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기쿠지로의 여름>- 내겐 그들의 여름이 지루했다.

쭈니-1 2009. 12. 8. 15:08

 



감독 : 기타노 다케시
주연 : 기타노 다케시, 유스케 세기구치
개봉 : 2002년 8월 30일

8월 30일... 잘 되던 제 컴퓨터에 갑자기 파란 화면으로 '하드 에러'라는 메세지가 뜨더니만 그 이후로 컴퓨터가 아무런 응답도 없이 멈춰 버렸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에러일것이라 생각해서 컴퓨터를 껐다가 켜는 것을 반복했지만 도저히 원상태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건지 1시간도 채안되어서 달려온 서비스 기사는 제 컴퓨터를 유심히 보더니만 별다른 조치도 없이 하드 디스켓이 깨졌다며 교체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컴퓨터를 구입한지 이제 겨우 2달이 조금 지난터라 하드 디스켓 교체는 무상이었지만 문제는 제 컴퓨터에 들어있는 자료들을 모두 잃는다는 겁니다.
요며칠동안 밤을 새워가며 영화를 열심히 다운받았었는데... 국내엔 개봉을 하지 않은 희귀한 작품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전부 날라가버린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밖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결국 제 보물 1호인 컴퓨터를 서비스 센터로 보내고 난 후 전 한동안 망연자실 앉아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영화들을 모두 잃어버린 다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살라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넉두리도 해보고 수다도 떨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군요. 컴퓨터도 없이 하루를 보내려니 할 짓도 없고 열받아서 낮잠도 안오고... 결국 아무 죄없는 동생한테 전화해서 술먹자고 졸랐습니다. 밤새 인터넷을하고 늦게 잠자리에 들어버릇해서 컴퓨터가 없는 그 날밤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기때문에 동생과 술이나 진탕먹고 술기운에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하지만 술을 아무리 마셔도 정신은 또렷해지고,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지더니 괜히 짜증만 나고, 우울해지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은 안오고, 잡생각만 들고... 그렇게 뒤척이며 악몽과도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9시... 잠이 덜깬 제게 서비스 기사가 컴퓨터를 들고 왔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설치해주며 아주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영화 파일들은 전부 백업받아 놓았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물론 몇몇 영화들은 지워졌고, 프로그램도 새로 설치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20여편에 달하는 영화 파일들을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전 너무 행복했습니다.
결국 전 컴퓨터를 설치하자마자 어젯밤에 못 본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졸리운 것도 참아가며... ^^
그렇게해서 본 영화가 <뉴 가이>와 <기쿠지로의 여름>입니다. <뉴 가이>는 아직 개봉일이 확정안된 영화이니 나중에 개봉이 확정되면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기쿠지로의 여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본 영화가 부분적으로 개방된지 이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것 만큼의 흥행력은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본 영화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러브레터>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고작이었으니... 상황이 이러하니 한국영화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하리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국내 극장가에서도 일본 영화는 아주 간간히 찾아볼 수 있을뿐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한가지 특이한 점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만은 꾸준히 개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러브레터>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개봉되기까지 국내에서 일본영화 흥행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이와이 슈운지감독의 영화는 <러브레터>이후 <4월 이야기> 한편만이 개봉되었는데 별다른 흥행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영화는 <하나비>, <키즈리턴>, <소나티네> 그리고 이번에 개봉된 <기쿠지로의 여름>까지 벌써 4편이나 개봉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감독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국내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는 그의 영화가 꾸준히 국내에 개봉되는 것을 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영화는 <하나비>만을 보았습니다. 해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영화이고 국내 평론가들도 걸작이라며 한껏 띄워준 이 영화는 그러나 제겐 너무나도 생소하고 따분한 야쿠자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비>이후엔 그의 영화 보는 것을 포기했었죠. <하나비>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런데 그의 영화가 또 개봉되었습니다. 그것이 <기쿠지로의 여름>입니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중에서도 이례적인 영화라며 입을 모았고 네티즌들은 '최고의 영화'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꽤 기대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최소한 <하나비>처럼 지루하진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하지만 도대체 이 영화가 왜그리 걸작이고 최고의 영화인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평범한 스토리 라인에 기타노 다케시의 그 무표정 개그만이 난무한 약간은 지루했던 영화인데... 역시 난 기타노 다케시와는 맞지 않나 봅니다. 에궁~


