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최진원
주연 : 황신혜, 윤다훈, 김민종, 황인영, 이경영
개봉 : 2002년 8월 23일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영화 이야기'는 술술 잘 써지는데 '나에 대한 이야기'는 쓸 말도 없고, 쓰다보면 한심해져서 우울해지기만 합니다.
이번에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소개서를 거의 3일에 걸쳐 완성한 저는 지끈지끈거리는 머리와 스트레스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친구와 함께 술도 마시고, 당구도 쳐보았지만 좀처럼 우울증이 해결되지 않던 토요일. 결국 마지막 처방전인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고 (그 동안은 영화를 보고싶어도 볼 영화가 없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와 신사역의 브로드웨이 시네마로 향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는 조폭 코미디인 <패밀리>... 뭐 그리 기대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실컷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같았습니다. 그런 영화가 스트레스푸는데엔 좋은 약이 되는 법이거든요. 그러나...
극장에 처음 들어설때부터 기분이 팍~ 상하더군요. 스크린은 거의 비디오방 수준이었고, 저와 친구의 좌석은 맨 앞의 맨 구석자리, 그것도 팔걸이가 아예없는 커플석.
요즘 극장들, 멀티플렉스 열풍이 불어 큰 스크린을 잘게 자르는 것까진 좋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비디오방 수준은 넘어야지 극장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겨우 50여개 좌석과 거의 대형 TV 수준의 스크린을 가지고 극장이라며 비싼 극장료받는거 그거 너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자리는 그게 뭡니까? 매진이 된 것도 아닌데 최소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끔 자리 배정을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구석진 자리는 맨 마지막 매진사태로 인하여 어쩔수없이 자리를 채워야 할때 그것도 관람객한테 구석자리인데 괜찮냐고 물어본 후 배정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가 나더군요.
결국 눈치를 봐가며 뒷자리로 옮겼습니다. 자리 주인이 올까봐 조마조마해하며... 도대체 이게 뮙니까? 똑같은 돈내고 왜 남의 눈치를 보며 이렇게 앉아있어야하는지...
이렇게 영화를 보기전부터 맘이 상해버려서인지 영화 또한 올해 본 한국 영화중에서도 최악의 수준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는 커녕 스트레스를 더 떠안고 나왔습니다.
작년 조폭 코미디로 화려한 한해를 보낸 우리 영화계는 올해도 조폭 코미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올 상반기에 개봉되었던 <네발가락>은 전통 조폭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섰으며, <뚫어야 산다>는 약간 우회적인 방법으로 조폭을 등장시킨 코미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좋은 흥행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조폭 코미디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시나리오의 유치함도 그 한 몫을 해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폭 코미디의 열풍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올 여름 개봉하여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던 <라이터를 켜라>는 아무리 식상한 조폭 코미디라도 시나리오만 좋다면 관객들은 다시금 극장을 찾아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세편의 조폭 코미디가 지금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패밀리>와 <가문의 영광>, 그리고 <보스 상륙 작전>입니다.
그 중 먼저 개봉한 <패밀리>는 두갈래의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네발가락>이나 <뚫어야 산다>처럼 조폭 코미디의 식상함을 벗지못하고 흥행에 실패할 것인가? 아니면 <라이터를 켜라>처럼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리며 흥행에 성공할 것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패밀리>가 들어선 길은 전자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패밀리>는 흥행 성공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걸까요?
그것에 대한 대답은 우선 식상한 소재를 전혀 새롭게 풀어가지 못한 시나리오의 문제때문일겁니다. 사실 <라이터를 켜라>의 경우 식상한 조폭 코미디이긴 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형식은 새로움이었습니다. 하지만 <패밀리>에서는 새로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조폭과 룸살롱 마담의 대결이라는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사실 조폭과 스님의 대결이라는 <달마야 놀자>에서 스님을 룸살롱 나가요걸로 바꾼 것일뿐입니다. 서로 티격태격하며 갈등을 겪다가 공공의 적을 맞이하여 서로 뭉친다는 전체적인 줄거리마저 판박이처럼 같습니다.
물론 <패밀리>는 <달마야 놀자>에 비해 잔혹해졌으며 야해졌습니다. 하지만 <달마야 놀자>에 비해 웃음의 강도는 크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시나리오 참신성의 부재에 의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이전의 조폭 코미디 영화와의 차별화에 실패한 <패밀리>는 그것을 극복하기위해 무리한 방법으로 관객 웃기기를 시도합니다.
느끼한 조폭 차성준(윤다훈)과 터프한 나가요걸 성초희(황인영)의 말도안돼는 LOBE(러브)도 그러하고 말끔한 조폭 차성대(김민종)가 룸살로의 깡마담 오해숙(황신혜)에게 매번 당하는 망신살도 그러합니다.
최소한 이전의 조폭 코미디 영화들은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관객에게 상황을 이해시키며 웃음을 끌어냅니다. 하지만 <패밀리>는 아예 그것을 포기합니다. 차성준과 성초희, 차성대와 오해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그들 커플에게 웃기는 상황 하나를 설정한 후 그것을 영화 끝날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만합니다.
하지만 최진원 감독이 한가지 몰랐던 사실은 영화속 웃음의 상황은 그 호흡이 상당히 짧다는 겁니다.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계속해서 새로운 코믹한 상황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패밀리>처럼 같은 상황의 반복은 처음엔 웃음을 유발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될 수록 웃음의 강도는 낮아지며 결국엔 짜증만을 불러일으킵니다.
