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딘 데블로이스, 크리스 샌더스
주연 : 데이비 체이스, 케빈 맥도날드, 크리스 샌더스, 티아 카를레, 제이슨 스코트 리
개봉 : 2002년 7월 19일
이번 피서 중에 제 핸드폰이 고장났습니다. 물에 빠뜨린 것도 아니고, 땅에 떨어뜨린 것도 아닌데, 이유없이 액정화면이 잘 나오지도 않고 수신도 발신도 안됩니다.
핸드폰... 그 동안 제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이 전자 제품은 있을땐 몰랐는데 막상 고장이 나서 쓸수없게 되자 무지 불편하더군요.
우선 저희 가족들이 저와 연락할 길이 없어서 무척이나 걱정했다는 군요. 혹시나 폭우로 인하여 실종되지나 안았나하고... ^^;
저와 연락할 길이 없는 가족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저도 이만저만 귀찮은 것이 아닙니다. 전화를 걸 일이 있을때마다 친구 핸드폰을 빌려야 하고 그나마 친구들이 없을땐 공중 전화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공중 전화 카드는 물론 없고, 잔돈도 별로 가지고 다니지 않는 습관이 있는지라 전화를 걸때마다 슈퍼마켓에 가서 음료수를 사먹고 잔돈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놈의 공중 전화는 잔돈을 많이도 삼켜버리더군요. 별로 통화도 안했는데 어느새 '삐~익~' 거리며 돈내놓으라고 울어대니...
그 중에서 가장 큰 불편은 핸드폰에 모든 중요한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어서 핸드폰이 고장나니 연락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오늘 친구와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전화 번호를 알아야 전화를 걸던가 하죠. 예전엔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어두거나 중요한 전화번호는 외웠었는데 핸드폰을 사용하게 된 이후로 수첩에 전화번호를 적는 일도, 외우는 일도 없어 졌습니다.
친구가 일하는 서비스 센터에 제 핸드폰을 맡겼는데 그만 친구의 실수로 제 핸드폰을 고치지 않았더군요. 다시 하룻동안 핸드폰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과연 핸드폰이 없었을땐 어떻게 살았었는지... ^^;
이번에 본 <릴로&스티치>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입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예전엔 파격적이었죠. 애니메이션이 국내 극장가에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었던 10여년전... <인어공주>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해마다 승승장구하며 썸머 시즌 블럭버스터의 한축을 담당하였습니다. 저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만큼은 꼬박꼬박 극장에서 챙겨 보았고요.
하지만 드림웍스가 디즈니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선적인 스토리 구조와 엇비슷한 캐릭터들... 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서서히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디즈니와 차별화에 성공한 드림웍스의 좀더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에 더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올 여름도 역시 드림웍스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격돌하였습니다. <스피릿>과 <릴로&스티치>... 드림웍스의 <스피릿>은 사실적인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을 더욱 강화했으며, 디즈니의 <릴로&스티치>는 역시 디즈니답게 동화적인 스토리와 디즈니만의 캐릭터를 강화했더군요.
같은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어쩌면 그리도 느낌이 서로 틀린지...
<릴로&스티치>는 지금까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과는 틀린 차별성을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한 주인공이 아닌 악한 주인공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러한 모험은 이미 2년전 <쿠스코? 쿠스코!>에서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쿠스코? 쿠스코!>는 독재자인 쿠스코 황제가 마법사의 계략에 넘어가 라마로 변한 후 착한 농부인 파차의 도움으로 마법사도 물리치고 착한 황제가 된다는 아주 다분히 디즈니다운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쿠스코? 쿠스코!>가 개봉될 당시 디즈니 역사상 최초로 악당이 주인공을 맡았다며 꽤 요란하게 선전을 했었죠. 마치 '이젠 디즈니도 변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제가 보기엔 <쿠스코? 쿠스코!>는 예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쿠스코 황제가 악당이라고는 하지만 절대 미워할수 없는 캐릭터로 그려놓았으며, 마법사, 말하는 라마 등 다분히 디즈니다운 캐릭터가 영화를 진행하며, 못된 마법사는 벌을 받고 착한 농부는 상을 받으며 주인공인 쿠스코 황제는 착한 황제가 된다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릴로&스티치>는 바로 이러한 <쿠스코? 쿠스코!>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못된 황제인 쿠스코는 미치광이 과학자로 인하여 만들어진 은하계 최고의 사고뭉치 스티치로 변하였스며, 착한 농부 파차는 하와이 섬의 순진한 괴짜 소녀 릴로로 변하였을 뿐입니다. 쿠스코가 마법사의 농간으로 라마가 되었다면 스티치는 탈출을 위해 스스로 릴로의 애완견이 되었고, 쿠스코가 파차로 인하여 마지막엔 착한 황제가 된다면 스티치는 릴로로 인하여 마지막엔 파괴 본능을 버리고 착한 생명체로 재탄생합니다. 단지 고대 잉카 제국이 <스타워즈>에 나올법한 우주 공간과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플레슬리의 음악이 흐르는 하와이로 변했을 뿐입니다.
이렇듯 예전의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를 선언한듯 보이면서도 기본적인 것은 절대 변하지 않은 이 영악한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우주라는 공간을 그리며 역시 예전의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된 그 무엇을 보여주기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작년 여름 개봉되었던 <아틀란티스>를 통해 이미 보여줬던 겁니다. 단지 바다에 가라앉은 신비의 제국 아틀란티스가 우주라는 공간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렇듯 <릴로&스티치>는 동화를 기본으로 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이젠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영화는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오랜 기간동안 엇비슷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이미 식상할대로 식상한 관객들에겐 어느 정도 새로운 것을 제공함으로써 신선함을 안겨주고,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여전히 좋아하는 관객에겐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기존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겁니다.
제 경우는 이젠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식상할대로 식상했다고 믿었던 사람중의 하나였는데 <릴로&스티치>를 보는내내 유쾌함을 잊지 못했습니다. 마치 10년전 <인어공주>를 보았던 유쾌함이 놀랍게도 <릴로&스티치>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는 겁니다.
정말로 디즈니의 영악함에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릴로&스티치>의 영악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너무 아동틱하다고 푸념했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흘러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에 깜짝 놀랄겁니다.
누가 감히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이 애니메이션에... 그것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어울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릴로&스티치>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소화해 냅니다.
이로써 <릴로&스티치>는 성인 관객의 구미에도 알맞은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겁니다.
변한 듯 보이면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 비해 너무 유아적이라는 비판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만으로 일시에 날려버린 이 영화는 감히 디즈니의 부활을 알리는 영화라고 칭할만 합니다. 최소한 제게는요.
이젠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너무 식상하다며 등을 돌렸던 저도 매년 여름마다 찾아오는 디즈니애니메이션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행복을 맛보게 되었군요. 10년전 그때처럼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