 

 

  
<기쿠지로의 여름>은 9살 마사오(유스케 세기구치)와 52살의 기쿠지로(기타노 다케시)가 마사오의 엄마를 찾는 여정속에서 일어나는 헤프닝과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가 언제나 그러하듯이 마사오는 어른보다도 더 어른같은 아이이고, 기쿠지로는 아이보다도 더 아이같은 어른입니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그러한 점을 잘 살려내며 기쿠지로의 한심한 행동들로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 나갑니다.
전직 야쿠자이며, 지금은 마누라에게 용돈이나 타쓰는 한심한 백수 기쿠지로는 얼떨결에 마사오의 엄마를 찾아주는 여정에 끼어들게 됩니다. 솔직히 이 정도만 되어도 그 다음의 줄거리는 휜히 눈에 보입니다. 기쿠지로가 마사오의 여비를 탕진할 것이며, 그래서 두 사람은 고생고생하며 엄마를 찾아나선다... 뭐 대충 이런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스토리를 감싸고 있는 것은 일본에선 영화감독보다도 코미디언으로 더 잘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의 그 원맨쇼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타노 다케시의 원맨쇼도 제겐 이 영화의 지루함을 없애주지 못했습니다. 뻔뻔스럽고, 한심하며, 괜히 큰소리만 뻥뻥치는 기쿠지로의 모습은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기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른보다 더 어른같아야할 소년 마사오는 마치 인형처럼 멍해 보이기만 합니다.
기쿠지로는 너무 오버하고 마사오는 너무 멍해보이고... 물론 영화의 컨셉이 처음부터 그런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왠지 서로 맞지않은 두 캐릭터의 극과 극을 달리는 언밸런스는 제게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슷비슷한 해프닝들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지루함만 안겨줍니다.


 

 


이렇게 지루한 헤프닝만을 나열하며 영화를 진행하던 <기쿠지로의 여름>은 결국 마사오와 기쿠지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새로운 상황을 제시합니다.
이 두 캐릭터의 공통점은 바로 어머니의 부재... 마사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 기쿠지로는 엉뚱하고 한심한 아저씨에서 한없이 착하고 재미있는 아저씨로 돌변합니다.
이때부터 영화는 몇몇 철없는 어른들을 더 동원해서 본격적으로 관객 웃기기에 나섭니다. 험상굳게 보이던 폭주족 젊은이 두명과 히피족 남자 한명... 그리고 기쿠지로. 이렇게 아이보다도 더 아이같은 어른 4명은 단지 기쿠지로의 명에 따라 '마사오와 놀아주기'라는 미션을 위해 유치한 놀이에 몰두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놀이와도 비슷한 '무궁화 꽃이 피엇습니다'와 '타잔 놀이'등 몇몇 옛 추억이 생각나게끔 하는 장면들로 후반부를 채운 이 영화는 관객을 웃기려는 의도를 분명히 합니다.
영화의 초반엔 기쿠지로의 엉뚱한 행동으로 관객을 웃기려 하더니 후반부엔 험상굳게 생긴 어른들의 이 철없는 놀이를 통해 관객을 웃기려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반복되는 장면속에서 웃기는 커녕 지루함만을 느꼈습니다. 기쿠지로의 '마사오와 놀아주기'미션에 아무 조건없이 따라주는 다른 청년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치 유치한 코미디쇼와 같은 놀이에 관객들이 즐거워할것이라 생각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기타노 다케시의 그 무표정한 표정뿐... <배틀로얄>에 이어 이제 조금 기타노 다케시라는 배우의 매력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의 매력을 찾아낼려면 아무래도 제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최고로 꼽는 일본영화였는데..
쭈니님과 저는 좀 다른가 봅니다 ^^;;

그들의 쉬어가는 호흡이 너무나 멋들어져서
계속 머금던 웃음이 행복했었는데요 ^^
 2006/05/08   

쭈니
취향이 같을 순 없겠죠. ^^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 특히 다케시 영화와는 별로 취향이 맞지 않답니다. ^^
 200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