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프릭스>- 용두사미...

쭈니-1 2009. 12. 8. 15:08

 



감독 : 엘로리 엘카엠
주연 : 데이비드 아퀘드, 캐리 뷰러
개봉 : 2002년 8월 30일

제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물론 영화를 보는 그 순간입니다. 하지만 영화 볼때보다도 아주 쬐금 더 즐거운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를 보기전의 그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것이 영화표를 끊어놓고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영화를 다운받을때 그 다운받는 그 순간, 혹은 친구와 영화보기로 약속하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을 말하는 겁니다.
전 컴퓨터로 영화를 다운받을때 가끔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곤 합니다. 영화가 조금씩 제 컴퓨터속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기쁘고 설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전부 다운받아질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다운 받은 영화를 그 즉시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운받은지 1년이 지나도록 아직 보지도 못한 영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은 절 정말로 행복하게 합니다.
극장에서 영화보기로 약속한 날을 기다리는 시간은 영화 다운받는 그 순간보다 더 행복합니다. 예전엔 여자친구와 극장에서 영화볼때 본 영화가 시작하기전 예고편이 하면 여자친구한테 '우와! 저 영화 재밌겠다. 우리 다음주에 저 영화보자.'라며 약속을 받아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또 다음주엔 그 영화를 보게될 것이며, 그 일주일간의 기다림의 시간은 또 절 행복하게 하는거죠.
지금은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런 즐거움이 없지만 지난 주에 예기치않게 그런 즐거움이 절 찾아왔습니다. 친한 후배와 <어바웃 어 보이>를 보기전 <프릭스>라는 영화 예고편이 하고 있었죠. 그런데 예고편을 유심히 보던 그 후배는 '오빠! 우리 다음주에 저 영화보러오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순간 나의 온몸을 감싸는 그 행복감...
'잘 키운 후배 하나, 열 애인 안부럽다~~~' ^^;


 

 

  
8월이 지나가며, 올해 여름도 끝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올 여름을 장식한 블럭버스터들도 이제 슬슬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 여름 블럭버스터는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 듭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2>, <맨 인 블랙 2>,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이름만 들어도 매력적인 수 많은 블럭버스터들이 개봉되었건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만은 지울수가 없었죠. 단지 작년에 비해 흥행 대작들이 별로 안보였기 때문일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프릭스>의 개봉 소식을 듣고 제가 느꼈던 그 허전함이 무엇이었는지 드디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블럭버스터의 영원한 화두인 '거대함'이었습니다.
<고질라>에서부터 <쥬라기 공원>까지 매년 '거대함'을 무기로 한 블럭버스터들이 여름 극장가를 화려하게 장식했었는데 올해엔 그러한 '거대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가는 그 끝자락에서 결국 <프릭스>가 '거대함'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주고 끝나가는 여름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군요.
<프릭스>는 모두들 아시겠지만 산업 폐기물로 거대해진 거미떼가 인간을 습격하는 SF 호러 영화입니다. 물론 '거대함'의 정체가 고작 거미이다보니 <고질라>와 <쥬라기 공원>의 '거대함'보다 그 크기에서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거미라는 그 징그러운 곤충을 내세웠다는 것은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솔직히 거미는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학교 생물시간에 거미는 이충이라고 분명히 배웠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곤충의 피를 빨아먹는 그 엽기적인 행각과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그 징그러운 외모는 괴물로 등장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거대한 거미가 저를 거미줄로 꽁꽁 묶어놓고 피를 빨아먹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오싹해지니 분명 이 영화는 소재를 잘 선택하긴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소재의 장점을 잘 살려낼 수 있을런지...


 

 

