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레인 오브 파이어>- SF는 없고 영웅담만 있다.

쭈니-1 2009. 12. 8. 15:12

 



감독 : 롭 바우만
주연 : 크리스찬 베일, 매튜 매커너히, 이자벨라 스코룹코
개봉 : 2002년 9월 13일

설날과 추석같은 우리의 고유 명절이 되면 서울 시내는 한산해 집니다. 서울 시내의 그 수많은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모두 귀경길에 오른 듯 한산해진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 항상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하지만 한산해진 서울 시내와는 대조적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극장입니다. 귀경길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극장으로 모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저도 명절때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 동생들과 극장에 가곤 합니다. 지난 설날때에는 <콜래트럴 데미지>를 봤었죠. 그리고 이번 추석 역시 그냥 넘기기 아쉬워서 사촌 동생과 함께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매표소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 그리고 매진 행렬...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당황되더군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명절날이면 한국 영화에는 사람들이 많지만 외국 영화는 한산합니다. 이번에 상영하는 한국 영화인 <가문의 영광>, <연애소설>, <보스 상륙 작전>, <오아시스> 등이 모두 매진을 기록하는 가운데 우리 영화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만이 한산하더군요.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던데...
솔직히 저는 애국심을 발휘해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를 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이런 악평이 쏟아지고 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죠. 하지만 분명 저 혼자 극장에 갔다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보았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촌 동생과 함께 였으니 모험을 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결국 선택한 영화는 <레인 오브 파이어>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에 별다른 기대가 없었지만 그래도 헐리우드의 SF 영화인 만큼 최소한의 재미 정도는 보장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이 영화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눈이 높아진건지, 헐리우드의 영화 수준이 낮아진건지, 요즘 왜그리 입이 쩍 벌어질만한 헐리우드 영화가 드문지 모르겠네요.


 

 

    
<레인 오브 파이어>는 가까운 미래에 입에서 불을 내뿜는 거대한 익룡과 멸망 위기에 놓인 인류의 한판 대결을 그린 SF 액션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 내용이 그러하다보니 이 영화에 대한 제 기대는 오락적인 재미라는 아주 단순한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분명 그러한 오락적 재미를 완벽하게 갖춘 듯이 보입니다. SF 영화가 흔히 써먹는 암울한 미래와 헐리우드의 특수효과로 탄생한 거대한 익룡. 그리고 익룡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구조까지...
이 영화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오락적인 재미에 대한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거대한 익룡이 주인공인 퀸의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익룡의 사람에 대한 선전포고치고는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이제 익룡에게 어머니를 잃은 소년 퀸과 사람들의 익룡에 대한 복수만 남은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로 급속도로 오락적인 재미를 잃어 갑니다.
거대한 익룡의 등장과 함께 최신 병기를 동원한 인간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세월은 갑자기 몇십년후로 훌쩍 건너뛰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제가 기대했던 인간과 익룡의 스펙타클한 전투씬은 단지 타임지의 기사 몇장만으로 표현되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하는 소리가 인간이 익룡을 처치하기위해 핵폭탄까지 사용했지만 처치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바로 그 타임지의 몇장의 기사로 끝내버린 핵을 사용한 인간과 익룡의 한판 대결이었는데... 이 영화는 마치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건너뛰어 버린 겁니다.
핵무기를 사용한 인간과 인간이 세운 문명을 지옥불같은 화염으로 태워버리는 익룡의 한판 대결을 건너뛰었다면 무언가 다른 재미를 마련해 놓았다는 이야기인데...
하지만 이 영화가 마련한 것은 고작 원시인처럼 숨어사는 인간과 간간히 한마리씩 등장하는 익룡뿐이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다른 문화권의 영화라면 분명 이해가 되었을 겁니다. 다른 문화권의 영화라면 수많은 익룡과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인간의 전쟁을 그리기엔 기술력과 자본력이 분명 딸릴테니 그러한 스펙타클한 장면들을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 없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입니다. 그것도 <엑스 파일>을 연출했던 롭 바우만 감독과 헐리우드에서 인기와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매튜 맥커너히와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을 맡았으며 자본력에서는 절대 다른 영화사보다 뒤지지않는 디즈니 계열의 터치스톤 영화사가 제작을 맡은 영화인 겁니다.
아마추어인 제가 봐도 어떤 장면을 넣어야지만 관객이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헐리우드의 제작사가 그것을 몰랐을리도 없고...


 

 

