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가문의 영광>- 배우들의 코믹 연기에만 기댄...

쭈니-1 2009. 12. 8. 15:10

 



감독 : 정흥순
주연 : 정준호, 김정은, 유동근, 성지루, 박상욱, 박근형, 유혜정, 진희경
개봉 : 2002년 9월 13일

9월 4일... 만약 예정대로였다면 그날은 상당히 바쁜 날이 되었을 겁니다. 그날 예정된 첫번째 약속장소는 2호선 당산역... 저희 집이 석관동이니 거의 서울의 끝에서 끝이죠. 당산역에서 나모와 포토샵 CD를 받고나면 그 다음 행선지는 선릉역입니다. 예전에 보았던 <패밀리>의 예매 이벤트에 당첨되어 티셔츠를 준다길래 공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백수의 철칙을 받들어 '패밀리'라고 큰 글씨가 떡하니 박힌 티셔츠를 받기위해 선릉역으로 가야합니다. 선릉역에서 티셔츠를 받고나면 그 다음 행선지는 강변역 테크노마트. 제 컴의 하드가 꽉 차있어서 공 CD를 사서 제 컴의 영화 파일을 공 CD로 옮길 생각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후배와 만나 <가문의 영광> 시사회장인 서대문역에 가야합니다. <가문의 영광> 시사회가 끝나면 후배의 집인 건대입구역으로 데려다주고 집인 석계역으로...
정말 대단한 여정아닙니까? 비록 2호선을 중심으로 약속 장소가 짜여져있다고는 하지만 2호선을 한바퀴 돌고도 남을 정말 긴 여정입니다. 하지만 그날의 여정은 무엇하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난 저는 그만 늑장을 피우고 말았습니다. 빨리 서둘러도 이 모든 약속장소를 모두 갈 수 있을 판이었는데... 몇달간의 백수생활의 그 느긋한 생활이 몸에 베어있는지라 그날의 바쁜 일정이 조금 짜증나더군요.  나모와 포토샵 CD를 빌려준다는 친구한테는 약속날짜를 다음날로 미루고 티셔츠도 다음날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하나둘씩 파기하고나니 테크노마트에서 공 CD를 사는 것도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테크노마트에 가는 것마저 포기하고 빈둥대다가 후배와 <가문의 영광> 시사회에 참석하기위해 씻고있을때쯤 후배의 전화... 급한 약속이 있어서 못나온다고 하더군요. 황당~~~
결국 영화는 또다시 웬수같은 친구녀석과 봐야했습니다. 달랑 천원가지고 나와서는 밥 사달라, 음료수 사달라 넉살좋게 졸라대는 그 녀석을 보며 오늘 게으름피우는 바람에 벌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하지만 그 다음날 당산역으로... 선릉역으로... 강변역으로... 그 녀석을 끌고다녔으니 그 녀석 밥값은 톡톡히 치룬 셈이 되었습니다. ^^


 

 

