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창동
주연 : 설경구, 문소리
개봉 : 2002년 8월 15일
지난 6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놀게 되었을때 전 부모님께 몇달간만 놀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노는 동안 운전면허도 따고 운동도 하며 잠시 생활의 여유를 가지겠다고...
그리고 이제 어느덧 집에서 백수 생활을 한지 2달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헬스클럽에 다니며 난생처음 운동이라는 것도 해봤고, 괜한 두려움에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했던 운전면허도 취득하였습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여유가 될지도 모르는 그 소중한 시간동안 전 나름대로 보람차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백수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사회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게 취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직종과 어떤 직장에 취직을 하는가'입니다. 이제 제 나이도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언제까지 하기싫은 일을 억지로하며 앞날이 불안한 직장에서 내 소중한 인생을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아직 제게 직종과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걸까요? 고등학교때부터 배워왔던 회계일을 벗어버리고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기회가 아직 제게 있는 걸까요?
전 지금 도전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맥스무비'라는 영화 예매 사이트에... 어쩌면 터무니없는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나이 제한도 걸렸고 경력이라고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회계 관련 업무를 몇년간 한 것밖에 없는 제가...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도전을 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원자격 미달로 제 입사 서류는 읽히지도 않은채 그대로 삭제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도전을 한 후의 결과라면 그 결과를 받아들일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
'맥스무비'의 입사서류를 위해 본 영화가 <오아시스>입니다. '맥스무비'의 입사서류 중에는 '최신 영화평'이 '이력서', '자기소개서'와 함께 있거든요.
물론 이곳에 적힌 그대로 '맥스무비'에 제출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영화 이야기' 사상 제게 가장 중요한 '영화 이야기'가 될것 같습니다. ^^
한 남자가 있습니다. 추운듯 두꺼운 옷 사이로 몸을 감추고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않는 반팔티를 입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그의 이름은 홍종두(설경구)입니다. 이제 막 2년 6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그는 추운 겨울 날씨에서의 반팔티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이 사회의 한가운데에 서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실 전 이창동 감독을 싫어합니다. 아니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5년전 <초록 물고기>를 보았을때 하늘로 높게 뻗은 신도시의 아파트 틈새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던 막동이(한석규)와 그의 죽음 이후에도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듯 지루한 일상으로 묵묵히 돌아가는 이 영화에서 저는 전혀 희망이 보이지않는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2년전 <박하사탕>에서는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나 과거로 돌아갈래.'를 외치던 김영호(설경구)의 그 절규만으로도 <초록 물고기>에서 느꼈던 그 갑갑함을 느끼게 했었죠. 그래서 결국 저는 <박하사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세번째 영화인 <오아시스>가 이렇게 제 앞에 섰습니다. 이 영화가 장애인과 범죄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그러길래 전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제 이창동 감독이 희망을 말하려 하는 구나.'
하지만 영화의 초반 이러한 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죠. 어쩌면 예전의 영화보다 더 절망적인 <오아시스>의 초반 장면들은 관람석에 앉아 편안하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감상하려고 했던 저에게 심한 배신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초반, 제가 배신감을 느낄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그려진 캐릭터 때문이었습니다.
홍종두라는 캐릭터는 사회 부적응자이고 껄렁껄렁하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일것이라고 예상했던 저는 그를 만나는 순간 너무나도 바보같고 한심해서 나도 모르게 '병신'이라는 욕이 튀어 나올 정도였습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그를 버린 가족들 앞에서 하염없이 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은 제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었다면 그를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홍종두라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할때쯤 제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한공주의 모습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야기인데 한공주의 장애 정도가 봐줄만 할것이라고 예상했던 저는 보기 흉할 정도로 온 몸이 비틀어진 한공주의 모습을 보고 한동안 망연자실 했었습니다. 특히 홍종두가 한공주를 강간하는 장면은 보기에도 너무 역겨워 당장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너무나도 한심해서 전혀 이해할수 없을 것 같은 홍종두와 너무나도 흉칙해서 바라보는 것만도 괴로운 한공주의 사랑. 전 도저히 그들의 사랑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영화의 중반이 되기전까지는...
결국 '이창동 감독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군.'이라는 때이른 포기를 할때쯤 마술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했던 종두가 공주를 강간하는 장면이 그 다음 순간 아름다운 사랑으로 변해버린 겁니다. 이러한 마술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였던 종두와 공주의 주변인물들의 가면이 벗겨졌기 때문입니다.
