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가 쓴 '아주짧은영화평'을 읽어보며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영화이야기'를 '아주짧은영화평'과 분리한 이후 '영화이야기'에 쓰여지는 영화에는 좋은 의미의 글을 썼으나 '아주짧은영화평'의 영화에는 혹평만 일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결코 의도한바는 아닌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
그래서 [어댑테이션]을 보면서 저는 드디어 '아주짧은영화평'에도 좋은 평의 글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어댑테이션]의 감독인 스파이크 존즈와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의 전작인 [존 말코비치되기]는 반론할 여지없이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그들이 펼쳐놓을 상상력은 제게 어떠한 영화적인 재미를 안겨줄 것인지... 전 [어댑테이션]을 보기 전부터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거의 영화의 절반이 흘러버린 1시간이 지나도록 스파이크 전즈와 찰리 카우프만의 상상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영화의 주인공이 각본가인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라는 사실과 쌍둥이 형제인 찰리와 도날드의 1인 2역을 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색다른 연기 변신이 눈에 띄었을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자기 혐오로 똘똘 뭉친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난초 탐험가인 존 라로치(크리스 쿠퍼)의 모험을 소재로 한 뉴오커의 기자 수잔 올리(메릴 스트립)의 책 '난초도둑'을 영화화하기 위해 각색작업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의문만이 영화를 보는내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존 말코비치되기]라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던 스파이크 존즈와 찰리 카우프만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가 겨우 한 소심한 시나리오 작가의 짜증나는 자기 혐오뿐이란 말인가!'라는 섣부른 결론에 도달하고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채 영화보기를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가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1시간여 지난 다음에 이루어 집니다. 찰리가 시나리오 작업의 난관에 부딪히고 그의 쌍둥이 동생 도날드와 함께 수잔의 뒤를 쫓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의 기나긴 반전은 섣부른 판단을 통해 이 영화의 지루함을 토로했던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소심한 시나리오 작가의 각색 작업이라는 지루하던 스토리 라인은 어느순간 흥미진진한 스릴러로 바뀌고, 나이가 들어서도 도도한 아름다움과 기품을 자랑하던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에서 사정없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존 말코비치되기]라는 영화에서 카메론 디아즈라는 아름다운 여배우를 최악으로 망가뜨린 전력이 있는 스파이크 존즈와 찰리 카우프만은 헐리우드에서 지성과 미모 그리고 연기력을 겸비한 메릴 스트립을 망가뜨리면서 지루함을 참지못하며 하품을 하던 관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칩니다.
아름다운 난초와 그 난초에 일생을 건 사나이, 그리고 그 사나이에게 매료된 여기자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이 영화의 기막힌 스토리 라인을 보며 1시간동안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이 영화 보기를 포기하지 않은 내 자신이 대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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