  
<가문의 영광>은 조폭 코미디입니다. <패밀리>에서도 말했지만 이젠 너무나도 많은 조폭 코미디들이 난무하다보니 이전의 조폭 코미디와는 차별되는 무언가 새로움을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는한 <가문의 영광>은 또 한편의 그저 그런 조폭 코미디로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가문의 영광>은 소재면에서 <조폭 마누라>와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그것은 곧 소재만으로는 영화의 새로움을 창출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문의 영광>은 <조폭 마누라>를 넘어서 새로운 재미를 관객에게 안겨줄 수 있을런지...  
일단 <가문의 영광>의 최대 장점은 올해 개봉된 조폭 코미디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가장 화려한 배역진입니다. TV에서 코믹한 이미지를 통해 인기를 얻은 후 <재밌는 영화>로 성공적인 스크린 데뷰를 마친 김정은과 <두사부일체>로 작년 조폭 코미디의 인기몰이에 한 몫 거들었던 정준호가 짝을 이루었으며, 유동근, 박근형 등 탄탄한 조연진이 그 뒤를 받치고 있으니 배역진만 본다면 이 영화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화려한 배역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우들이 영화의 새로움에 어느정도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영화의 새로움을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일단 정흥순 감독도 이 사실을 잘 알고있는 듯 합니다. 그는 <가문의 영광>에서 조폭 가문의 막내 딸인 장진경(김정은)과 순진한 앨리트 청년 박대서(정준호)가 결혼하기까지의 로맨틱한 소동을 그려냄으로써 이전의 조폭 코미디에서 취약 부분이었던 로맨틱한 부분을 부각시키며 조폭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을 통해 영화의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한때는 우리 영화의 주류 장르였다가 조폭 코미디에 밀려 한동안 우리 영화에서 별로 찾아 볼 수 없었던 로맨틱 코미디와 현재 우리 영화의 주류 장르인 조폭 코미디의 결합은 분명 이전의 조폭 코미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었으며, 김정은과 정준호는 이러한 로맨틱 조폭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에 그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장본인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정준호는 가장 최근에 개봉되었던 로맨틱 코미디인 <좋은 사람있으면 소개시켜줘>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었죠.)
그렇다면 <가문의 영광>은 로맨틱 조폭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과 동시에 이전에 성공한 조폭 코미디처럼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을까요?


 

 


일단 이 영화는 배우들을 통한 웃음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약간 얼빵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앨리트 박대서역을 맡은 정준호만이 기대에 못미치는 웃음을 관객에게 안겨주었을뿐 다른 배우들은 기대 이상의 웃음을 관객에게 안겨줍니다.
특히 김정은... 그녀의 코믹 연기는 이제 절정에 달하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이 영화에서 그녀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순진하고 청순가련한 여인에서 어느 순간 전라도 사투리를 써대며 조폭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터프한 여인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그녀는 이 영화의 웃음을 확실하게 책임집니다.
만약 이 영화에 김정은이 나오지 않았다면 <가문의 영광>은 <패밀리>처럼 웃기지도 않는 조폭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이 영화에서 거의 60% 이상의 재미를 책임집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40%는??? 바로 유동근을 비롯한 박근형, 성지루, 박상욱, 유혜정이 버티고 있는 쓰리 제이 조폭 가문의 몫입니다.
특히 유동근의 코믹 연기는 너무나도 의외여서 그 웃음의 강도 역시 큽니다. TV에선 주로 대하 사극에서 굵직한 역으로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던 유동근이었기에 이 영화에서 그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는 TV에서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예상치못한 웃음을 관객에게 전해줍니다. 정흥순 감독도 유동근의 코믹 연기가 인상깊었는지 영화의 흐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장인태(유동근)과 청순한 초등학교 선생인 원혜숙(진희경)의 웃기는 로맨스 소동을 영화에 삽입하기까지 합니다.  
그 외에 조역진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코믹 연기를 펼칩니다. 박근형과 성지루, 박상욱은 물론이고, 장인태의 아내 미순역으로 나오는 유혜정까지 쉴새없이 코믹한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멈추지 않게끔 합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작년에 개봉되었던 조폭 코미디와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않는 재미를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 자체가 웃음이 가득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제 기대에 못미쳤던 것은 로맨틱 조폭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에는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진부한 조폭 코미디라는 장르를 넘어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는데에 실패한 겁니다.
이러한 실패의 근본적인 이유는 물론 시나리오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재미를 책임졌던 김정은의 그 코믹한 이미지 탓입니다.
그녀의 코믹한 이미지는 로맨틱한 영화의 분위기마저도 코믹한 분위기로 바꾸어 버려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가 되려는 것을 방해합니다. 특히 김정은이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 분명 로맨틱 영화의 잣대로 본다면 슬픈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그 코믹한 이미지는 이 장면에서도 관객을 웃게만들어 버립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관객을 웃기기 보다는 관객들을 일단 로맨틱한 분위기속에 밀어넣고 그들의 밀고 당기기 사랑 싸움을 하는 동안의 로맨틱한 재미를 관객에게 안겨줘야하는데, 김정은의 이러한 코믹한 이미지는 관객들이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합니다.
게다가 시나리오의 부실도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가 될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정흥순 감독은 배우들의 코믹 연기의 힘을 빌린 코믹한 영화의 재미에 주력을 쏟다보니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남녀 캐릭터가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그 순간을 잡아내는데엔 실패합니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진경과 대서는 얼떨결에 함께 하룻밤을 자게되고 그 하룻밤의 댓가로 강제 결혼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맨처음엔 이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어느새 진경은 대서를 사랑하고 있으며, 대서 역시 조폭 가문이라고 끔찍해하더니 어느 순간 진경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로맨틱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랑에 빠졌다'가 아니라 '어쩌다가 이들이 사랑에 빠졌는가?' 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 두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렇기에 영화는 좀더 진경과 대서의 사랑에 주력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그러한 모험을 피하고 확실하게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코믹한 장면들로 영화를 채웁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그 순간에 밀려오는 아쉬움은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1997년 그 당시 최고로 잘나가던 흥행 메이커인 박중훈과 함께 호주에서 올로케로 <현상수배>를 찍어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정흥순감독은 그러나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코믹 연기에만 너무 주력을 기울인 나머지 영화의 재미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고 기대했던 만큼의 흥행을 올리지못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거의 실패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박중훈이라는 한 명의 코믹 연기에 기댔던 <현상수배>와는 달리 김정은, 정준호를 비롯한 여러명의 배우의 코믹 연기에 기대어 <가문의 영광>이라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것은 배우들의 코믹 연기에 기댄 웃음은 분명 그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문의 영광>은 분명 웃음이라는 코드를 완벽하게 구축해 놓았으며, 로맨틱 코미디와 조폭 코미디의 결합이라는 새로움 역시 마련해 놓음으로써 올해 개봉되었던 그 어떤 조폭 코미디보다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코믹 연기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그리고 그러한 영화적 재미에 대한 유혹을 감독이 뿌리치지 못했기에 이 영화가 마련해놓은 새로움은 배우들의 코믹 연기에 사라지고 단순한 조폭 코미디의 웃음만이 남아 버렸습니다.  
분명 영화를 보는 순간은 실컷 웃기는 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며 느껴지는 아쉬움 역시 컸습니다. 단지 한바탕 웃고 잊어버리는 조폭 코미디가 아니라 정말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그런 새로운 조폭 코미디를 볼 수 있을뻔 했었는데...


