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 - 이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쭈니-1 2009. 12. 8. 15:16

 



감독 : 스티븐 헤렉
주연 : 안젤리나 졸리, 에드워드 번즈
개봉 : 2002년 10월 11일

전 영화를 왠만하면 두번 이상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볼 영화는 너무나도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영화다 싶으면 몇번이고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곤 합니다. 올해 제가 두번 이상 본 영화는 [오아시스]와 [연애소설]뿐입니다.
작년에 개봉되었던 그 수많은 영화중에서도 제가 두번 이상 본 영화는 단 세편뿐이었습니다. 한편은 [메멘토]입니다. 그 영화의 경우 도저히 한번만 보고는 그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었기에 세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은 [A.I.]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그 섬뜩한 동화는 절 매료시켰고, 전 몇번이고 할리조엘 오스먼드의 슬픈 눈빛에 빠져 극장을 찾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편은 [툼 레이더]입니다. [메멘토]와 [A.I.]에서 고개를 끄덕이셨던 분들이라면 [툼 레이더]라는 영화를 두번 이상 봤다는 소리에 약간 의아해 하실 겁니다. [툼 레이더]는 분명 헐리우드의 단순한 SF 오락 영화이며, 그 내용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 좋았습니다. 단지 안젤리나 졸리의 그 멋진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툼 레이더]는 두번 이상 볼 값어치가 제겐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성 전사의 이미지로 절 매료시켰던 안젤리나 졸리가 금발 머리를 하고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했다는 군요. 안젤리나 졸리와 로맨틱 코미디... 이건 정말 안어울려도 너무 안어울리는 조합입니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한가지 이미지에만 매달리지 않고 이미지 변신을 위해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장르의 영화를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제 호기심이 자극하였습니다. 과연 안젤리나 졸리의 로맨틱 코미디는 어떠할까???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제가 느낀 것은 이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제겐 전혀 보이지 않더군요.


 

 

  
우선 이 영화가 가장 로맨틱 코미디답지 않는 요소는 바로 제가 우려했던 안젤리나 졸리의 존재입니다. 이 영화에서 시애틀 방송국의 잘나가는 리포터 레이니 역을 맡은 그녀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금발을 출렁거리며 온갖 이쁜척을 다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찌나 어색해 보이던지... 영화를 보는 내내 안젤리나 졸리가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레이니라는 캐릭터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레이니가 자포자기하여 술에 취해 만신창이가 된채 노동자들의 분규 현장에서 소동을 부리는 장면 뿐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차라리 레이니라는 캐릭터가 이쁜척하지 않고 저처럼 조금은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는 캐릭터였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배우의 매력이 절대적입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성과 남성이 등장하고 티격태격하며 결국엔 이상적인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적인 공식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렇듯 처음부터 이 공식에서 어긋나 있습니다. 금발 머리를 하고 이쁜척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는 도저히 로맨틱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안젤리나 졸리의 그 안어울림을 커버할 정도로 남성 주인공인 피트역의 에드워드 번즈가 특별히 매력적인 것도 아닙니다. 여느 로맨틱 코미디의 남성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피트라는 캐릭터는 적당히 남성적이고, 적당히 매력적입니다. 한마디로 평범 그 자체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피트라는 캐릭터는  그 평범함속에서 그냥 묻혀버리고 너무나도 안어울려서 오히려 튀어보이는 레이니만 자꾸 부각됩니다. 차라리 레이니의 역을 안젤리나 졸리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리는 다른 여배우가 맡았다면 나았을텐데하는 생각이 시종일관 절 괴롭혔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안젤리나 졸리의 출연을 통해 조금은 튀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으려 했다가 오히려 안젤리나 졸리의 강한 이미지때문에 별다른 덕을 보지 못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 외에도 스토리의 진행 면에서도 로맨틱 코미디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심각함을 유지합니다.
일주일 후면 죽을 것이라는 거리의 예언자에게 터무니없는 예언을 받게 된 레이니와 레이니의 숙적인 피트의 티격태격 싸우면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 기본 줄거리인 이 영화는 분명 레이니가 일주일 후면 죽는다는 예언을 받은 것을 제외하곤 아주 충실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입니다.
이 영화가 중점을 둔 것은 레이니와 피트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영화가 두 주인공의 사랑보다도 더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죽음을 앞둔 레이니의 자아찾기입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가식적인 삶을 살아가던 레이니는 일주일 후 죽는다는 예언을 받아들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시애틀의 야구 영웅인 남자친구는 단지 그녀가 귀찮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와 사귀고 있었으며, 가족간의 불화도 결국 누구의 책임도 아닌 자기 자신의 그 가식적인 모습탓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는 결국 찰랑찰랑한 금발을 휘날리며 이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도 못먹고 헬스 기구에 하루의 대부분을 소모하며 겉모기의 치장된 아름다움으로 인기를 유지하던 레이니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장면들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피트와의 사랑은 단지 레이니의 자아찾기에 양념 형식으로 아주 간결하게 삽입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영화 초반 레이니와 피트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리의 부랑자에게 죽음을 선고받고 불안해하는 레이니의 모습에 더욱 치중합니다.
만약 레이니와 피트의 사랑이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레이니와 피트의 관계를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하지 않았을겁니다. 레이니의 대사로 레이니와 피트가 앙숙관계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지만 영화속 장면으로는 왜 두사람이 앙숙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레이니와 피트의 영화 초반 관계 설정이 그러하다보니 레이니가 피트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장면또한 진부하기 그지없으며 무척이나 간결하게 처리합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피트는 단지 레이니의 자아찾기의 한부분일뿐 주체적인 역활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과 레이니와 피트의 사랑이 영화의 줄거리에 주체적인 역활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가지고는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가 아니라고 우길 순 없는 일입니다. 모든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로맨틱 코미디와 어울려야 한다는 보장은 없을 뿐더러 레이니와 피트의 사랑도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레이니의 자아찾기가 곧 레이니의 진정한 사랑찾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이 영화의 장르를 의심하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전혀 웃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로맨틱 코미디... 이 장르는 한마디로 코미디 입니다. 다시말해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로맨틱한 장면과 설정을 통해서... 하지만 이 영화, 전혀 안 웃깁니다. 아니 웃기는 것도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그 어울리지 않는 금발 머리... ^^;
영화의 초반은 마치 무슨 스릴러 영화 같습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일주일 후에 죽는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웃길리가 없습니다. 저는 과연 레이니가 어떤 이유로 일주일 후에 죽게 될것인지를 나름대로 추리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의 중반, 레이니가 자아를 찾아가는 장면에선 무슨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가식에 가득찬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하나둘씩 정리해가는 레이니의 모습이 웃길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후반에 가면 이건 마치 진부한 멜로 영화 같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중요하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이 영화 결말을 보고 있노라면 한심해지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왜 레이니가 전국 방송에 데뷰하여 전국적인 스타가 되는 것이 안좋은 삶이라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사랑을 위해서는 성공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이 영화의 순진한 메세지... 그렇다면 피트는 왜 레이니를 위해 시애틀에서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지... 왜 레이니에게만 사랑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인지... 암튼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의 한심한 결말에 한숨만 나왔습니다.
아무리 제가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고 우겨도 이 영화의 공식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임은 어쩔수없겠지만,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올해 제가 보았던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도 최악의 영화인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