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야구치 시노부
주연 : 쓰마부키 사토시, 다마키 히로시, 미우라 아키부미
개봉 : 2002년 8월 15일
소외된 사람들의 인생 역전극... 이건 영화에서 흔히 써먹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러한 영화들은 보고 또 봐도 언제나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감동적입니다.
1980년대 영국 정부의 폐광 정책으로 인하여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된 광부들의 밴드 이야기 <브래스드 오프>가 그러했고, 볼품없는 남자들의 엉뚱한 스트립쇼 이야기 <풀 몬티>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유쾌한 일본 영화 한편이 이 대열에 끼어 들으려 하는 군요. 바로 남자 고등학생들의 싱크로 나이즈 이야기인 <워터 보이즈>입니다.
<워터 보이즈>는 '소외된 사람들의 인생 연전극'이라는 소재에서 <브래스드 오프>, <풀 몬티>와 동일 선상에 서있는 듯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브래스드 오프>와 <풀 몬티>는 사회에서 소외된 남자들이 비참한 인생에서 탈출하기위해(혹은 잠시 잊기위해...) 벌이는 이야기이기에 웃음속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심각함을 영화속에 내포하고 있지만 <워터 보이즈>는 전혀 그러한 심각함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영화입니다.
마치 명랑 만화를 한권 읽은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엉뚱한 설정과 유쾌한 스토리 진행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더니 라스트에선 낙천적인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림으로써 영화의 유쾌함을 마지막까지 유지시킵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며, 가벼움은 정도를 넘어서있는 듯 보이는 이 영화는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에게 행복감을 전해 줍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겠죠. ^^
이 영화의 유쾌함은 캐릭터에서 비롯됩니다.
수영대회에 나가면 언제나 꼴찌를 도맡아 하는 스즈키를 비롯하여, 농구부에서 왕따당해 어쩔수없이 수영부에 들어온 사토, 깡마른 몸을 근육질로 만드는 것이 꿈인 오타, 공부벌레인 가나자와, 여자같은 사오토메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사실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 '맞아! 이런 녀석이 한명정도는 있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주 평범합니다.
하지만 <워터 보이즈>는 이러한 평범한 캐릭터들을 싱크로 나이즈라는 웃긴 상황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웃음을 유발시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캐릭터들을 그냥 웃긴 상황속에 몰아넣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그런 상황에 어쩔수없이 빠지도록 미리 함정을 만들어놓고 아주 자연스럽게 영화를 진행시켜 나가는 겁니다.
처음엔 사쿠마라는 미모의 여교사가 이러한 함정 역활을 충실히 해내더니 급기야는 이들 캐릭터들 각자의 이유로 싱크로 나이즈라는 상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해나갑니다.
이젠 3학년이 되어서 더이상 특별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스즈키는 마지막으로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싱크로 나이즈라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에 동참하게 되고, 수영을 통해 근육을 키우고 싶었던 오타는 얼떨결에,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사토는 어쩔수없이, 사토를 남몰래 짝사랑하던 사오토메는 사랑의 힘으로, 그리고 공부벌레인 가나자와는 학구열에 의하여 이 어처구니없는 계획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처럼 현실적인 캐릭터를 싱크로 나이즈라는 만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세계로 자연스럽게 몰아 넣은 이 영화는 명랑 만화처럼 비현실적인 상황과 학창 시절에 존재했을법한 현실적인 캐릭터들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영화의 재미를 완성한 것입니다.
만약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이 영화의 상황처럼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면 분명 이 영화는 그냥 평범한 슬랩스틱 코미디로 전락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싱크로 나이즈일까요?
<풀 몬티>나 <브래스드 오프>같은 영화들을 살펴본다면 이런 류의 영화들은 주인공들과 전혀 어울릴것 같지않은 일에 주인공들이 도전을 함으로써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담에 웃음을 유발시키고, 마지막에 그 도전을 성공했을땐 감동을 선사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풀 몬티>의 경우 성적 매력이라고는 전혀없는 40대 중년 남성들이 스트립쇼에 도전함으로써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도전을 웃음의 매개체로 이용했으며, 마지막에 이들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스트립쇼를 성공적으로 마쳤을땐 감동을 선사했었죠.
<워터 보이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싱크로 나이즈는 <풀 몬티>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스트립쇼만큼이나 어처구니없습니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스포츠인 싱크로 나이즈에 왠 우락부락한 남학생들이 도전을 한다니...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스즈키 일행이 싱크로 나이즈를 하기위해 벌이는 소동들을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시킵니다. 특히 이들이 처음 체육 선생님 앞에서 싱크로 나이즈 시범을 보이던 장면은 최근 본 영화들 중에서도 최고로 웃겼던 장면으로 기억될 정도로 그 웃음의 강도는 엄청납니다.
이렇게 온갖 우여곡절과 무시를 당하다가 마지막에 싱크로 나이즈를 멋지게 성공함으로써 주인공들의 인생반전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비록 <풀 몬티>와 같은 진지한 감동은 없지만 그래도 맘껏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평범한 고등학생들과 싱크로 나이즈...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음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완성한 이 영화는 그러나 이들이 싱크로 나이즈를 성공적이로 마치기까지의 과정까지도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 영악함마저 보여 줍니다.
이들에게 싱크로 나이즈를 가르치는 엉터리 조련사의 엉터리 훈련 방식은 이들에게 나름대로 싱크로 나이즈를 배워가는데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전혀 아무 상관이 없을 것같은 캐릭터들의 성격도 이 영화는 이들이 싱크로 나이즈를 완성해나가기까지의 과정에 이용하는 복선 역활을 해나갑니다.
근육을 만들기위해 집에서 비디오 테잎을 보며 춤을 추던 오타는 그 춤 실력을 싱크로 나이즈의 리듬 감각에 이용되고, 공부 벌레인 가나자와는 수학 방정식 실력을 이용하여 싱크로 나이즈의 원그리는 기법을 완성 시킵니다.
이처럼 비록 상황은 어처구니없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상황이었으나 그 상황을 전개해나가는 과정만큼은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꾸밈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현실적인 재미로 이끌어내는 겁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시도는 그냥 이 영화의 만화적인 상상력에 피식 웃어버리고 넘어갈 수도 있던 관객에게 묘한 대리 만족을 선사함으로써 박장대소를 유도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분명 너무나도 멋있었던 마지막 싱크로 나이즈 장면은 영화의 재미를 최종적으로 완성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해 보였지만 제가 보기엔 그 완벽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한가지 실수처럼 보입니다.
스즈키 일행이야 여름 방학내내 서로 호흡을 맞추며 싱크로 나이즈를 연습했으니 그렇게 잘한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축제 이틀전에 합류한 다른 부원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싱크로 나이즈를 하는 장면은 제가 보기엔 좀 무리가 따르더군요.
물론 다섯명이 하는 싱크로 나이즈보다 여러명이 어울려하는 싱크로 나이즈가 더 멋있고, 웅장해 보이며, 멋진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 어울려보이지만... 어차피 아무것도 할줄아는 것이 없었던 이들이 싱크로 나이즈라는 것을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배우는 영화라면 이들이 끝까지 조금 엉성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멋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처럼 멋진 싱크로 나이즈 장면은 볼 수 없었겠지만, <풀 몬티>에서 주인공들이 벌였던 그 어색한 스트립쇼를 보고난 후의 감동이 이 영화에서도 느껴지지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비현실적인 상황속에서 현실적으로 대처하며 완성해나갔던 이 영화는 결국 마지막엔 비현실적인 만화적 상상력으로 막을 내린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