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K-19] -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휴먼 드라마

쭈니-1 2009. 12. 8. 15:17

 



감독 : 캐서린 비글로우
주연 : 해리슨 포드, 리암 니슨
개봉 : 2002년 10월 3일

평소때였으면 별 할일없이 껀수없나 이리저리 전화하고 있을 토요일... 하지만 그녀와 만난 이후로 나의 토요일은 변하였습니다. '그녀와 함께 무슨 영화를 볼까?', '영화를 보고나선 무얼 할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까?' 나의 토요일은 온통 그녀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일찌감치 그녀와 만났습니다. 하지만 극장가엔 저희가 볼 영화가 그리 많지 않더군요. 요즘 영화들이 너무 조금 개봉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영화들을 봐버린 것인지... 암튼 우리가 고르고 고른 영화는 [K-19]입니다. 해리슨 포드의 영화는 모두 보았다는 그녀는 해리슨 포드의 열렬팬입니다. 그래서 약간 질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는 재미있을것 같아서 주저하지 않고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와! 해리슨 포드 멋지지?'를 연발하는 그녀. 나도 그에 맞서서 '저 여배우 섹시하지?'라고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K-19]엔 여배우는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영화를 통털어 여자가 나오는 장면은 1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영화 중반 남자들이 옷을 벗는 장면에서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다음엔 꼭 남자 배우는 하나도 안나오고 여자만 훌러덩 벗고 나오는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런 영화는 영영 나오지 않을 듯한... ^^;


 

 


[K-19]는 헐리우드의 잠수함 액션 영화입니다. 잠수함 영화라면 제게는 [붉은 10월]이 먼저 떠오릅니다. 숀 코네리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던 그 영화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감이 넘치는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크림슨 타이드]라는 영화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함장과 부함장간의 그 팽팽한 대결... 진 해크만과 덴젤 워싱턴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잠수함 액션 영화의 진수와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이렇듯 잠수함 액션 영화의 진미는 핵탄두를 장착하여 언제 어디에서 핵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그 긴박한 상황과 폐쇄적인 잠수함 내부라는 공간이 주는 압박감입니다.
저는 [K-19]가 개봉되었을때 이 영화가 [붉은 10월]과 [크림슨 타이드]를 어느정도 섞어놓은 듯한 영화일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K-19]가 소련의 핵 잠수함을 소재로 하고 있고 헐리우드의 스타급 배우인 해리슨 포드가 소련의 핵 잠수함 함장으로 나온다는 설정에서 왠지 숀 코네리가 소련의 핵잠수함 함장으로 나온 [붉은 10월]이 읽혀졌으며, 함장과 부함장간의 미묘한 감정 대립이라는 스토리 라인에서는 [크림슨 타이드]가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K-19]에 대한 나의 관심은 '과연 [K-19]가 [붉은 10월]이나 [크림슨 타이드]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였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K-19]는 [붉은 10월]처럼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소련의 핵잠수함 함장과 그의 의도를 몰라 우왕자왕하는 소련과 미국간의 정보 스릴러가 아니며, [크림슨 타이드]처럼 함장과 부함장간의 권력 다툼을 그린 액션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K-19]는 핵잠수함이라는 폐쇄적이고도 위협적인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모험담과 희생 정신을 그린 휴먼 드라마더군요. K-19호라는 소련의 실제 잠수함을 재현하는 등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헐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에 대한 우월주의나 입이 다물어지지않을 스펙타클을 포기하고, 위험에 봉착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다니...


 

 

  
[K-19]는 처음부터 소련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핵잠수함 K-19호의 결함을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애초부터 이 영화의 트러블은 K-19호에 의한 것임을 명백히 밝힙니다. 하지만 이미 [붉은 10월]이나 [크림슨 타이드]를 보고 [K-19]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예상을 한채 극장에 앉은 저로써는 이런 감독의 의도는 오히려 속임수처럼 보였습니다.
당의 부정부패에 반항하는 미하일 플레닌 부함장(리암 니슨)의 모습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결심을 이미 굳힌 [붉은 10월]의 라미우스 함장(숀 코네리)의 보습을 보았으며, 새로 부임한 알렉시아 보스트리코프 함장(해리슨 포드)과 미하일 플레닌 부함장간의 미묘한 감정 대립에서 [크림슨 타이드]의 램지 함장(진 해크만)과 헌터 부함장(덴젤 워싱턴)의 충돌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K-19]는 이러한 제 예상에 맞게 진행되는 듯 보였습니다. 새로 부임한 알렉시아 함장은 끊임없이 함원들을 훈련시킴으로써 함원들 사이에 불평불만을 만들어 냅니다. 오랫동안 미하일 부함장을 함장으로 모셨던 함원들은 알렉시아 함장이 낙하산 인사라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무리해서 훈련을 시킨다고 투덜댑니다. 결국 K-19호의 결함으로 인하여 잠수함 전체가 위험에 빠지고 알렉시아 함장은 미군에 도움을 청하느니 차라리 모두와 함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함원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미하일 부함장과 적국인 미국에게 도움을 청하고 K-19호를 넘겨 줄수 없다는 알렉시아 함장의 애국심이 충돌을 합니다.
저는 '드디어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카리스마라면 절대 뒤지지않는 해리슨 포드와 리암 니슨의 충돌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K-19]는 전혀 그러한 제 기대를 충족시켜줄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애초에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고 폐쇄된 공간에서 죽음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이었던 겁니다. 소련이나 미국같은 이념으로 둘러쌓인 국가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던 겁니다. 이 영화는 단지 이념을 초월한 사람... 단지 사람이라는 캐릭터 잡기에 충실합니다.


 

 

  
영화의 초반 이미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그러한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밝힙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의 잠수함 액션 영화를 기억하며 그러한 감독의 의도를 묵살해 버린 거죠.
이제 영화는 후반으로 흐르며 공산 주의와 민주 주의, 그리고 함장과 부함장이라는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벗어버리고 단지 사람으로써 살아남기위해 그리고 세계 제 3차 대전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에 있는 가족들을 구하기위해 영화속 캐릭터들은 용기를 발휘하고 희생을 자청합니다.
핵이 방출되는 곳으로 스스로 들어가 죽음을 자청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너무 인위적인 영웅주의가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러한 인위적인 영웅주의의 논란에서 비껴갈 수 있게끔 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성조기가 휘날리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에어포스 원]에서 미국의 영웅적인 대통령으로 나왔던 해리슨 포드가 소련 군복을 입고 냉전시대 미국의 숙적이었던 소련의 핵잠수함 함장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당한 위험이었을 겁니다. 만약 이 영화가 소련의 핵잠수함이 아닌 미국의 핵잠수함을 무대로 만들어 졌다면 이 영화는 미국내에서도 상당한 흥행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화에 충실하려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노력은 소련 군복을 미국 군복으로 갈아 입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헐리우드 영화 최초로 소련의 군인들을 영웅화한 이례적인 영화가 탄생한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단지 죽음의 위기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었을테니... 그런 면에서 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용기에 감사를 보냅니다. 자칫잘못하면 싸구려 영웅주의에 빠질 수도 있었던 영화를 흥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렇게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휴먼 드라마로 완성을 시켜 놓았으니 말입니다.


 

 

 

      

구피의꿈
흠냐~역시 잘쓴단말야^^  2002/10/16   

쭈니

흠야~역시 칭찬도 잘한단 말야^^  2002/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