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화인 [미치고 싶을때]를 봤습니다. 요즘들어 '유럽영화 = 야한 영화'라는 공식이 형성되어서 [미치고 싶을때] 역시 성기, 음모 노출에 대한 헛된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미치고 싶을때]는 최근에 본 유럽 영화들처럼 성기 노출만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획득하려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담긴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유럽 영화들에 비해 노출은 적었지만 배우들의 명연과 충격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제 시선을 잡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유럽 영화를 본 기분입니다.
이 영화는 보수적인 터키 집안에서 자란 자유분방한 시벨과 아내의 죽음으로 삶을 완전히 포기한채 시체와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차히트가 주인공입니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시벨은 결혼만이 독립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다짜고짜 차히트에게 결혼하자고 조릅니다. 시벨이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차히트는 얼떨결에 시벨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이 잘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벨은 밤마다 낯선 남자들과의 자유분방한 섹스에 빠져들고, 치히토는 죽은 아내 이야기만 나오면 과민 반응을 보입니다. 이렇게 영원히 삐걱될것 같은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러나 그들이 점차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오히려 치명적인 불행을 맞이하게 됩니다.
[미치고 싶을때]는 너무나 사랑해서 오히려 불행한 두 남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시체같은 삶을 살던 치히트와 치히트가 자신때문에 감옥에 간후 이스탄불에서 그를 기다리며 절망에 빠지는 시벨의 모습은 너무나도 깊은 사랑은 오히려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충격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미치도록 사랑했건만 몇년만에 감옥에서 출소하여 시벨을 찾아온 치히토에게 시벨은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이미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치히토와 멀리 떠나기로 약속하고 짐을 싸지만 딸과 남편의 다정한 웃음 소리를 듣고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리는 시벨의 모습은 가슴이 아프기까지 합니다. 역시 아무리 미치도록 사랑한 사람이라도 현실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것 같습니다. 씁쓸하지만 정말 강렬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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