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케빈 스미스
주연 : 제이슨 뮤즈, 케빈 스미스
개봉 : 2002년 8월 24일
간혹가다가 '영화 이야기'를 쓰기가 상당히 난감한 영화를 만나곤 합니다. 나의 관점으로 볼때 그저 그런 유치한 영화에 불과할 뿐인데 전문적인 영화 비평가들이나 다른 네티즌이 극찬을 할때... 혹은 감독의 명성이 너무 대단해서 감히 비판할 엄두가 나지 않을때... 정말 난감합니다.
물론 그냥 나의 느낌대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되지만 그래도 왠지 찝찝한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이 그러합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 대해선 애초에 그리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스토리도 유치해 보이고, 캐릭터들도 맘에 안들고, 이 영화의 감독인 케빈 스미스의 전작인 <체이싱 아미>도 너무 재미없게 보았기에...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과 영화광들이 헐리우드의 신세대 기수인 케빈 스미스에 열광하고 있으며,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의 국내 개봉으로 영화 사이트의 전문 영화평론가들은 케빈 스미스를 분석하거나 그가 만들었다는 이른바 뉴저지 연작 이야기를 특별 기획 기사로 내보내는 등 그 열기는 다른 영화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띄고있습니다. 일반 관객들은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이 어떤 영화이며, 개봉되었는지 조차 관심이 없는데, 전문가들과 일부 영화광들은 이 영화에 열광하고 있으니...
저도 제 나름대로 영화광이라고 자부하기는 하지만 왠지 영화에 대한 취향만큼은 일반 관객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기에 이 영화는 나의 관심권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소위 잘났다는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작품이니만큼 영화를 보긴 봤습니다. 그리고 그 소감은 그냥 <덤 앤 더머>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가 뭐가 그리 대단한건지...
잘난척하려면 이 영화에 웃음속에 숨겨진 진지한 의미들에 대해서 써야하지만 저는 그리 잘나지 못했기에 그냥 이 영화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해 쓰겠습니다. ^^;
제가 보고 느낀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은 <덤 앤 더머>식의 바보들이 펼쳐내는 가벼운 슬랩스틱 코미디이며, 헐리우드의 수많은 영화들을 교묘하게 패러디한 그냥 웃긴 패러디 영화입니다.
우선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덤 앤 더머>입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제이 앤 사일런트 밥>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인 제이(제이슨 뮤즈)와 밥(케빈 스미스)이 <덤 앤 더머>의 바보 커플 로이드(짐 캐리)와 해리(제프 다니엘스)처럼 멍청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로이드와 해리는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멍청해서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순수하고 악의가 없으며,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기위해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제이와 밥은 직업조차 가지고 있지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빈둥대며 편의점앞에서 어린 녀석들한테 대마초를 파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보냅니다. 게다가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한테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이며, 머리속엔 온통 섹스만이 가득찬 사회적인 잣대로 본다면 멍청하고 한심하며 위험한 녀석들입니다.
그러한 것이 제게는 <덤 앤 더머>보다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이 재미없는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 영화속의 캐릭터들에게 공감할때 영화에 대한 재미가 커집니다. 하지만 제이와 밥은 도대체 공감이 갈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악의에 가득찬 얼간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자신들을 모델로 한 영화를 저지하기위해 헐리우드로 떠나는 여행동안 떨쳐지는 에피소드는 그냥 킬킬대고 웃은 후 쉽게 잊혀질만큼 인상적이지 못하고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르면 어여 그들의 멍청한 행동이 끝이 나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루하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꽤 재치있는 패러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를 비롯하여 <스쿠비 두>, <혹성탈출>, <도망자>, <굿 윌 헌팅>, <스크림>, <이티> 등 이 영화가 패러디한 영화들은 왠만한 영화광들이라면 모두 알만한 영화들이며, 그렇기에 예상치 못했던 장면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패러디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안겨줍니다.
특히 영화 후반 제이와 밥이 자신들을 모델로 한 영화 '블런트맨과 크로닉'의 촬영을 저지하기 위해 미라맥스 영화사에서 벌이는 사건들은 자기 스스로를 패러디한 <스크림3>의 그 기발함과 맞먹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굿 윌 헌팅>을 찍으면 대화하는 장면들은 돈때문에 원치 않는 영화에 출연해야하는 배우들의 아이러니를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자기 스스로를 패러디한 장면이며, <스크림>에서의 가면쓴 범인이 사실은 침팬지였다는 이 말도 안되는 패러디 장면은 영화의 극적 반전을 위해 헐리우드 영화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고 있는지에 대해 그 스스로를 패러디 한 장면입니다.
게다가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의 그 스스로의 패러디인 '블런트맨과 크로닉'의 촬영 장면 중 <스타워즈>의 루크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 마크 해밀과 제이와 밥이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광선검 대결 장면에 이르르게 되면 이 영화의 자기 패러디는 극치에 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패러디 장면들로 인하여 새로운 재미를 찾아낸 관객들이라면 그 다음엔 이 영화에 출연한 그 수많은 카메오를 찾는 재미에도 빠질 수 있을 겁니다.
<스크림>의 감독인 웨스 크레이븐, <굿 윌 헌팅>의 감독인 구스 반 산트는 물론이고 케빈 스미스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 수많은 배우들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제이슨 빅스, 크리스 락, 새넌 도허티 등등)의 색다른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 외적인 재미를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분명 일반적인 잣대로 영화의 재미를 평가하는 저같은 일반 관객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못합니다.
특히 제이와 밥의 멍청함을 이용해서 다이아몬드를 훔쳤던 4인조 여성 강도의 맴버인 저씨가 제이의 순수함에 반해서 자수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르면 이 영화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않는 저씨의 순수함때문에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솔직히 영화속의 캐릭터들한테 관대한 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하고 악의에 가득찬 제이에게 반하여 부와 명예를 집어던져버리고 동료들을 배신하면서까지 자수를 한 저씨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마치 착한척, 순수한척 하는 사람들한테 '엿 먹으라'고 외쳐댈것만 같던 이 영화가 그 스스로 착한척, 순수한척하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뭐 그래도 이 영화의 재미에 대해 평가를 하라면 영화 중간 중간 약간 웃겼던 장면들과 재치있는 패러디 그리고 유명한 카메오를 보는 재미까지 덧붙여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는 겁니다.
이 영화를 끝으로 케빈 스미스 감독은 뉴저지 연작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고 하니 이 괴짜 감독이 뉴저지를 벗어나 만들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는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설마 또 바보같은 제이와 사일런트 밥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