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핵(코어)이 갑자기 멈춰버린다면 우린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듯이 보이는 [코어]는 그러나 이 독특한 질문에 상상의 나래를 펴기보다는 헐리우드의 블럭버스터의 흥행 공식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또 한편의 헐리우드식 재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아마겟돈]입니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행성을 막기위해 미국인으로 구성된 영웅들이 급파하여 지구를 구한다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미국식 영웅주의 재난 영화인 [아마겟돈]은 마이클 베이라는 걸출한 감독과 헐리우드의 기술력, 브루스 윌리스와 벤 애플렉이라는 신구세대를 대표하는 스타급 배우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겐 끔찍했던 영화였습니다. 특히 저는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미국식 영웅주의를 아무런 여과없이 표출하는 것에 질려버렸으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 지구를 지키는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모습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코어]가 [아마겟돈]을 고스란히 따라하면서도 [아마겟돈]을 전혀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지구의 핵'이라는 이 영화의 매력적이며 독창적인 소재는 영화 초반 비둘기들이 영국의 한 공원에서 무더기로 떨어지는 장면 외에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 영화는 무조건 [아마겟돈]을 따라하겠다는 듯이 [아마겟돈]의 진행을 고스란히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코어]의 감독인 존 아미엘은 마이클 베이 감독처럼 블럭버스터에 능수능란한 감독이 아니며(그는 [카피켓]과 같은 스릴러에 능한 감독입니다), 주연 배우인 애론 에크하트, 힐러리 스웽크는 [아마겟돈]의 브루스 윌리스, 벤 애플렉과 비교한다면 초라하기만 할 뿐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특수효과면에서도 [아마겟돈]보다 휠씬 뒤떨어집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코어]는 [아마겟돈]을 열심히 따라갑니다. [아마겟돈]처럼 등장인물들을 하나둘씩 죽이고, [아마겟돈]처럼 영웅들에게 많은 난관을 안깁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감동하거나 손에 땀을 쥐기엔(최소한 [아마겟돈]에서처럼 블럭버스터의 스펙타클한 재미를 느끼기에도) [아마겟돈]보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많이 모자랍니다.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애론 에크하트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되기엔 관객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혹은 믿음직한 면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힐러리 스웽크 역시 [소년은 울지않는다]에서 인정받은 연기력을 이 영화에서 전혀 발휘하지 못합니다. (만약 제게 올해 최악의 남녀 배우를 꼽으라면 전 주저하지 않고 이 두 배우를 꼽을 겁니다.)
[아마겟돈]을 보며 마이클 베이 감독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를 터트렸던 제가 겨우 5년이 지난 어느날 [아마겟돈]과 비슷하지만 더 싫은 영화를 만나게 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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