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현석 주연 : 송강호, 김혜수, 김주혁 개봉 : 2002년 10월 3일
요즘 저는 '싱글 친구 클럽 77'이라는 DAUM 카페에 완전히 푹 빠져있습니다. 솔직히 이 카페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제 대인관계라는 것이 조금 폐쇄적이었습니다. 항상 만나는 친구들만 만나고,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앉아 혼자 컴으로 영화보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한마디로 새로운 만남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물론 제 홈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새로운 만남을 가지긴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on-line을 통한 만남일 뿐이죠. 하지만 '싱글 친구 클럽 77'에 가입하고부터는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일요일날 친구들과 모여 당구치고 술먹거나, 운좋은 날은 후배와 함께 영화보고, 이도저도 아니면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일요일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고, 언제나 새로운 곳을 여행하게 됩니다. 처음엔 이러한 것들이 조금은 어색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이라는 것이... 그러나 마음을 열고 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니 그 낯선 사람들이 전부 친구, 형, 누나, 동생이 되더군요. 구피의 꿈 누나와 속삭임 누나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처음엔 그냥 낯선 사람들에 불과했었는데 지난주 청량산으로의 여행 이후 친해져서 지금은 제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답니다. ^^ 10월 3일... '싱글 친구 클럽 77'에서는 도봉산으로의 번개 산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구피의 꿈 누나와 속삭임 누나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싱글 친구 클럽 77' 회원들을 배신하고 전 오랜만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된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 전 그동안 이 행복을 잊고 살았던 겁니다. 고마워요... 구피의 꿈 누나... 그리고 속삭임 누나... ^^
그날 그러한 행복과 함께 해준 영화는 바로 [YMCA 야구단]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모두들 아시겠지만 1905년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또 코미디???'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 영화는 요즘 유행하는 단순한 조폭 코미디와는 조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영화엔 단한마디의 욕지거리도 나오지 않고, 액션 영화를 방불케하는 폭력씬이나 어정쩡한 야한 장면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이 영화는 휴먼 코미디를 표방하며 관객들에게 가슴 따뜻한 웃음을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상한 영화입니다. ^^; 우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이 영화의 세가지 키워드는 즐겨야 합니다. 그 첫번째 키워드는 송강호라는 배우입니다. 송강호... 그는 코미디 영화에서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심어주며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고 있습니다. [넘버3]라는 영화가 그토록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제 생각에는 한석규의 열연보다는 송강호의 코믹 연기 덕분이었습니다. [조용한 가족]에서 그의 코믹 연기 역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중 하나였죠. 특히 그의 진가가 발휘된 영화는 [반칙왕]입니다. 소시민의 일탈을 그린 이 영화는 송강호의 코믹 연기만으로도 관객들의 박장대소를 이끌어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만약 송강호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아마 그 영화는 북한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때문에 가슴따뜻한 휴먼 드라마로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이러한 송강호식 코믹 연기의 장점은 억지로 관객을 웃기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른 조폭 영화의 경우 그 웃음이 과장된 액션과 욕지거리로 포장된 대사로 이루어져 관객들을 억지로 웃기하는 반면, 송강호는 그러한 것들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의 코믹 연기는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함이 묻어 있으며, 그렇기에 한참 웃고나면 가슴 한켠에 따뜻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그가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그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고 다시 그의 전공 분야인 코미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YMCA 야구단]은 그러한 송강호의 매력을 영화속에 잘 이용합니다. 그가 맡은 이호창이라는 캐릭터는 암행어사를 인생의 목표로 살다가 과거제도의 폐지로 목표를 잃어버린 선비입니다. 마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목표를 잃어버린 조선의 국민들처럼... 하지만 그는 야구를 통해 새로운 목표를 찾아내고 선비라는 굴레를 벗어나 조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줍니다. 이호창... 마치 송강호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종횡무진 활약하며 영화의 재미를 책임집니다. 