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곽경택
주연 : 유오성 채민서
개봉 : 2002년 6월 28일
그 화려했던 월드컵이 막이 내리고 이제 드디어 블럭버스터의 계절을 알리는 영화들이 앞다투어 개봉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한국 영화의 흥행 기대작으로는 단연 <챔피언>이 꼽히고 있습니다. 작년 <친구>로 조폭 신드롬을 만들었던 곽경택 감독과 배우 유오성의 두번째 만남... (저는 <친구>를 그리 감동적으로 보지 못했지만...) 과연 <챔피언>은 <친구>의 영광을 재현할수 있을지...
그럼 2002년 썸머시즌 극장탐방기 제 1탄 <챔피언>에 대한 쭈니의 제멋대로 분석을 시작하겠습니다.
^^;
1. 스포츠 영화로써의 <챔피언>.
<챔피언>에 열광하는 대다수의 영화팬들은 <챔피언>이 본격적인 스포츠 영화라는 것에 그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월드컵의 열기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뒤지지않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포츠라는 이 훌륭한 소재를 우리 영화계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방치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제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기억나는 스포츠 영화라고는 <공포의 외인구단>정도니까요.
뜨거운 경쟁이 있고, 승리와 패배 그리고 그 속에 진한 감동이 무한하게 존재하는 스포츠라는 이 훌륭한 영화 소재를 왜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영화계는 방치하고 있었을까요?
암튼 그 이유는 알지못하지만 <챔피언>은 스포츠 영화에 목말라있는 우리 관객들의 갈증을 충분히 해소시켜준 영화입니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눈앞에 두고 쓰러져야했던 김득구 선수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는 이 영화는, 박력넘치는 권투 경기 장면과 승리와 패배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싸웠던 한 선수의 죽음이라는 스포츠에서만 느낄수있는 감동을 마지막에 제시하며 스포츠 영화로는 거의 완벽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그 동안 엄지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렸던 까치의 그 비현실적인 희생(공포의 외인구단)을 우리나라 스포츠 영화의 최고의 감동적인 라스트로 기억하고 있던 제게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의 남은 마지막 힘을 다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스포츠인의 정신에서 오는 진정한 감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80년대의 추억이라는 코드를 제시한 <챔피언>.
<챔피언>의 또다른 장점이라면 단연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를 완벽하게 재현한 이 영화의 배경일겁니다.
사실 권투라는 이 영화의 소재자체가 지금은 잊혀진 옛것일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땐 TV에서 자주 권투 중계방송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누가 세계 챔피온이 되었다며 신문의 일면을 화려하게 장식했었는데... 이젠 눈을 씻고 찾아봐도 권투에 대한 기사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골프나 야구, 축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챔피언>은 80년대에 대한 추억이라는 태생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반칙왕>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반칙왕>이 영화속의 코믹 요소를 위해 레슬링이라는 추억의 스포츠를 이용했다면, 그 반대로 <챔피언>은 프로 권투라는 영화적 소재를 완성하기위해 80년대 배경을 이루어 놓은 겁니다. (한마디로 <반칙왕>은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
암튼 이 영화가 풀어놓은 80년대의 추억의 정서는 꽤 매력적입니다.
유오성의 그 촌스러운 헤어 스타일... 포니 자동차... 삼양라면... 달동네...
지금은 잊혀졌지만 분명 얼마전만 해도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마치 권투처럼 말이죠.
3. 김득구...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 <챔피언>.
어떤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김득구 선수의 일생을 담기엔 이 영화는 너무 짧았다고...
저도 그 이야기엔 동감합니다. 어차피 영화라는 것이 시간적인 제한이 있는 만큼 분명 <챔피언>은 김득구 선수에 대한 일생을 완벽하게 담을 수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곽경택 감독이 선택한 것은 김득구 선수의 일생중에서 그가 승승장구하며 동양 챔피언이 되고 결국 세계 챔피언이 되기위해 맨시니와의 결전을 벌였던,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지만 또 그만큼 가장 안타까웠던 몇년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너무나도 가난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김득구 선수의 가난했던 시절과 그 시절을 딛고 권투 선수로 성공했던 그 성공담이 듣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간혹 회상장면을 통해 김득구 선수의 힘들었던 유년시절이 나오기는 하지만 왠지 부족해 보이더군요.
마치 김득구 선수가 어려웠던 시절이 없이 곧바로 권투 선수로 화려한 날을 보낸것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챔피언>은 김득구 선수의 어려웠던 시절을 상당 부분 생략합니다.
