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경수
주연 : 박상면, 소지섭, 송선미
개봉 : 2002년 9월 27일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와 극장에서 [연애소설]을 봤습니다. 정확히 2주전 혼자 [연애소설]를 보며 시시하다고 투덜거렸었는데... 그러다가 집에 홀로 앉아 [연애소설]의 한장면 한장면을 생각해내며 이 영화를 같이 봐줄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쓸쓸해 했었는데... 너무나도 착한 그녀는 [연애소설]를 같이 보자는 저의 느닷없는 제의에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으며 이렇게 제 옆에서 [연애소설]를 같이 봐주었습니다.
[연애소설]를 보고 극장문을 나서며 전 그녀가 너무나도 고마워 세상 모든 것을 전부 주고싶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제게 세상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연애소설]를 보고나서 그녀의 한마디...'영화 한편 더 볼래?'... 그녀의 그 한마디는 제게 세상 그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이었죠. ^^
이렇게해서 너무나도 행복한 기분에 젖어 [도둑맞곤 못살아]를 봤습니다.
네티즌 사이에선 호평보다는 악평이 지배적이었으며, 흥행에 실패하여 서서히 극장에서 비디오샵으로 그 자리를 옮기고 있는 영화였지만, 이미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제게 [도둑맞곤 못살아]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도둑맞곤 못살아]에서는 두명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한명은 성공한 게임 프로그래머인 최강조(소지섭)이고, 또다른 한명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공무원 고상태(박상면)입니다. 이들은 분명 겉보기에는 무엇하나 빠진 것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인듯 보입니다.
먼저 최강조... 그는 멋진 외모와 뛰어난 리더쉽,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소유한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보이는 멋진 남자입니다. 그리고 고상태... 그는 남들이 전부 부러워하는 멋진 집과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너무나도 귀여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행복한 가장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두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행복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때문에 불행합니다.
성공뒤에 오는 허탈함과 가족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최강조는 도둑질을 취미로 삼습니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것을 훔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것, 아주 사소한 것들을 훔침으로써 무료한 삶에대한 스릴과 성공으로 인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가정의 단란함을 몰래 체험합니다.
고상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그림같은 집. 하지만 아내인 황마리(송선미)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미맹이고 아이들 역시 미맹을 물러받아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아내가 해주는 그 무시무시한 음식을 그는 참아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만 참아낸다면 그의 가족 식사 시간은 행복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를 귀찮아하고 창피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화목한 가족이라고...
이렇듯 다른듯 보이면서도 어쩌면 서로 같은 이 두사람이 드디어 맞부닥치게 됩니다. 최강조는 고상태의 집에서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가정을 느끼고 그곳에 집착을 하기 시작하며, 고상태는 자신의 가정을 위협하는 최강조로부터 가족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 영화의 재미는 바로 이러한 것들입니다. 아주 작은 것들에게서 행복을 찾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우리 소시민의 모습... 솔직히 최강조가 훔치는 것은 그야말로 정말 작은 것들입니다. TV 리모콘이나, 가계부에 꽂아둔 생활비 3만원, 그리고 냉장고에 보관해둔 초밥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최강조에게도 고상태에게도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수 없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는 것이 행복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고상태에게 TV 리모콘은 행복한 가정의 상징과도 같은 겁니다. 가계부에 꽂아둔 3만원은 그리 큰 돈이 아니지만 주부인 황마리에게는 큰 돈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정성이 가득 담긴(?) 그 무시무시한 맛의 초밥 역시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최강조에게는 가장 훔치고 싶은 것이었을 겁니다.
이제 관객들은 이 사소한 것들을 둘러싼 최강조와 고상태의 점입가경 한판 대결을 지켜보게 됩니다.
마을 파출소마저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손해를 입었으면서도 고상태는 엄청난 크기의 도사견을 집에 들이고 그 아름다운 집을 각종 철조망으로 도배를 해버리며 창문도 전부 막아버립니다. 게다가 생전 해보지도 못한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시키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피해액은 겨우 3만원과 TV 리모콘, 그리고 초밥 몇개 정도이지만 그것은 한 가정의 가장인 고상태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최강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사회적인 성공에 비춰어 본다면 3만원이라는 돈과 아무 쓸데없는 TV 리모콘, 그리고 초밥 몇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미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고상태 가족의 단란함에 중독되어 있었으며 무리를 해서라도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려 합니다.
이렇듯 관객이 보기엔 너무나도 사소한 것들이지만 영화속 캐릭터들이 마치 굉장한 것을 훔치고 지키는 것인양 오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참! 이 영화 사랑스럽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너무 작고 사소하기에 사랑스럽던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는 갑자기 규모를 키워 버립니다.
최강조는 고상태의 벽걸이 TV를 훔치겠다며 예고장을 보내고 고상태는 가족들을 외가로 피신시키며 최후의 결투를 준비합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고상태의 집은 부서지고 온갖 와이어 액션이 난무하는 이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은 작고 사소한 것들에 따뜻한 웃음을 실었던 이 영화와는 너무나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닷없습니다.
고상태의 일기장을 훔쳐 읽고 뭔가 결심한듯 지금까지와는 다른 규모가 큰 도둑질을 계획하는 최강조의 모습에서 고상태와 최강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마지막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챘지만 의외의 결말은 최강조도 고상태도 아닌 제 3자에 의해 결판되고 라스트엔 예상했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최강조가 왜 갑자기 벽걸이 TV를 훔치겠다며 고상태의 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듬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취미 수준의 도둑질이 아닌 범죄 수준의 도둑질을 감행했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별다른 화해의 순간도 없이 갑자기 서로가 화해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지막의 의문점만을 제외한다면 [도둑맞곤 못살아]는 꽤 괜찮은 코미디 영화인 듯 보입니다. 지금 내 삶의 행복을 지탱하고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잊고 있었던 관심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우리들의 아버지의 그 눈물겨운 노력이 새삼 느껴지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