그의 행동 하나, 대사 한마디에 저는 웃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웃음 뒤에는 이호창이라는 캐릭터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즐기기위한 두번째 키워드는 바로 야구라는 영화의 소재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스포츠와 영화는 찰떡 궁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의 그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승부의 세계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감동적인 모습들이 영화라는 매개체와 만나게 되면 승부의 세계는 좀더 다이나믹하게 변하게 되고 감동적인 모습들은 인간적인 영웅으로 탈바꿈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죠. [YMCA 야구단] 역시 스포츠의 이러한 면들을 영화속에 잘 융해시킵니다. 양반과 상놈의 경계가 무너지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열광하며, 친일파와 친일파의 암살 조직원들이 YMCA 야구팀이라는 이름아래 하나가 될수 있었던 것도 전부 야구 즉 스포츠의 힘입니다. 특히 마지막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YMCA 야구단과 일본팀과의 경기는 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아슬아슬합니다. 9회말 투아웃에 주자 1루. 경기는 4대 2로 지고 있고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일본팀에게 다시 한번 치욕적인 패배를 당해야 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말을 타고 등장하는 우리의 4번 타자 이호창의 그 늠름한 모습은 그 어떤 액션 히어로 보다도 멋있게 느껴집니다. 그것 역시 스포츠의 힘입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야구라는 영화의 소재를 잘 이용하여 영화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김현석 감독은 '조선 최초 야구단'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스포츠가 주는 긴장감과 감동 외에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치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 영화의 웃음이 대부분 송강호의 연기에 기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송강호의 연기에만 기댔다면 관객들은 금방 실증을 냈을 겁니다. 이렇게 관객들이 실증을 낼만 할때쯤 이 영화는 야구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 캐릭터들의 그 어정쩡함을 이용한 웃음을 제시합니다. 야구의 룰을 몰라서 온갖 헤프닝이 벌어지고, 야구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우스꽝스러운 장비로 대체되고... 저는 이러한 소동을 볼때마다 이 영화의 자연스러운 웃음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구라는 소재를 통해 긴장감과 감동을 전해주고 그와 동시에 웃음마저도 창출해낸 김현석 감독의 능력... 드디어 걸출한 신인 감독을 만난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
이 영화를 즐기기위한 세번째 키워드는 바로 1905년이라는 영화의 시대적 상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우리나라는 조선이라는 500년동안 이어오던 체계가 무너지려 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만행은 점차 극악해지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결국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본격적인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되는 그 암울한 시기가 바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만큼이나 암울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밝고 경쾌합니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메세지를 꺼내 듭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것들 입니다. 그 암울한 시기를 관통하는 밝고 경쾌한 희망의 메세지... 을사조약 체결을 반대하여 자결한 민정림(김혜수) 아버지의 유언장 대신에 이호창의 그 유치찬란한 연애편지가 읽혀지고, 등장인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만행에 의병 활동을 하기보다는 실수만 연발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몰두합니다. 분명 이 영화는 시대적 배경만으로도 그 묵직한 무거운 주제 의식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YMCA 야구단]은 그 묵직한 주제 의식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웃음을 통한 희망과 감동을 선택합니다. 그렇기에 일본군에게 야구 연습장을 하루 아침에 빼앗기고 벌어지는 야구 경기 장면에서 관객들은 승리를 기원합니다. 마치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는 우리 의병이 현대식 무기를 갖춘 일본군을 무찌르기만을 바라는 심정처럼 말입니다. 마지막 일본군과의 야구 2차전 경기는 그 승리는 염원하는 관객의 마음은 배가 됩니다. 겨우 야구 경기일 뿐인데... 금메달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 언론의 시선이 집중된 것도 아닌 단지 동네 야구 수준의 경기일 뿐인데... 관객들은 안타까워하며 승리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가능 할 수 있었던 것은 1905년이라는 시대적인 배경 덕분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 분통함을 야구라는 경기를 통해 보상받으려하는 영화속 캐릭터들의 심리는 그대로 저에게도 전해졌고, 마지막 극적인 역전의 그 순간 저는 반사적으로 박수를 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것이 1905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정말 오랜만에 아주 깔끔한 코미디 영화 한편을 본 기분입니다. 물론 분명 그 웃음의 강도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작았다는 것 역시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웃음의 여운은 그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도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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