  
그래도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 무언가 있겠지... 하는 기대는 끝까지 버릴 수 없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르면 그러한 기대마저도 무너뜨립니다.
중반부 영화의 스펙타클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던 벤젠과 자살 특공대라고 불리우는 익룡 사냥꾼들은 겨우 암컷 익룡 한마리 잡아놓고 수컷과의 전쟁을 벌인다며 의기양양하게 출동하다가 어이없이 전멸당합니다. 그리고 익룡에 맞서 싸울 남은 인원은 고작 세명... 분명 핵무기마저도 견뎌낸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익룡과 세명뿐인 인간의 후반부의 대결은 너무나도 턱도 없어 보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 익룡의 위력을 너무 과대 포장하다보니 마지막엔 처치 불능에 빠져버린 겁니다. 그러곤 고작 선택한 결말이라는 것이 수컷 한놈만 죽이면 수백만 마리의 암컷들도 덩달아 사라질것이라는 억지입니다.
뭐 좋습니다.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수컷의 본거지라는 런던에 도착하여 수컷과 싸우는 장면은 정말로 어이가 없습니다.
제가 만약 수컷 익룡이라면 고작 인간 세명을 상대하기위해 손수 나서지도 않을 겁니다. 그 수많은 암컷 익룡중에 몇놈만 동원해도 쉽게 인간 세명정도는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인간의 그 최첨단 전쟁 무기와 핵무기를 견뎌내고 인간을 거의 멸종시킨 수컷 익룡이 그걸 모를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서둘러 끝마치려는 듯 그 수많은 암컷 익룡은 온데간데없고 수컷 익룡이 손수 인간들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어이없게도 쉽게 죽습니다. 그리고 수컷의 죽음과 함께 그 수많았던 암컷 익룡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차라리 익룡들이 핵무기를 견뎌냈다며 익룡의 위력을 뻥튀기하지만 않았어도 어느정도 믿어주었을텐데... 기껏 익룡의 위력을 한컷 부풀려 놓고 이렇게 쉽게 죽여버리니... 클라이막스를 한껏 기대한 제 입에서 한숨만이 나오더군요.
이러한 <레인 오브 파이어>의 아쉬움은 <프릭스>라는 영화에서도 느꼈었죠. 영화의 규모는 틀리지만 그래도 온 동네를 다 덮을 만큼 그 수많았던 거미떼들이 겨우 폭발 하나로 전멸시키다니... 요즘 헐리우드 영화의 대세가 어정쩡한 끝마리인가 봅니다. ^^;


 

 

  
이렇듯 영화의 스펙타클에 대한 제 기대를 무참히 밟아버린 이 영화는 잿더미속에서 원시인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처참한 모습을 잡아내며 무언가 메세지를 전달하려 합니다.
퀸은 말합니다. 그 옛날 공룡을 멸종시킨 것이 바로 이 익룡이었으며, 그로인하여 빙하기가 찾아왔다고... 그렇다면 익룡은 공룡을 멸망시켰듯 인간 또한 멸망시키고 다시 지구를 정화시키기 위해 나타난 존재라는 건데...
이렇듯 이 영화는 단순한 SF 액션 영화에서 벗어나 자연을 훼손시키는 인간에 대한 형벌이 익룡의 등장이라며 '자연 보호'에 대한 메세지를 전해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그 메세지 역시 흐지부지됩니다.
솔직히 헐리우드가 생산해낸 그 수많은 SF 영화를 보면은 이러한 메세지 정도는 어느정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터미네이터> 역시 인간의 무절재한 과학의 발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터미네이터>를 보고나서 그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반성한 관객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결국 이러한 헐리우드의 SF 액션 영화의 메세지는 단지 영화의 상황을 설명하기위한 하나의 소재에 불과한겁니다.
<레인 오브 파이어>의 메세지 역시 그러합니다.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몇분이나 '그래, 자연을 훼손하면 저런 재앙이 올지도 몰라.'하며 극장문을 나설까요? 아니 그런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서더라도 이 영화를 보고 느낀것이 있어 '자연보호'를 위해 남은 인생을 걸고 뛰어들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결국 <레인 오브 파이어>의 메세지라는 것이 단지 익룡의 출몰이라는 상황을 설명하기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 증거로 이 영화의 마지막엔 '자연 보호'라는 메세지는 온데간데없고 단지 온갖 어려움속에서 수컷 익룡을 처치한 퀸의 영웅적인 모습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자연 보호'라는 메세지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이렇듯 어정쩡한 스펙타클 SF 액션과 수박겉핥기식의 메세지로 치장한 이 영화는 그래도 퀸의 영웅 만들기에서는 꽤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어렸을적 처음으로 익룡을 발견하고 눈앞에서 익룡에게 어머니를 잃은 퀸은 익룡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숨어 삽니다. 그는 언젠가는 익룡의 먹이도 떨어질테니 익룡이 모두 굶어 죽을때까지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아주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가 적극적으로 익룡과 싸움을 벌이는 벤젠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익룡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벤젠과 퀸은 서로 손을 잡고 수컷 익룡을 처치하기로 의기투합하는 겁니다.
분명 이러한 과정을 통해 롭 바우만 감독은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서는 퀸의 정신적인 성장을 훌륭하게 잡아냅니다. 그리고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시키죠.
퀸보다 더욱 카리스마가 넘치는 벤젠을 희생시키며... 영웅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인까지 선사하며...
결국 이 영화는 돈이 많이 드는 스펙타클을 포기하고, 골치아픈 메세지도 살짝 뒤로 감춘채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영웅담만을 살려놓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온 제 소감은 '헐리우드도 이젠 제작비가 모자른가 보다!'입니다. ^^;


 

    


아랑
후훗. 그래요.
어제 가문의영광보려고 별 쑈를 다 했는데 결국 못봤음다.^^;
 2002/09/25   

쭈니
저런... 왠만하면 예매를 하시지 그랬어요. ^^;  200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