물론 그것은 감독의 선택이며, 그로인하여 박력 넘치는 권투 장면을 더욱 많이 볼수 있었지만... 왠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김득구 선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수박 겉핣기식으로 그의 잘 알려진 모습만을 보고 나온 느낌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4. 러브 스토리로써의 <챔피언>.
<챔피언>이 권투 경기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할애한 장면이 바로 김득구 선수와 경미라는 여인의 애절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이야기만큼 대중적이면서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소재도 없을테니까요.
<챔피언>이 김득구 선수의 러브 스토리에 영화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세가지 효과를 얻어냈습니다.
그 첫번째는 스포츠 영화에 비교적 관심이 없는 여성관객들의 시선을 러브 스토리로 잡은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너무 단조로울지도 모르는 영화에 러브 스토리라는 활력소를 넣었다는 겁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김득구 선수의 죽음 후에 홀로 남겨진 경미라는 캐릭터를 통해 마지막 감동을 극대화 시킬수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엔 <챔피언>의 김득구 선수의 러브 스토리를 삽입시킨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이 드는 군요. 분명 남성미만 강조되었던 이 영화에서 김득구 선수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펼쳐놓음으로써 영화가 많이 부드러워 졌으며, 간간히 웃음도 터트릴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죽음 소식을 TV를 통해 듣고 울음을 참지못하는 경미의 모습을 보고 저도 눈물이 핑 돌았으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경미를 연기한 채민서가 너무 예뻤다는 겁니다. 다른 모든 캐릭터들은 80년대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경미라는 캐릭터 혼자 최신 유행 스타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 어색했었습니다. 아니 혹시 스타일은 80년대 스타일을 했지만 채민서의 미모가 너무 특출나 그것이 최신 유행 스타일로 비춰진건가요?
암튼 채민서 혼자 너무 튀어 보인다고 하면 표현이 맞을지... ^^;
5. 유오성의 영화 <챔피언>.
<챔피언>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유오성이라는 배우에 기대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영화의 주인공인 김득구 선수의 역을 맡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해도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선 유오성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출연 배우들의 이름을 봐도 아는 배우라고는 유오성밖에 없으니...
영화가 유오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다른 캐릭터들은 거의 존재 이유가 안보일 정도로 하찮게 보여집니다.
그나마 신인 여배우인 채민서가 연기한 경미라는 캐릭터가 이 영화속의 유오성의 독주를 막고 있지만 신인인 그녀가 유오성의 농익은 연기를 막는것에도 한계가 있어보이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혼자 너무 예뻐보여 영화와는 따로 노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김득구 선수의 짧은 인생을 표현하는 데에도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짧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득구 선수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따뜻한 시선을 보였더라면...
<친구>에서 감초 역활을 했던 조연들의 모습이 이 영화에선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그로인해 김득구 선수의 절친한 동료였다는 종팔, 상봉이라는 캐릭터도 무관심속에 후반부에는 그 역활을 못하고 사라져 버리더군요.
6. 감동적인 영화로써의 <챔피언>.
이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중엔 찐한 감동을 기대하고 가신분들도 많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동은 생각보다 부족합니다.
분명 찐한 감동을 위한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김득구라는 실존 인물과 그의 비극적인 최후... 마지막 남은 힘을 링위에서 쏟아부었던 한 사나이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감동은 기대에 못미칩니다.
경기 도중 쓰러진 김득구 선수를 위해 머나먼 미국땅을 밟은 김득구 선수의 어머니역을 맡은 진짜 시골 할머니의 그 무뚝뚝한 연기에서부터 무언가 불안하더니... 모든 슬픔을 경미의 눈물로 마무리 하더군요.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두고 죽어야하는 김득구 선수의 마지막 모습은 보여주지도 않고, 남편을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싸늘하게 보내야 했던 한 여인의 애절한 슬픔은 그냥 한줄기 눈물로 마무리한채...
영화가 끝나고나서 원없이 눈물을 흘리려했던 관객들의 소망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좀더 영화속의 슬픔을 극대화할수도 있었을텐데...
분명 곽경택 감독에겐 그러한 능력이 있었을텐데...
<챔피언>은 아쉬웠던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재미있었던 영화입니다. 특히 사나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영화속의 권투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특히 맨시니와의 마지막 경기 장면에서 모든 힘을 다해 싸우는 유오성의 연기... 찐한 감동은 없었지만 정말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스포츠는 아름다운건가 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이 아름다운 선수들이 있는 한...
갑자기 월드컵 축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남아있는 힘의 200%을 끌어올려 최선을 다해 싸웠던 우리 태극 전사들의 모습이 생각나는 군요.
이 스포츠의 감동이 언제나 영원하기를... ^^