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2년 영화이야기

<연애소설>- 첫사랑의 서툴은 기억들.

쭈니-1 2009. 12. 8. 15:11

 



감독 : 이한
주연 : 차태현, 이은주, 손예진
개봉 : 2002년 9월 13일

어느덧 솔로가 된지 1년... 그 동안 솔로라서 서러웠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기념일을 함께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절 가장 괴롭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 크리스마스... 전 친구 녀석의 자취방에서 야한 비디오보며 라면을 끓여 먹었었죠. 다른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에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서러운 것은 보고 싶은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못본다는 겁니다. 한동안 후배가 일요일날 같이 영화를 봐줘서 그나마 행복했었는데, 요즘은 일요일날 여행 동호회에서 같이 여행다니느라 영화를 볼 수 없었죠.
요며칠 제 홈페이지를 애인삼아 보내며 솔로의 서러움을 잊고 지냈었는데... 결국 추석을 겨냥한 영화들이 대거 개봉되었던 지난 주에 솔로의 서러움을 톡톡히 맛보았습니다.
지난주에 개봉된 영화는 모두 5편. 그 중 <가문의 영광>은 시사회에 당첨되어 일찌감치 보았고, <로드 투 퍼디션>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화질이 안좋은 캠버전으로 보았습니다. 문제는 나머지 3편의 영화들인데...
요즘 액션 영화에 목말라 있는 제겐 <레인 오브 파이어>도 보고 싶었고, 한국 영화로는 최고의 제작비가 들어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도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연애소설>이 제일 보고 싶었습니다. <레인 오브 파이어>는 이미 캠버전 동영상을 다운받아 놓아서 자막만 만들어지면 아쉽지만 컴퓨터로 언제든지 볼 수 있으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네티즌의 영화평이 워낙 안좋은데다가 제가 장선우 감독을 무지 싫어하는 관계로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면 보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이은주가 나오는 멜로 영화 <연애소설>만은 정말로 꼭 극장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연애소설>을 같이 볼 여자를 찾기위해 노력을 안한것은 아닙니다. 후배에게 말을 해보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다른 여자하고 봐'라고 말하더군요. 못된것... 그 동안 친하다는 여자들한테 전화를 해서 같이 영화보자고 부탁해보았지만 모두 거절 당했습니다. 나와 사귀자는 것도 아닌데 왜들 싫다는 건지... 그렇다고 이런 멜로 영화를 남자와 볼 수도 없고... 정말 서럽더군요.
결국은 <피도 눈물도 없이>, <스파이더 맨> 이후 또다시 굳은 결심을 하고 혼자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굳은 결심으로 혼자 본 <연애소설>은 솔직히 조금 실망이었습니다. 최소한 영화를 보는 그 순간동안은...
전 영화를 볼때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기분 좋게 영화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연애소설>을 볼때의 컨디션은 거의 최악이었죠. 혼자 영화를 봐야한다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 내가 보고 싶다는 영화를 불평 한마디없이 함께 봐준 헤어진 여자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해서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으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배가 아파서 영화를 집중하고 보는데 애먹었습니다. 정말 큰 결심을 하고 본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와 각종 영화 사이트에 올려진 다른 분들의 영화평들을 천천히 읽어 보았습니다. 솔직히 <연애소설>을 보기전에 시네트에 올려진 <연애소설>에 대한 리뷰를 읽다가 그 리뷰에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동안 억울해서 혼자 분통을 터트렸었죠. 시네트는 <소울 서바이버>의 마지막 반전도 리뷰에서 언급해서 절 당황하게 만들더니... 암튼 글을 쓰신 분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려다가 꾹 참았습니다.    
암튼 이러한 이유로 <연애소설>에 대한 네티즌의 평을 읽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참았었죠. 그리고 결국 <연애소설>을 본 후 제일 먼저 네티즌들의 평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분명 <연애소설>을 볼때는 '실망'이었는데, <연애소설>을 보고나서 다른 분들의 영화평을 읽으며 <연애소설>을 좋게 평가한 글을 읽으때는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고, <연애소설>을 나쁘게 평가한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화가나서 그 의견에 대한 반박 글을 올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더군요.    
평소엔 이렇지 않았는데... 아무리 재미있게 본 영화에 대한 지독한 비평의 글을 다른 분이 올려도 그냥 씨익 웃으며 말았었는데... 이상하게도 <연애소설>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괜히 울화통이 터지고, 그들이 잘못 이해한 것을 잡아주고 싶고, 심한 글에는 욕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평소엔 다른 분의 글에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박하고 욕하는 글을 보면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었는데...
암튼 <연애소설>은 분명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는 미처 못 느꼈던 그 미묘한 여운이...