종두의 큰 형인 홍종일(안내상)은 자신이 저지른 뺑소니 사고를 종두에게 뒤집어 씌워 놓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으며 오히려 종두에게 '자신의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훈계를 하려 합니다. 이러한 홍종일의 이중적인 모습은 차라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그 감정에 따라 행동을 하는 종두의 단순함보다도 더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공주의 주변인물들은 더욱 심합니다. 공주의 오빠인 한상식(손병호)은 장애인인 공주 덕분에 넓고 깨끗한 장애인 아파트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낡은 아파트에 버려두고 이사를 가버립니다. 공주를 돌봐주기로 한 이웃집 부부는 공주의 집에 맘대로 들어와 그녀가 보건말건 섹스를 즐깁니다. 과연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공주의 외형적인 추악함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분명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것 같은 소시민입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그들의 가면을 벗기면서 관객에게 묻습니다.
'과연 당신은 종두에게 한심하다며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과연 당신은 공주의 외형이 추악하다며 외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이렇게 종두와 공주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버린 이창동 감독은 관객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현실과 환상을 섞어가며 장애인의 사랑이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제게 이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웃집 부부의 뻔뻔스런 행위와 오빠인 상식의 위선적인 사랑뒤에 다시 혼자 남겨진 공주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예쁘다고 말해주고 자신의 비틀어진 몸을 사랑스럽게(?) 만져 준 유일한 사람인 종두에게 전화를 겁니다. 공주에겐 그들의 사랑이라는 위선보다는 종두의 진심어린 욕정이 더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종두와 공주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종두와 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영화의 초반 느꼈던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졌다는 겁니다.
분명 이창동 감독은 종두라는 캐릭터를 좀더 관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게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며, 공주의 장애 정도도 관객의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정도로 좀 더 정상인과 가깝게 그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영화의 초반부터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맘 편하게 볼 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그런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종두는 철저하게 사회 부적응자로 그리고 공주의 장애 정도는 예상보다 더욱 심하게 그림으로써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그러한 관객들의 선입견을 서서히 없애버리며 진정으로 종두와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영화를 진행시켜 나간 겁니다.
분명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보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는 것같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자신의 선입견에 부끄러워하며 그들의 사랑을 진심어린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둘의 사랑은 일반인의 사랑처럼 아주 평범합니다. 밤늦게 전화를 붙잡고 밀어를 즐기고 '공주마마', '장군'같은 닭살스러운 애칭도 서로 부릅니다. 공주는 전화를 받고 있는 종두에게 장난을 걸고 화를 내는 그에게 '어떻게 내게 화를 낼수 있냐'며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장애인의 사랑은 무언가 다를거라는 관객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노래방에서 공주의 상상은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분명 일반인의 사랑처럼 평범하지만 공주의 불편한 몸은 그러한 사랑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겁니다.
영화가 후반으로 흐르고 종두와 공주의 그 순진한 사랑이 관객들을 행복하게 할때쯤 드디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창동 감독은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용납할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공주의 오빠인 상식으로부터 강간범으로 기소된 종두... 공주는 그들의 섹스가 강간이 아니고 사랑이었다고 강변하고 싶지만 불편한 그녀의 몸은 그러한 강변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사회의 차가움을 알아버린 종두 역시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상식은 공주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애초부터 믿지 않으며, 담당 경찰관은 종두에게 '솔직히 성욕이 생기던?'이라며 그를 변태로 몰고 갑니다. 그들에겐 다른 연인들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랑 행위마저도 용납되지 않았던 겁니다.
'공주를 위해서'라며 종두 가족들에게 합의금을 요구하는 상식과 '종두를 더이상 용서할수 없다'며 합의금을 주지않겠다고 버티는 종일... 과연 그들이 종두와 공주의 사랑에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더군요.
결국 장애인의 사랑에 대한 관객의 선입견을 깨뜨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을 묘사함으로써 잠시나마 관객에게 행복감을 주었던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후반엔 결국 절망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중반까지의 행복감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이 영화 후반에 느껴지는 절망의 강도는 <초록 물고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너무나도 부조리한 사회의 선입견에 항의를 할 수 없는 공주와 항의하기를 포기한 종두의 모습은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지만 이창동감독은 그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결국 우리들도 이 영화속의 일반인처럼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에 휩싸여 있는 그런 속물들이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줬던 희망때문입니다.
구치소를 탈출하여 공주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창밖에 비춰진 나무가지들을 쳐내는 장면은 아마도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보여지는 겁니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오아시스 같은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마치 아련한 노을빛처럼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해가 지는 그 짧은 순간 아련한 아름다움만 남기고 사라지는 노을빛... 하지만 내일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에 그 노을빛은 아름다운 겁니다. 종두를 기다리는 공주의 그 행복한 기다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