 

  

아랑

아.. 오늘은 영화를 볼수 있을지..
걍 즐겁게 웃을수 있는 영화면 되거든여.
근데 왜케 영화보기가 힘든지 몰겠네염-_-;
 2002/09/07   

쭈니

그럴때가 있어요.
저도 이상하게 영화보기로 맘만 먹으면 자꾸 일이 꼬여서 못볼때가 있거든요.
그땐 맘을 독하게 먹고 무슨 일더라도 영화를 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필요하죠. ^^;
 2002/09/07    

인연이

걍 생각없이 무조건 웃고 싶을때 보면 딱 좋을 영화더라.
어제 봤지롱....헤헤^^
정준호의 연기는 두사부일체나 좋은사람....이랑 별반 달라진건 없었고, 김정은의 수다스러운 연기는 정말 웃겼던거 같어. 유동근의 연기변신은 정말 대단했쥐.. 능청스러운 유혜정의 경상도 사투리도..(잘하드만...) 다 보고 난 느낌은 별반 일반 한국 코미디영화와 다를게 없다는것.... 스토리상 너무 코믹에만 의존해서인지 로맨스가 안 어울린다는 느낌도 받긴 했어....^^
 2002/09/14   

쭈니

오호~ 인연이가 내가 <가문의 영광>을 보고 느낀 것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 줬구나!!!
암튼 대단혀~~~
 200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