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8년 영화노트

메이드 인 홍콩(Made in Hong Kong) ★★★★1/2

쭈니-1 2009. 12. 9. 15:11

 

 



날짜 : 1998년 7월 19일
감독 : 프루트 찬
주연 : 이찬삼, 엄상자, 이동천

1997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선 홍콩의 프루트 찬의 3번째 영화 [메이드 인 홍콩]에게 심사위원 특별상을 안겨 주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영화를 홍콩반환이후 최초의 걸작이라고 칭하였으며 프루트 찬은 이 한편의 영화로 '차이니스 홍콩 영화' 원년을 돌파하는 새로운 시네아스트의 자리에 올라섰다.
[메이드 인 홍콩]은 매우 특이한 영화이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져왔던 홍콩영화의 법칙을 이 영화는 무시하고 있다.
그 첫번째가 홍콩의 스타시스템을 이 영화는 외면했다는 것이다. 별것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할리우드 영화 이상으로 스타 시스템에 철저하게 의존하는 것이 홍콩영화의 생리임을 생각해본다면 프루트 찬 감독은 정말로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이찬삼과 엄상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잇던 매끈하게 생긴 홍콩스타 연기자가 아닌 완전 아마추어 연기자이며, 외모 역시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두번째로 이 영화는 암흑가의 어두운 내면을 소재로 담고 있으면서도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암흑가는 사나이들의 의리와 사랑이 있는 곳이 아닌 홍콩의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그러한 공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차우(이찬삼)는 의리로 뭉쳐진 영웅이 아닌 사회와 가정에 버림받은 쓰레기 청춘에 불과하다. '홍콩영화 = 영웅'이라는 공식에 비춰본다면 이 영화는 파격적일 수 밖에 없다.
[메이드 인 홍콩]은 4명의 젊은이의 죽음을 토대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 첫번째 죽음은 선생님을 사랑한 보산의 투신 자살이다. 우연히 보산의 피묻은 2장의 유언장을 얻게된 차우는 그 뒤부터 얼굴조차 알 수 없는 보산의 환영에 사로잡혀 밤마다 몽정을 하게 된다.
프루트 찬 감독은 이 첫번째 죽음에 집착한다. 마치 차우가 얼굴도 알 수 없는 보산의 죽음에 집착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보산의 검붉은 피가 마치 거미줄처럼 차우의 앞을 가로 막는 장면과 보산의 피가 하얀 우유빛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이 두장면은 보산의 죽음이 차우의 쓰레기 인생을 방해한다는 암시적 장치인 동시에 보산의 맑은 영혼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차우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두번째와 세번째 죽음이다. 비록 학교는 중3때 잘렸지만 나름대로 생활철학을 가지고 생활하던 그가,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후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가, 자신의 꼬봉이었던 저능아 아롱의 피살과 시한부 인생을 살던 애인 핑(엄상자)의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희망을 버린다.
그는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생활철학을 무시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자신도 핑의 무덤 앞에서 자살을 함으로써 네번째 죽음을 선택한다.
부모님에게 쓴 보산의 유언과 보산에게 보내는 핑의 글, 그리고 보산과 핑에게 보내는 차우의 글로 막을 내리는 이 영화의 라스트는 결코 길지만은 않은 이들의 연결고리를 확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불안한 홍콩의 미래에 희생당한 홍콩의 한 단면이었던 것이다.  
[메이드 인 홍콩]은 홍콩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홍콩의 청소년 문제를 사실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고층아파트, 뿌연 하늘, 스산한 골목길, 좁은 복도, 자바라로된 출입문, 창살과 담장들,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홍콩의 풍경들은 지금까지 홍콩영화에서 볼수 없었던 광경들이며 그렇기에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히게 한다.
오히려 프루트 찬 감독은 넓게 뻗은 공동묘지야말로 홍콩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학교에서 버림받고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고, 심지어 친구와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버린 답답하고 거짓 투성이인 현실 속에 차우가 진정으로 선택할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평화로운 묘지의 풍경처럼 죽음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프루트 찬 감독은 다른 홍콩영화와는 달리 감상주의에도, 영웅주의에도 빠지지 않은채 매우 객관적인 자세로 영화를 그려나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우삼과 주윤발이 떠나버린 후에도 홍콩영화엔 희망이 남아있다.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마지막 결론이 좀 생뚱맞긴 하지만 암튼 꽤 감명깊게 본 영화임에는 틀림없어 보이는 군요.
이 영화 이후 프루트 찬 감독은 [쓰리 몬스터]라는 영화로 우리와도 인연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쓰리 몬스터]의 세개의 이야기중 [탐욕]편이 그의 연출작품이라는 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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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코아아트홀에서 봤던 기억  2007/08/30   
쭈니 그 당시 코아아트홀은 다른 극장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예술 영화를 많이 상영했던 곳이죠.
지금은 사라져서 아쉽기만합니다.
 2007/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