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우 (오우삼)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아담 비치, 크리스찬 슬레이터
개봉 : 2002년 8월 15일
올해는 헐리우드 전쟁 영화가 그 어느때 보다도 많이 개봉이 되었습니다. <에너미 라인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블랙 호크 다운>, <위 워 솔저스>, <하트의 전쟁>까지... 이 영화들에서 그려진 전쟁은 2차 세계 대전(하트의 전쟁)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위워 솔저스), 보스니아 내전(에너미 라인스), 소말리아전(블랙 호크 다운)까지 다양합니다.
올 한해 전쟁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헐리우드의 신성인 오웬 윌슨(에너미 라인스), 조쉬 하트너(블랙 호크 다운), 이완 맥그리거(블랙 호크 다운), 콜린 파렐(하트의 전쟁)등은 물론 블럭버스터급 배우들인 브루스 윌리스(하트의 전쟁), 멜 깁슨(위 워 솔저스), 진 해크만(에너미 라인스)까지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페이스 오프>와 <미션 임파서블>로 헐리우드에 완벽하게 안착한 존 우 감독과 블럭버스터급 배우인 니콜라스 케이지가 <윈드토커>로 가세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윈드토커>는 전쟁 영화라면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절 만족시켜줄 수 있을런지... (참고로 올해 개봉된 전쟁 영화 중 절 만족시켜준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에너미 라인스>가 전쟁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액션 영화같아서 약간 재미있었을뿐...)
<윈드토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입니다. 아마 전쟁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2차 세계대전이라고 하면 세기의 악당 히틀러와 독일군을 떠올리시겠지만, 이 영화는 <진주만> 이후 2차 세계대전의 새로운 악당으로 떠오르고 있는 일본군이 미국의 영웅들이 처부셔야 하는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악당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미군이 죽여야만 하는 존재일 뿐이며 전쟁 영화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그러나 <윈드토커>는 그러한 전쟁 영화의 속성이외에도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단지 전쟁의 참혹함이라던가 영웅주의보다는 명령에 의해 동료를 죽여야하는 조 앤더스(니콜라스 케이지)의 인간적인 고뇌에 촛점을 맞추려 시도를 한겁니다.
명령을 지키려다가 부대원들을 모두 죽음의 늪으로 몰고갔던 앤더스 하사에게 암호병인 나바호 인디언 벤 야흐지(아담 비치)를 지키라는 명령이 하달됩니다. 하지만 야흐지가 적의 손에 생포되려한다면 암호를 지키기위해서 사살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겁니다.
명령과 동료애 사이에서 갈등하는 앤더스. <윈드토커>가 포착한 전쟁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순입니다. 국민을 위해서라며 전쟁에 참여했지만 전쟁에서 이기기위해라면 국민의 한사람인 군인들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상황. <윈드토커>는 바로 그러한 전쟁의 모순을 그려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존 우 감독의 의도는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제 귀를 괴롭히는 과도한 전투씬과 니콜라스 케이지의 오버하는 모습들은 결국 이 영화를 여느 전쟁 영화와 같은 영웅주의와 애국주의로 도배를 한 평범한 전쟁 영화로 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영웅주의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성조기가 펄럭이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더니 결국엔 영웅주의와 애국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그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분명 전쟁 영화가 영웅주의와 애국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어차피 국가와 국가간의 이념 싸움이다보니 '우리나라가 최고야.'라는 식의 애국주의는 어쩔수 없는 것이며, 적을 멋지게 물리치는 영웅을 바라는 관객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서 멋진 군인이 영웅으로 탄생하는 것 역시 아주 당연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영웅주의와 애국주의는 상대방인 적군을 무조건적인 나쁜놈들로 몰아버린 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최고이니 당연히 적군의 나라는 아주 나쁜 나라에 불과한 것이며, 영화 속의 영웅이 죽이는 적군은 그저 죽어 마땅한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하면 그러한 비참한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제가 생각하기엔 전쟁 영화에서 당연히 문제제기해야는 하는 것들은 소외된채 '쟤네들이 잘못했으니 우린 정의를 지키기위해서 무조건 이 전쟁을 이겨야만 해.'라는 단순 논리들이 전쟁 영화를 지배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야만 했던 이유를 이해못하고 무조건 책임을 적군에게 떠넘기는 이러한 전쟁 영화의 논리는 이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애야하는 우리 인간들의 숙명과도 같은 숙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때문에 전 영웅주의와 애국주의로 치장된 전쟁 영화를 싫어하는 겁니다.