    
우선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영화는 어느정도의 재미를 갖추긴 했지만 관객들을 마지막까지 영화에 몰두시킬 매력까지는 갖추지 못한 영화입니다.
우선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아쉬움은 스타급 배우들의 부재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배우는 고작 <스크림>에서 그 어벙벙한 보안관으로 나왔던 데이비드 아퀘드뿐입니다. 일단 그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가 여름 극장가를 장악할 블럭버스터는 아니라는 점을 입증시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소규모 제작비와(다른 블럭버스터에 비교한다면...) 스타급 배우의 부재를 아주 뻔한 장르 영화의 재미와 '거대함'으로 메꿉니다.  
솔직히 이런 류의 영화들... 내용 정말 뻔합니다. 아주 조용한 시골마을에 재앙이 닥치고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그 재앙에 맞서 싸운다... 뭐 항상 이런 식이죠. 그리고 이런 영화엔 항상 몇가지 뻔한 코드들이 등장합니다.
그 첫번째는 어른보다 어린아이들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떠벌이 흑인이 꼭 한명씩 등장하여 웃음을 책임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속에 꽃피는 사랑이 항상 존재한다는 겁니다. 물론 <프릭스>는 이 중 단 한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영화속에 끼워 넣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부가시킵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새로움이라기보다는 언제나 보아왔던 친근함입니다.
그러한 점을 이 영화는 충분히 알고 있는지 관객의 예상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 상황과 스토리 전개를 통해 관객들이 스토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영화의 '거대함'에 아무 생각없이 빠져들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 그것은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신비한 동물의 세계'에서나 볼법한 갖가지 거미들이 거대해진 몸을 뽐내며 사정없이 인간을 잡아먹고,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터 쉴틈없이 쏟아지는 거미들의 습격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적 재미가 영화가 끝날때까지 유지될수는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이 영화의 조급함때문입니다.
많은 호러 영화들의 경우 처음엔 너무나도 평화로운 마을이나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아주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를 표현합니다. 그 공포의 실체는 영화의 중반까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단지 실종되는 사람들이나 죽은 사람들의 시체만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 그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며 클라이막스를 맞이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런 류의 영화는 초반부가 약간 지루합니다. 하지만 초반부가 지루하면 할수록 영화 후반부의 박진감은 커집니다.
하지만 <프릭스>는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 영화의 공포의 실체는 모습을 감추기는 커녕 영화의 초반부터 직접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을 습격합니다. 관객들은 극장 좌석에 채 안기도전에 펼쳐지는 이 무지막지한 거미떼의 습격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초반부의 지루함을 느낄 여유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후반부입니다. 너무 일찍 거미떼의 실체를 알아버린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서서히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거미떼의 습격이 처음엔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러한 습격이 거의 2시간동안 계속 된다면 지겨워지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너무 뻔한 스토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식상한 장르의 답습도 아닙니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영화의 재미를 너무 빨리 끌어올린 겁니다. 그리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서서히 지겨워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지 못한 겁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가 <고질라>의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던데... 이러한 류의 영화에 대해서는 베테랑인 그가 왜 이러한 사실을 간과했는지...


 

 


이렇게 영화의 초반 그 어떤 대규모 블럭버스터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시작했던 이 영화는 중반으로 흐를수록 초반의 오버페이스로 인하여 점차 그 재미를 상실하더니 마지막엔 그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 거미들을 해치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다가 이 영화가 선택한 라스트라는 것이 한꺼번에 거미를 몰살시키는 억지입니다.
온 마을을 뒤덮을 정도로 그 수가 어마어마했던 거미떼를 그렇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치우고 영화가 끝나고나니 정말 허무함만 남더군요.
영화 초반의 그 어마어마한 재미를 끝까지 이어만 나갔다면 분명 좀 더 재미있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영화였습니다.

P.S. <프릭스>를 보고나서 후배와 영화 한편을 더 보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은 이미 내가 컴퓨터로 본 후였고, <아스테릭스 2 미션 클레오파트라>는 프랑스 코미디의 유치함 때문에 선뜻 선택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좋아하는 모니카 벨루치의 섹시한 연기만으로도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여자인 후배에겐 이 영화는 매력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런 영화였나 봅니다.) 특히 전 <슈팅 라이크 베컴>이 보고 싶었지만 후배는 옛 남자친구가 축구심판이었다며 그가 생각나는 영화는 보기 싫다고 그러더군요. 결국 아쉬움만 짙게 남긴채 영화보기를 포기해야했습니다. 왜 하필 그 녀석 직업이 축구 심판이었는지... 정말 미워지더군요. 나쁜 녀석... ^^;


 

      