 

 

      
분명 영화를 볼 당시 <연애소설>에게 느낀 첫 느낌은 '서툴음'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지환역의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영향때문인지 왠지 본격적인 멜로 연기가 서툴게만 느껴졌으며, 수인역의 손예진 역시 서투른 대사 처리때문에 거부감이 느껴지더군요. 제가 가장 기대했던 경희역의 이은주 역시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보여주었던 그 세련된 연기에 비해 이 영화에선 왠지 몸에 맞지않은 옷을 입은 듯 서툴어 보였습니다.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도 세련된 느낌의 <번지점프를 하다>나, 너무나도 예쁜 그림엽서 같았던 <오버 더 레인보우>보다는 너무 서툴다는 인상을 제게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지 3시간 남짓 지난 지금은 어쩌면 이 영화의 매력이 바로 이 '서툴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영화의 소재는 바로 첫사랑입니다. 사람마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다르겠지만 대부분 첫사랑은 서툴은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제 경우는 정말로 서툴렀습니다. 만약 지금 첫사랑의 상대를 다시 만난다면 더 잘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이에 맞이한 제 첫사랑은 상당히 서툴렀고 그렇기에 아쉬움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서툴은 첫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 영화 또한 그러합니다.
차태현의 멜로 연기가 서툴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사랑에 서툴은 지환의 캐릭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의 지환은 우연히 찾아온 첫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툴은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런 지환의 모습에서 예전의 제 모습이 생각나 영화가 끝난 지금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군요.
이렇게 생각해보니 손예진과 이은주에게 느꼈던 '서툴음'도 이해가 되더군요.
아직 남자라고는 만나보지도 못한 수인에게 지환의 등장은 분명 상당히 당혹스러운 사건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절친한 친구인 경희와 묘한 삼각관계마저 형성되었으니... 어쩌면 이러한 상황을 대처하는데 있어서 수인은  서툴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서툴음'이 제게는 대사처리의 미숙으로 받아들여 졌는지도...
이은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희라는 캐릭터 자체가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웃어야하는 그런 성격이었기에 어쩌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서툴게만 보였던 이은주의 연기는 의도된 것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장면 희망을 잃어버린 경희의 그 안쓰러운 모습은 영화 초반 이은주의 서툴은 명랑 연기와 겹쳐지며 진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경희는 결국 수인때문에 억지로 명랑한척 행동했던 겁니다. 마지막의 그 안쓰러운 모습이 경희의 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엽게 느껴지더군요.    


 

 


이렇듯 서툴은 첫사랑을 잡아내려는 이 영화는 영화의 진행 방식에서는 전형적인 멜로의 형식을 관객에게 제시함으로써 조금은 식상한 느낌을 전해 줍니다.
놀이동산의 바이킹, 아무도 없는 바닷가, 그리고 뻔히 보이는 삼각관계... 이렇게 다른 멜로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과 상황들을 삽입한 이 영화는 분명 식상해 보입니다.
하지만 제 첫사랑을 생각하니 그 뻔한 상황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녀와 첫 데이트 장소였던 롯데월드에서의 바이킹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겨울바다를 보자며 무작정 떠났던 여행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서툴렀기에 친구의 애인을 사랑했던 제 친구에 대한 기억들까지...  
이 영화가 뻔해보이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뻔하기 때문일겁니다.
사랑을 하고 있을 당시에는 모르지만 그 사랑이 지나고 먼 훗날 생각해보면 어치피 우리들의 사랑놀음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놀음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제 이 영화는 그러한 뻔한 에피소드들을 흘러보내고 극적인 장면들을 준비합니다.
어떤 분들께서는 그러한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냐고 그러시더군요. 분명 어찌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짙게 생각날만큼 뻔하지만 리얼한 상황을 표현했던 이 영화가 갑자기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황을 제시하며 관객들을 울리려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연애소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소설과도 같은 슬픈 첫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황순원의 소설인 '소나기'와 같은 서툴면서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슬픈 그런 첫사랑이야기를...    
그동안 감정이 메말랐는지 영화를 보고 찡한 감동을 받은 기억이 드물었던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려고 고생했답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맘껏 울 수 있었을텐데...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풍습이 얄미울 따름입니다. ^^;