그리고 <윈드토커>역시 그러한 전쟁 영화에 불과합니다.
분명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동료를 죽여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 앤더스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앤더스의 인간적인 고뇌보다는 전쟁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로 영화의 대부분을 채워버립니다.
이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투씬이 그러합니다. 분명 이러한 전투씬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앤더스와 야흐지가 서로 이해하고 도와가며 진정한 동료애를 느끼게되는 장면들로써 마지막 야흐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앤더스의 갈등을 표현하기위해서 무척 중요한 장면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 영화엔 처참한 전투씬이 너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의 전투씬은 앤더스와 야흐지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상황을 위한 장면이라기 보다는 스펙타클을 원하는 관객들을 위해서 펼쳐지는 한바탕 액션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이 영화의 전투씬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점점 잔인해져만 가는 전쟁 영화의 전투씬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병사들은 사지가 절단되고 사방에서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지며, 적군인 일본군은 죽여도 죽여도 자꾸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습니다.
하나의 전투씬이 끝나고 조금 조용해졌다 싶으면 다시 전투씬이 시작되고, 또 조용해졌다 싶으면 다시 시작하고... 이 영화는 이러한 식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장면들을 너무 많이 본 저는 '전쟁이라는 것이 정말 참혹하구나.'라는 생각보다는 '세트를 하와이에 지었다는데 저 수많은 폭발씬에 의해서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겠구나.'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아무리 스펙타클이 좋다고는 하지만 너무 과잉적으로 표현되면 결국엔 무감각해지는 겁니다. <윈드토커>의 전투씬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투씬보다도 더욱 절 불편하게 만든 것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오버입니다. 관객들은 전쟁 영화에서 영웅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존 우 감독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은 앤더스를 이 영화의 영웅으로 관객앞에 선보입니다. 요즘 영웅들의 새로운 경향인 아픈 과거를 지닌 인간적인 영웅으로...
이 영화의 전투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앤더스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상으로 인하여 다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부정행위(?)를 하여 다시 전쟁터에 투입된 앤더스는 다른 병사들은 참호속에 엎드려 있어도 총에 맞아 죽는 상황에서도 혼자 일어서 일본군들을 수십명 죽이면서도 절대 적의 총탄에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일본군의 아지트에 침입해서도 그 수많은 일본군을 단번에 죽이고 유유히 작전을 성공하는 대범함마저 보입니다. 물론 야흐지의 보호 임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래도 영웅이 가져야할 미덕인 일당백의 능력을 관객앞에 훌륭하게 선보인 겁니다.
이러한 앤더스의 오버 액션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그 우수에 찬 표정과 함께 새로운 영웅으로 등극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게다가 존 우 감독은 이러한 영웅에게 꼭 있어야만 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앤더스에게 선사합니다. 도대체 왜 어쩌다가 미모의 간호병이 앤더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암튼 그녀는 앤더스에게 간절한 사랑이 담긴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며 앤더스의 영웅화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앤더스가 전쟁 영화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는데에 전력을 기울이다보니 앤더스의 모순적인 임무에 대한 고뇌는 별로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앤더스의 인간적인 고뇌보다는 애국주의와 앤더스를 영웅으로 만들기에 치중한 이 영화는 결국엔 앤더스에게 영웅에 걸맞는 비장한 최후를 안겨주며 막을 내립니다. 물론 휘날리는 성조기를 배경에 깔고...
전 전쟁 영화를 싫어하지만 존 우 감독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존 우 감독도 결국 전쟁 영화라는 장르앞에서는 어쩔 수 없군요. 아마도 <윈드토커>는 존 우 감독의 영화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영화가 될 듯합니다. 앞으로 그가 다시는 전쟁 영화를 만들지만 않는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