흔은 일용직 근로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말합니다. 효경과의 의미없는 결혼 생활을 했을때보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지만 그러한 나레이션이 흐르는 동안 미흔의 모습이 왜그리 힘들어 보이던지...
전 일단 미흔의 선택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효경의 불륜을 알았을때 당장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왜 효경의 불륜을 알았을 당시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규와의 섹스 게임을 통해서야 그러한 것을 깨달았는지...남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이 드네요.
어떤 분들은 미흔과 인규의 섹스가 사랑이었다고 말할겁니다. 하지만 제겐 그들의 섹스가 사랑이 아닌 불륜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이 변영주 감독의 미숙한 연출탓인지, 아니면 원작의 의도가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김윤진과 이종원의 연기가 별로여서 그런 것이지, 그것도 아니면 제가 남자라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눈엔 그들의 섹스는 분명 사랑이 아닌 불륜으로 보였으며, 그렇기에 미흔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결국 이 영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겁니다.
아직 전경린의 원작 소설을... 변영주 감독의 연출을... 김윤진의 연기를... 미흔의 사랑을... 이해하기엔 제가 여자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여자를 이해한다고 자부한다면 다시 봐야 겠습니다. 과연 그때가 올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