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8년 영화노트

편지 ★★★★

쭈니-1 2009. 12. 9. 14:52

 

 



감독 : 이정국
주연 : 최진실, 박신양

확실히 관객들은 코미디영화에 지쳐 있었다. 어쩌면 96년 한국영화 흥행톱을 기록한 [은행나무침대]가 그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판타스틱하면서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전개했던 [은행나무침대]의 엄청난 성공은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코미디영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터주었으나 특수효과에 드는 막대한 제작비 때문에 그 누구도 나서길 꺼려했다.
그러나 슬픈 사랑이라는 소재는 97년 들어 제작자들에게 가장 구미당기는 소재가 되었다. 한지승 감독의 [고스트 맘마]는 [은행나무침대]와 같이 판타스틱한 사랑을 소재로 하면서도 특수효과를 최소로 줄여 제작비 누수를 막고 간간히 웃음을 삽입시키는 약삭빠른 기획으로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임권택 감독의 [창]이나 김성수 감독의 [비트] 역시 멜로 드라마의 틀에서 빗겨나가 있지만 슬픔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장윤현 감독의 [접속]에 이르러서 멜로 드라마는 그 절정에 이른다. 신세대적 감각의 멜로 드라마를 표명했던 [접속]은 7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97년 최고의 영화로 떠올랐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정국 감독의 [편지]는 매우 적절한 개봉인것처럼 보인다. IMF사태로 인해 우울해있던 관객들은 오히려 웃음보다 울음을 선택했고 소녀취향적의 고전적 멜로를 표명했던 [편지]는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성공에 빠져버렸다.
[결혼 이야기]의 성공으로 한국영화의 판도를 로맨틱 코미디 일색으로 만들었던 젊은 영화 기획사 신씨네는 [편지]의 제작으로 인해 다시한번 한국영화의 판도를 멜로로 바꾸는데 한 몫을 한 셈이다.
[부활의 노래]로 운동권 영화에 몸담았던 이정국 감독은 [두여자 이야기], [채널 69]에 이어 [편지]를 통해 제도권 영화에 완전히 진입했으며 [유리], [쁘와종]으로 역시 비제도권 영화 배우로 인식되었던 박신양 역시 대중적 배우로 탈바꿈하였다. 그리고 최진실은 마침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멜로의 틀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솔직히 그녀에겐 코미디가 어울리지 않는다. [베이비 세일]을 보면 내 생각에 공감할 듯)
[편지]는 [접속]과 반대말과도 같은 영화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지]는 7,80년대식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편지를 그 소재로 하고 있다. 그에 반에 [접속]은 만남이 단절된 90년대식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마땅히 컴퓨터 통신이 그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똑같은 멜로영화의 틀 속에서 비슷한 시기에 흥행에 성공한 이 두 영화는 이렇듯 전혀 다른 플롯 속에서 전혀 다른 위치를 확립시킨다.
[편지]는 그야말로 그림과 같은 영화이다. 너무나 예쁜 한 여성이 너무나 착한 한 남성과 만나 그림같은 집을 짓고 동화같은 사랑을 나누다가 남성의 죽음으로 인해 슬픈 이별을 하지만 홀로 남은 여성은 사랑으로 슬픔을 극복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환유(박신양)와 정인(최진실)은 만난지 두번째만에 결혼을 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엔 갈등 따위는 존재조차 하지 않으며 깊은 사랑만이 넘쳐날 뿐이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런 설정은 마치 슬픔을 유발시키기 위해선 스토리적 약점도 그냥 넘어가겠다는 감독의 의지에 의한 것인듯 하다.
이정국 감독에게 있어서 이 영화에서 슬픔 이외엔 그 어떤 것조차 필요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어느정도 성공인듯 하다. 최진실은 너무나도 천사같았으며 박신양의 죽음은 그렇기에 더욱 애잔했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 죽은 후에도 편지를 보낸다는 설정은 전화와 컴퓨터 문화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소재인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최면을 걸듯 종반부에 가서는 관객들에게 눈물을 유도시킨다. 영화의 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것은 어쩌면 멜로영화를 표방했던 이정국 감독의 승리이며 배우 최진실의 마력과도 같은 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엔 눈물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난후 관객들은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면서도 허무해한다는 것이다. 슬픔에 너무 집착한 이정국 감독은 그렇기에 성공과 실패를 한손에 거머쥐었다. 단순히 돈의 논리대로만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질적인 면과 감독 자신의 연출력을 생각해본다면 그는 실패했다.

1998년 4월 23일

*** 2007년 오늘의 이야기 ***

10년 전에는 최진실은 천사같았었군요.
요즘의 최진실은 그냥 아줌마같던데...
10년전 박신양은 제도권 영화에 막 진입하고 있었군요.
요즘의 박신양은 제도권에만 머물고 있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은 스타에게도 어쩔수 없는 시간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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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야
오늘의 얘기가 더 재밌네요.. ㅋ
이 영화.. 알면서도 정말 최루성이라는 단어 자체로..그냥 울기만 했땁니다..
하지만 뒤돌아서면..너무 내용이 없다는..거죠.. ㅎ
 2008/02/02   
쭈니 전 사실 이 영화 하나도 안슬펐어요.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성공했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이 영화 이후 참 엇비슷한 최루성 멜로영화가 많이도 나왔었죠. ^^
 2008/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