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옥사이드 팽, 대니 팽
주연 : 안젤리카 리, 로렌스 초우, 에드몬드 첸
개봉 : 2002년 8월 15일
제가 귀신나오는 영화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은 이제 왠만한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만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지난번엔 액션 영화보자는 친구를 겨우 꼬셔서 <폰>을 보았고, 이젠 올 여름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라는 <디 아이>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집에 동영상 파일로 저장해놓고 함께 볼 사람이 없어서 안절부절 하고 있던 저는 여동생한테 살짝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내 컴에 굉장히 무섭다는 공포 영화가 있는데..."
저와 마찬가지로 공포 영화를 좋아는 하지만 혼자 보지는 못하는 제 동생은 제가 던진 미끼를 덥썩 물더군요.
"진짜??? 얼마나 무섭대???"
"글쎄! 이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에 의하면 지금까지 나온 공포 영화중에서 가장 무섭대.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지도 못하고 거울도 못본대. 귀신나올까봐."
"그래??? 오빠, 우리 오늘 그 영화 볼래??? 응???"
이렇게해서 겁쟁이 남매인 우리 둘은 제 방에 올라가 불을 끄고 아무 죄없는 저희 집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함께 <디 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
<디 아이>는 각막이식수술로 19년만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된 문(안젤리카 리)이라는 한 여자가 각막이식수술 이후 귀신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겪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 아직 완전히 시력이 회복되지 않은 문의 눈을 빌려서 희미한 그 무엇만으로 관객의 공포를 잡아 냅니다. 그러면서 영화가 진행되며 점차 희미한 그 무엇이 뚜렷해지면서 공포의 강도를 넓혀 갑니다.
죽은 이를 잡아가는 저승 사자와 자살한 후 매일 자살했던 그 상황을 반복해야 하는 죽은 자들,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떠도는 귀신들 등 이 영화는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귀신들의 향연만으로도 충분히 무섭습니다.
특히 서양의 공포 영화가 잡아낼수 없었던 동양적인 공포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때문에 그 공포의 강도는 더욱 큽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는 그저 무서울 뿐 도무지 신선함이 없다는 겁니다. 공포 영화가 무서우면 됐지 신선함까지 갖출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신선함이 없는 공포는 아주 쉽게 잊혀질 뿐입니다. 단지 영화를 보는 90여분간의 짧막한 공포만을 안겨 줄뿐 영화가 끝난 그 이후에는 아주 쉽사리 잊혀지는 거죠.
분명 제 경우 <디 아이>를 무섭게 보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난 후인 지금 <디 아이>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겨우 며칠도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디 아이>의 신선함의 부재는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식스센스>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여주인공 문은 <식스센스>의 콜(할리 조엘 오스먼드)을 살짝 변형시킨 캐릭터라는데에는 아마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겁니다. 그 외에도 문을 도와주는 정신과 전문의 로(로렌스 초우)는 <식스센스>의 아동심리학자 말콤(브루스 윌리스)과 비슷합니다.
그 외에 대부분의 구성이 그야말로 <식스센스>의 리메이크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거의 비슷합니다. 단지 하나 틀린 것이 있다면 <디 아이>에서는 <식스센스>의 마지막 반전 대신 꽤 규모가 큰 대형 폭발씬이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것 뿐입니다.
이렇듯 <식스센스>를 동양적인 분위기로 탈바꿈 시킨 이 영화는 분명 <식스센스>보다 무섭기는 합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식스센스>는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스릴러적인 요소가 다분했지만 <디 아이>는 아주 작정하고 만든 공포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며 그 한장면 한장면이 마치 몇시간전에 영화를 본듯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영화는 <디 아이>가 아니고 <식스센스>입니다.
<디 아이>는 이렇게 <식스센스>를 기본적으로 차용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또 한편의 공포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바로 <링>이라는 영화입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문의 눈의 원래 주인이며,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하여 마을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자살을 한 비운의 소녀 링(그러고보니 이름이 <링>의 제목과 같네요. ^^)은 영화 <링>에서 초능력으로 인하여 비운의 삶을 마감하고 자신의 염사능력으로 보고나면 일주일안에 사망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비디오테잎을 남긴 사다코를 연상 시킵니다.
이렇듯 여러 공포 영화를 짜집기한 <디 아이>에게 신선함을 바란다는 것은 역시 무리이겠죠.
이렇게 신선함의 부재를 안고 있는 <디 아이>는 영화의 구성면에서도 약간의 무리수를 둡니다. 그것은 바로 문을 사랑하여 그녀의 말을 믿고 그녀를 마지막까지 도와주는 정신과 의사 로라는 캐릭터입니다.
<디 아이>에서 로는 문을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의사적 본분을 버리고 문을 도와주게 됩니다. 하지만 도대체 이 영화에서 로가 문에게 사랑을 느낄 시간이나 있었는지...
결국 이 영화는 단지 문을 도와주는 든든한 남자 주인공이 필요했기에 문과 로의 사랑이라는 무리수를 둔것 같습니다.
분명 주인공을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는 제가 <디 아이>와 비교했던 <식스센스>와 <링>에서도 나옵니다.
<식스센스>에서는 아동 심리학자 말콤이 콜과 상담을 하며 그를 도와주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말콤이 콜을 도와주어야 했는지 그 이유에 의문을 달 수는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저와 같을 겁니다. 게다가 모두들 아시겠지만 말콤은 마지막 반전을 관객에게 안겨주는 영화에 꼭 필요한 캐릭터였습니다.
<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조카가 죽었으며 아들마저도 죽음의 비디오를 보게 된 방송국 기자 레이코는 전남편인 류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류지는 의사이지만 미래를 예언하는 등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레이코의 도움에 기꺼이 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당함으로써 <링>에서의 가장 섬뜩했던 장면의 주인공이 되죠.
하지만 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 영화에서 아무런 역활을 하지 못합니다. 단지 문을 도와주는 착한 남자이외에... 만약 로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그래서 문이 혼자 자신의 눈의 비밀을 벗기기위해 용감하게 나섰다면... 전 분명 이 영화가 더 재미있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문과 로의 사랑이라는 억지는 없을테니... ^^;
어쩌면 제가 <디 아이>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최고의 공포 영화라고 극찬을 했었기에...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포 영화는 단지 무서운 장면이 나온다고해서 정말 무서운 공포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서움이라는 것이 다른 공포 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는 신선한 것이어야 하며, 스토리의 당위성이라던가 캐릭터의 성격도 분명 관객을 이해시켜야지만 그냥 영화를 보는 동안의 한시적인 공포가 아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진정한 공포 영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포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