 

 

      
그 외에도 이 영화는 볼때는 몰랐지만 영화가 끝난 지금 느껴지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이 영화의 과감한 생략법은 신인 감독의 연출작답지 않게 노련합니다.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생략합니다. 지환의 집안 사정이라던가 수인과 경희의 병... 이 영화는 마치 지환과 수인, 그리고 경희 이외엔 필요가 없다는 듯 아무것도 설명하길 거부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한 생략을 이 영화의 단점으로 지목하신 분들도 계시던데...
하지만 우리의 지나간 사랑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생략법이 얼마나 옳은 선택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젠 성인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때 상대편의 능력이나 집안 사정을 먼저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때의 첫사랑은 그렇지 않죠.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돈은 많은지,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그러한 것들은 사랑을 하는데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죠. 분명 지환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낮에는 택시운전기사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것들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건 단지 지환의 상황일뿐 이 영화가 진행되는데에 아무런 필요가 없기때문입니다.
수인과 경희의 병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가족들 역시 단지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첫사랑이란 그런것이니까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러한 생략속에서도 이례적으로 지환의 동생인 지윤의 풋내나는 첫사랑을 중간 중간에 삽입합니다. 처음엔 좀 느닷없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지환과 수인, 경희의 풋사랑이 현재의 지윤의 풋사랑과 겹쳐지면서 '세상의 모든 첫사랑은 이렇게 풋내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이 영화의 의도가 느껴지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지환과 수인, 경희가 <일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대사 중 하나인 '난 사랑에 빠진거 같아요. 너무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는 대사를 각자 읊는 장면입니다.
수인의 그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읊는 모습(솔직히 약간 닭살 돋았습니다.), 경희의 그 설레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버스안에서 읊는 모습, 그리고 지환의 그 환희에 찬 목소리로 읊는 모습. 어떻게 똑같은 대사가 이렇게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지 신기하더군.
이 영화가 데뷰작이라는 이한 감독은 신인 감독의 그 서툴음을 첫사랑에 대한 서툴은 이야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며, 차태현, 이은주, 손예진은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깨지 않는 범위내에서 서툴은 첫사랑을 시작하는 그런 순수한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물론 아직 손예진의 연기가 서툴러 보이긴 하지만 어차피 이 영화 자체가 서툴으니... ^^;


 

 

 

      

인연이

난 이 영화에서 이은주가 참 이쁘더라...
오빠말처럼 이 영화 참 서툴긴 했어도 우리들의 첫사랑의 설레임과 서툰 사랑방식을 너무도 조용히 그린것 같어.
그래서 보면서도 울고, 보고 나서도 울고... 난 여자라서 우는 거 한개도 안 쪽팔려...헤헤^^
너무 너무 멋진 영화였던거 같어.... 그치?
 2002/09/19   

쭈니

맞아. 이은주 예뻤지!
특히 영화 초반... 설정상 이은주는 손예진보다 예쁘면 안되었거든.
그래서 손예진은 과도하게 예쁘고 청순한 척하고, 이은주는 털털하고 안예쁜척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손예진보다 이은주가 더 예쁘더라. ^^;
암튼 멋진 영화였어.
 2002/09/19    

hoholady

^^저도 이영화 너무너무 보고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요...이런건 정말 남자친구랑 보고 싶은데...평소엔 남자친구 없는 거 별로 안 서러웠는데 이럴 땐 정말 너무 서럽고 허전하군요...^^아무튼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진짜 꼭꼭 봐야겠어요~^^  2002/09/21   

쭈니

hoholady님도 솔로시군요.
저도 이 영화 혼자 보면서 솔로라는 것이 그토록 서러웠는데... ^^
우리 모두 솔로를 탈출하는 그 날을 위하여... ^^;
 2002/09/21    

maylian

아 너무너무 보고 싶어-_ㅠ
이영화 혼자 보는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약속잡으면 친구가 맨날 늦어서 한 10분 30분 늦게
봤어요 두번이나-_ㅠ
그렇게..
짜증나서 미치는줄 알았다니까요-_-
 2002/09/28   

쭈니

저도 항상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 녀석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일부러 늦게 약속 장소에 나가서 그 녀석이 날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볼려고 했는데 그 녀석이 저보다 더욱 늦게 나와서 결국 실패했다는... ^^;
 200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