아랑
오랫만에 저도 영화좀 볼래요.
오늘 이거 볼까?
 2002/09/03   

쭈니
극장에서???
아마 아무 생각없이 즐기기엔 안성맞춤일듯 합니다.
 2002/09/03    

아랑
그날 예매까지 해놨었는데 영화를 못보고 말았어요.
ㅠ_ㅠ
 2002/09/06   

쭈니
저런... 아까워라...
나중에라도 보세요. 스트레스 푸는데엔 제격인 영화인데... ^^
 2002/09/06    

지인 아빠
모처럼 들어왔습니다. 여전하군요. ^^
롤랜드 에머리히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셨네요. 오버 페이스, 이후의 지루한 극 전개, 그리고 허무할 정도로 급박하게 전개되는 마무리... 이건 분명히 구성 면에서 볼 때 좋은 점수 받기 힘들죠. 그렇지만 이걸 보고 실패라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실수라고 하기엔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지 않나요?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인디펜던스 데이>나 <고질라>, <스타게이트> 등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이건 에머리히의 실수가 아니라 늘상 있어 왔던 것을 반복한 데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경우를 볼까요? 외계인들은 의외로 일찍 등장합니다. 그래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부수고, 백악관도 부수고, 좀 크다 하는 건물은 다 부숩니다. <고질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고질라가 등장하는 게 영화 시작하고 얼마나 지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상할 수 있는 시간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스타게이트>는 어떤가요? 이 영화는 다소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담고 있고, 그래서 '발견'에 이르는 과정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된 힘임에도 불구하고 '발견'은 정말로 빨리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오버 페이스'는 에머리히의 실수가 아니라 실력인 거죠.
왜 에머리히는 매번 오버 페이스를 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 그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고질라>의 카피가 '문제는 크기이다' 아니던가요? '크기'에 집착하는 이상 그 '큰 놈'은 빨리 보여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극 전개를 원만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도 이건 필요해 보입니다. 왜냐 하면 그 '큰 놈'을 물리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확보를 해야 하니까요. 끝이 허무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리더라고 이야기하셨죠? 이건 이렇게 '큰 놈'을 이렇게 빨리 해치워 버리다니, 하는 생각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큰 놈'이라면 물리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야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습니다. 아주 큰 놈이라면 지구를 찜쪄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주 짧을 겁니다. 따라서 지구를 지키려면 이 시간보다 빨리 이 놈을 물리쳐야 합니다. 따라서 이런 공식이 나옵니다.

지구 수호 = 큰 놈을 물리치는 데 걸리는 시간 < 큰 놈이 지구를 찜쪄먹는 데 걸리는 시간
지구 찜쪄먹는 데 걸리는 시간 = m / 큰 놈의 크기 (m=상수)
큰 놈을 물리치는 데 걸리는 시간 = m * 큰 놈의 크기

이 공식을 적용해서 지구를 수호할 수 있는 조건을 산출해 볼까요? 편의상 큰 놈을 물리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A, 큰 놈이 지구를 찜쪄먹는 데 걸리는 시간을 B, 큰 놈의 크기를 C라고 해 봅시다. 그러면

지구 수호 = A < B
A = m / C
B = m * C
따라서 지구 수호 = m /C < m * C
m은 상수라고 했으니까 이 부등식을 만족시키는 값 C는 1 이하여야겠군요.

여기다 크기와 재미가 비례한다는 공식을 포함시켜 볼까요? 그러면 재미를 위해서는 크기가 클수록 좋겠군요. 순전히 수학적으로만 본다면 1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1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 이게 딱 좋겠네요. 뭐 1보다 쬐끔 더 커도 상관은 없습니다. 큰 놈의 실수가 있다면 이 정도야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1보다 조금 작거나 1보다 조금 클 때 영화는 재미 있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1보다 많이 작으면 시시하고, 1보다 많이 크면 현실성이 없어 보이고. 이건 굳이 에머리히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겠죠. 크기를 자랑하는 모든 할리우드 영화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네요. 결론은 그렇습니다. 에머리히의 관심은 크기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큰 놈의 크기를 1에 근접하게 맞추는가 하는 것이다. 오버 페이스? 그건 에머리히 전공이다.

이상 조크였습니다.
 2002/09/18   

쭈니
푸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지인아빠님...
여전히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시며 저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시는 군요.
지인아빠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오버페이스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장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수학 공식으로 푸시다니...
머리 뽀개지는 줄 알았습니다.
암튼 재미있었습니다. ^^
 2002/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