분명 차성준의 그 느끼함은 처음엔 웃겼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그러한 연기가 반복될 수록 나중엔 웃기긴 커녕 짜증만 나더군요. 그리고 차성대가 오해숙때문에 매번 망신살이 뻗치는 상황 역시 처음엔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패밀리>는 그러한 상황을 거의 영화의 마지막까지 반복만을 계속합니다.
이렇듯 영화 전체의 시나리오에 참신성에 실패한 <패밀리>는 영화를 진행시키면서도 새로운 상황 제시하지 못하고 영화 초반 상황의 반복만을 해대는 안일한 시나리오 탓에 최소한의 재미마저도 잃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상황 반복에 의해서 이 영화는 주연 배우들의 이미지에 의한 재미마저도 점차 퇴색시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웃음의 제공자는 분명 윤다훈입니다. TV에서 얻은 느끼한 바람둥이 이미지를 <패밀리>에 잘 이용하며 영화 초반 웃음을 주도하던 윤다훈은 상황의 반복에 의한 코믹 연기의 반복으로 초반의 그 코믹함을 중반부터는 상실합니다. 결국 느끼한 코믹 연기를 반복하는 윤다훈의 연기는 후반부에 가서는 영화의 짜증을 오히려 주도하기만 합니다.
휜칠한 키와 시원스런 외모의 주인공 황인영의 섹시 연기도 영화 초반만 잠시 반짝일 뿐입니다. 영화 데뷰작인 <댄스댄스>와 각종 CF에서 얻은 그녀의 이지적인 이미지를 뒤엎는 성초희라는 캐릭터는 분명 영화 초반 이전 조폭 코미디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영화의 섹시한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푼수끼가 철철 넘치는 연기는 윤다훈의 느끼한 코믹 연기와 함께 영화의 재미에도 한 몫을 합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상황의 반복으로 인하여 영화 중반에 이르면 그 대책없는 푼수끼에 점차 짜증이 나기 시작하며 영화 후반 성준과의 섹스씬에 이르면 아예 외면하고 싶을 충동만을 불러 일으킵니다.
말끔한 핸섬 조폭 성대로 분한 김민종의 연기도 그러하며, 깡으로 똘똘 뭉친 해숙으로 분한 황신혜의 새로운 연기 변신 역시 그러합니다.
결국 <패밀리>는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새로운 이미지 변신을 하거나(황인영, 황신혜) 기존의 이미지를 고수하며(윤다훈, 김민종) 영화적 재미를 이끌어낸다고 할지라도 시나리오가 뒷받침이 안되면 결국은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다는 사실만을 깨우치게 한 영화입니다.
결국 조폭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관객 웃기기에 실패한 이 영화는 후반에 가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무리한 스토리 진행을 선보이며 또다시 관객을 실망시킵니다.
만약 성준의 조직에서 성준 형제의 처리를 원했다면 겨우 섬에 격리시키는 단순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무인도가 얼마나 많으며, 그 무인도들이 육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몰라도 무인도에서의 격리는 분명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성준의 조직은 겨우 성준 형제를 무인도에 격리시켜놓고 말끔하게 처리했다며 좋아합니다.
최무영 역시 아직 쓸모가 많은 오해숙을 배신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성준 형제를 섬에 격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면 성준 형제에게 오해숙이 섬에 있다는 거짓 정보만으로 그들을 충분히 격리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초희가 결국 성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상황도 전혀 말이 안되고 성대와 해숙이 결국 서로 화해하는 상황도 말이 안됩니다.
무인도의 해숙 별장의 폭발로 해안 경비대가 출동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폭발한지 겨우 몇분만에 그런 대규모의 해안 경비대가 무인도를 포위하는 것 역시 말도 안됩니다.
해안 경비대에 의해 섬을 탈출한 성준 형제가 자신을 배신한 조직을 찾아갔을때 그 조직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몰리다가 살아남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사람 죽이는것에 대해 눈하나 깜박하지 않는 그들이 눈의 가시같은 성준 형제가 죽여달라고 제 발로 찾아왔는데 그런 미숙한 처리로 후환을 만든다는 것은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해숙의 말한마디로 인천의 조폭이 일망타진되는 것 역시 말이 안됩니다. 만약 그렇게 쉽게 조폭이 일망타진된다면 우리나라엔 조폭이 남아있지도 않을 겁니다.
이렇듯 전혀 웃기지도 않던 이 이상한 조폭 코미디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전혀 말이 안되는 상황만을 반복하며 영화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이렇게 <패밀리>는 조폭 코미디로써의 재미를 살리지 못하고 완벽한 실패를 했습니다. <패밀리>의 실패는 <라이터를 켜라>의 성공으로 조폭 코미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제게도 앞으로 개봉 할 조폭 코미디를 선택하는데에 상당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개봉 할 <가문의 영광>과 <보스 상륙 작전> 역시 기본적인 줄거리만 놓고본다면 작년에 개봉된 조폭 코미디의 재미를 그대로 차입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순진한 검사가 조폭 가족의 사위로 들어가며 겪는 해프닝을 그린 <가문의 영광>은 순진한 남자가 조폭 마누라을 얻으며 겪는 해프닝을 그린 <조폭 마누라>와 비슷하며, 검찰이 작전 수행을 위해 룸쌀롱에 잠입한다는 <보스 상륙 작전>은 조폭이 보스에게 인정받기위해 학교에 잠입(?)한다는 <두사부일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그러한 참신성의 부재를 어떠한 방법으로 메꿔갈지...
자꾸 우리 코미디 영화들이 뒤로 후퇴만 하는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